[동길산 시인, 포구에 서다] (1) 청사포
저 푸른 바다의 입… 사람 마음 깨물어, 놓아주지 않는
전설의 뱀도 푸르고 돌같은 모래도 푸르
구불구불한 마음 위로 불어오는 저 바람도 그 始原처럼 푸르고…
작은 사진은 갯가에 세워진 청사포 표지석.
포구. 포의 입. 바다의 입. 바다의 입이 사람을 깨문다. 사람의 마음을 깨문다. 깨물고서는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물과 뭍이 맞물린 곳에 선 사람이 젖고 사람의 마음이 젖는다.
배는 어림잡아 열다섯 척 스무 척. 배는 고만고만하다. 그물로 고기를 잡는 배도 통발로 잡는 배도 낚시로 잡는 배도 고만고만하다.
고만고만한 배들이 고만고만한 물결에 일렁인다. 물이랑에 일렁인다.
"깊어 보이고 푸르러 보여 좋네요." 울적하고 심란하면 청사포 바다를 찾는다는 사직동 주부 백경옥 씨 탄사처럼
청사포는 푸르다. 전설에 나오는 뱀도 푸르고 돌도 푸르고 모래도 푸르다.
그래서 뱀 사(蛇)를 써 靑蛇고, 돌 같은 모래 사(砂)를 써 靑砂고, 모래 사(沙)를 써 靑沙다.
청사포 깊고 푸른 역사는 구석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돌에서 돌을 떼어 뾰족한 돌은 뾰족하게 쓰고 뭉툭한 돌은 뭉툭하게 쓰던 구석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사포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곳은 청사포 북쪽 동해남부선 기찻길 건너편. 송정 가기 직전에 구불구불 도는 그곳이다.
몸돌과 박편석기.
청사포에서 유적이 발견되면서 부산의 역사는 신석기에서 구석기로 뛰어넘는다. 영도 동삼동 패총의 신석기를 훌쩍 뛰어넘는다.
청사포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해운대 신시가지. 청사포에 이어 신시가지에서도 유적이 발견되면서 부산의 역사는 두꺼워진다. 만 년에서 2만 년은 두꺼워진다.
바람을 안고 포구에 선다. 나에게 안기는 이 바람은 구석기에도 불던 바람. 뾰족한 돌은 뾰족하게 쓰고 뭉툭한 돌은 뭉툭하게 쓰던
그때에도 한 사람쯤은 두 사람쯤은 내가 선 포구에 서서 내가 보는 바다를 보았을 것이다. 바다를 보며 마음에 푸른 물 들였을 것이다.
고만고만한 배들이 고만고만한 물결에 일렁이는 청사포 포구. 사진=박정화
숨을 들이킨다. 비릿하다. 바다가 내 안에 들어온다. 내 안에서 바다가 돌아다닌다. 내가 바다가 된다. 띄울 것은 띄우고 가라앉힐 것은 가라앉힌 바다.
나도 그러리라. 띄울 것은 띄우고 가라앉힐 것은 가라앉히리라. 마음은 그래도 그게 어디 예삿일인가.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내가 선 자리, 포구. 포구는 경계다. 물과 뭍의 경계다. 젖음과 젖지 않음의 경계다. 나아감과 돌아옴의 경계다. 애초의 포구가 구불구불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 경계에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몇 십 번씩 갈팡질팡하는 사람의 구불구불한 마음을 닮았기 때문.
청사포 포구는 구불구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찾는 포구다. 구불구불한 마음을 펴지 못해 찾는 포구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한나절이라도 반나절이라도 청사포 푸른 물에 담그고 싶어서 찾는 포구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을 보며
마음을 시퍼렇게 다잡고 싶어서 찾는 포구다.
"얼추 35년은 된 것 같네요." 고만고만한 배를 타고 나가 물질을 하는 김형숙 씨는 해녀다.
시집가기 전에도 청사포에서 물질하며 살았고 시집가고 나서도 물질하며 살아 청사포 바다 속을 속속들이 안다.
몇 년 후면 환갑이니 생애의 절반 이상을 물질로 보낸 청사포 사람이다.
요즘 잘 잡히는 해산물은 전복과 성게. 전복이 '삼사 킬로' 씩 잡히던 때보다는 못해도 청사포 바다는 아직 양호하다.
하루 두 시간 물질에 '일이 킬로'는 딴다. 청사포 바다 속은 물살이 빨라 물질은 애먹지만 대신에 해산물은 상등품이다.
일등품이다. 잡은 해산물은 횟집에 대기도 하고 직접 팔기도 한다.
청사포 해녀는 스무 명 정도. 대부분 배를 타고 나가 물질한다. 나이는 오십대 초반에서 육십대 후반.
김형숙 씨 표현대로 '해녀 마지막 세대'다. 해녀 마지막 세대가 퇴장하고 나면 자연산 전복이니 성게도 퇴장이다.
해녀사무실이 있는 방파제가 태풍 사라가 휩쓸고 간 즈음에 지어졌다는 해녀의 증언도 퇴장이고 바다 속 다릿돌 증언도 퇴장이다.
바다 속 다릿돌. 방파제 바로 앞바다 등대에서 갯가 쪽으로 놓인 다섯 개의 암초를 말한다.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해서 다릿돌이다.
다릿돌이 기장미역 원산지다, 라고 김형숙 해녀는 목청을 돋운다. 다릿돌 부근은 물이 맑고 물살이 거세 다릿돌에 달라붙은 돌미역이 미역 중에 미역이란다.
다릿돌 미역밭을 놓고 청사포와 기장이 1930년 법정에 갔고 청사포가 승소했다고 향토사학자 주영택 선생은 증언한다. 6층짜리 호텔이 있는 자리는 다릿돌 미역을 다듬어 일본에 수출하던 공장이 있던 자리다.
'동해와 남해 차갑고 뜨거운 물이/ 격렬하게 바위를 쳐대고/ 더욱 깊어지는 바다안개 속에서/ 푸른 뱀이 파도와 엉긴다/
물결 속에서 천년을 입 다문/ 모래 한 알, 푸른 진주로 눈뜬다/ 절정을 앞둔 해당화 꽃잎/ 홑겹의 붉은 신음에 닿는다'
(-최정란 시 '청사포' 중에서)
푸른 뱀이 파도와 엉키고 모래가 푸른 진주로 여무는 청사포. 청사포는 부산에 있는 포구이면서 여기가 부산이 맞냐는 생각이 드는 포구다.
이천년대 포구이면서 육십년대 칠십년대 포구 같은 포구다. 저녁이면 전등 대신에 호롱불을 밝힐 것 같은 포구다. 호롱불을 밝히고 하늘 천 따 지를 복습할 것 같은 포구다.
청사포 향학열은 소문난 향학열이다. 새마을금고와 어촌계 회관은 서당이 있던 곳. 청사서당이다. 배워야 일본을 물리친다는 의분으로 의연금을 모아서 세워진 서당이다.
한일합방 되던 해에 세워져 이십 몇 년을 하늘 천 따 지를 배우고 익힌다. 송정에서 미포에서 구덕포에서 좌동에서 학동들이 찾아오고 서당을 거친 학생들은 동래로 수영으로 진학해 극일의 심지를 밝힌다
배는 열다섯 척에서 스무 척 남짓. 배보다 세워둔 자가용이 많고 자가용보다 사람이 많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횟집 창문으로 보이는 사람,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방파제 끄트머리에서는 등대 공사가 한창이다. 갈매기가 등대 꼭대기에 앉아 등대라도 되는 듯이 오는 배 가는 배를 굽어보고 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굽어보고 있다. dgs1116@hanmail.ne
한 세기 전만 해도 부산은 포구의 도시였으며 현재에도 항구의 도시다.
부산토박이에게도 외지인에게도 부산의 원형은 바다이며 바다는 원형의 기억이다.
동길산 시인이 부산권의 항·포구를 현장취재하고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포구에 서다'를 연재한다.
필자 약력 ▶ 1960년 부산 출생.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 시집 '무화과 한 그루' 외.
■ 청사포 구석기 유적들 - 한반도 최남단 부산 最古 역사
사진은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청사포 구석기 유적들. BC 1만5천년에서 1만3천년 것으로 추정된다. 몸돌과 박편이 1990년에 출토되었고,
이어 1992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과정에서 돌도끼 밀개 긁개 찍개 등의 뗀석기(타제석기)가 발굴되었다. 이로써 부산에 구석기 사람이 살았음이 확인되었다.
구석기시대 석기의 특징은 돌에서 돌을 떼어낸 것. 큰 돌인 몸돌에 충격을 주어서 여러 개의 돌로 쪼개고 이를 부위별로 사용했다.
밀개는 동물가죽 털을 벗기는데 사용한 도구고, 긁개는 동물가죽을 벗기는데, 찍개는 나무를 자르는데 사용한 도구다. 박편은 몸돌에서 떨어져 나온 돌조각이다.
청사포 좌동 중동 유적은 부산에서 발굴된 가장 오랜 유적이다.
이들 유적지는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어 이 시대의 한·일 문화교류와 문화전파경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부산박물관 자원봉사자 황정애(46) 씨는 "유적이 해운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는 것은 주로 바다에서 먹을 것을 얻고 생활했음을 말해준다"고 한다.
/ 입력시간: 2008. 09.06.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