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9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 이후 장애범주를 두 차례나 확대해왔다. 그러나 신규범주 장애인의 경우 장애와 질병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의료비 지원과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신규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때문에 직업재활도 원할하지 못한 실정이라는 것이 관련 단체의 지적이다.
11월 4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신규장애인의 정책적 지원을 위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에 신규영역에 포함된 장애 유형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신규장애에 대한 문제점과 지원 대책을 토론하기 위해 11월 4일 오후 2시,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한국신장장애인협회', '한국장루협회', '한국간질협회', '한국화상인협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로 '신규장애인의 정책적 지원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100여명의 참석자가 모인 가운데 사회를 맡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김동범 사무총장은 "오늘 이 자리는 장애등급의 정확한 판정에 대한 요구와 신규장애에 대한 의료비 지원 그리고 장애로 인해 더욱 힘들어진 고용 지원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먼저 한국장루협회의 이월출 회장은 "내부장애는 장애가 시작되면서 질병이 함께 존재함으로 지속적인 의료서비스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신규장애에 대한 실태와 요구를 각 장애인관련단체의 실무자들이 직접 전달하는 행사를 열어 이에 제기된 문제들이 정책에 반영되고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내부장애, 움직이는 장애로 등급기준 설정 힘들어
장애등급 판정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하겠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서동우 박사.
첫 번째 문제점인 '장애등급 판정'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서동우 박사는 "과거의 법정 장애는 구분이 명확해 등급 판정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내부장애의 경우 증상에 대한 심각성의 변화에 따라 장애정도가 움직이기 때문에 정확한 등급 기준을 만들기 힘들다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기준의 한계성에 대해 설명했다.
서 박사는 "장애범주가 두 차례 확대되는 과정에 포함되지 못한 장애인들의 탄원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기존의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늘일 것인가 아니면 6급도 받지 못한 비법적 장애인을 위해서 범주를 확대할 것인가 하는 정책적 판단을 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밝히고 법적 장애인의 복지서비스를 유지하는 동시에 비법적 장애인을 신규장애인으로 계속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장애등급 판정에 대한 불만에 관해 서 박사는 "장애기준의 올바른 판정을 위해 각 장애를 진료하는 분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했지만 등급을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하며 "결국 외국의 예를 참조하고, 토론을 거쳐 판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으다. 덧붙여 "앞으로 이에 관련한 의견을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에 제출해주시면 회의를 할 때마다 심도있게 논의하여 개정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국가적 차원의 장애예방교육과 인식개선 필요
'장애인 의료정책'에 대해 발언하는 카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의 김윤태 교수.
두 번째 토론 주제인 '장애인 의료정책'에 대해서 카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의 김윤태 교수는 "장애 발생은 사회환경과 밀접한 각종 질환과 사고 등 후천적 원인이 대부분이므로 사회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즉, 장애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발전의 문제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료정책의 과제로서 "장애범주의 확대는 예정대로 계속 진행되어야하며 재활서비스 지원체계를 연결하고 정보를 자료화할 수 있는 국가적인 데이터베이스의 구축도 필요하다."며 더불어 "재활병원과 의료재활 전문인 양성, 공공의료기관의 재활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과거 산하제한 정책과 같은 강도의 국가적인 장애 예방 교육 및 장애인 인식 개선 사업을 전개하여 장애 예방과 획기적인 사회적 의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국가적인 차원의 협력을 강조했다.
직업재활, 사회적 낙인 해소시켜야
대구대학교 직업재활학과의 나운환 교수는'장애범주 확대에 따른 직업재활사업의 방향'에 대해 "장애의 예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낙인의 해소다. 이것만 해결이 된다면 어느정도의 고용창출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라며 사회적 의식 개혁을 강조하고 "미국의 경우처럼 중증장애인과 신규장애인들의 직업재활서비스 우선권을 마련해 한시적으로 쿼터제와 같은 우대조치 도입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제시했다.
나 교수는 "장애의 유무를 떠나,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강조했고 "장애에 대한 책임은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도 있다. 우리들의 손으로 뽑은 도지사, 구청장에게 당당히 장애인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제발표 후, 각 단체의 실무자들이 나와 해당 장애에 대한 설명과 실태 및 현안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료비 지원과 고용정책 시급해"
한국장루협회의 박종희 과장은 이름도 생소한 '장루'에 대해 "각종 질병이나 사고로 정상 배변 기능을 상실해 인위적으로 설치한 대장 또는 돌출 누공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장루를 가진 장애인은 소변 또는 대변이 보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분출되어 가족들에게조차 배척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죽음을 생각하는 장애인도 많다고 설명하며 "선진국처럼 정부가 장루 관리용구를 무상지원하고 의료보험을 적용시켜 경제적인 짐을 덜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의 이동주 과장은 "고가의 치료비가 필요한 신장장애인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인 당사자가 취업과 함께 수입이 생기면 그만큼의 생계유지비가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때문에 신장장애인은 힘들게 얻은 취업의 기회도 정식고용이 아닌 상태로 근무하게돼 고용보험, 산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장애인이 취업할 경우,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법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애단체, "편견 버리고 재인식 해주길"
간질장애의 실태에 대해 한국간질협회의 신현숙 사무국장은 "어떤 장애보다 사회적 낙인이 심한 질병이 바로 간질이다. 정신병, 지랄병, 유전병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10년동안 사회생활을 무난히 하던 사람도 단 한번의 간질발작으로 한순간에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사회적 배려에 아쉬워하며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경우 간질우 중 80%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뇌파검사와 MRI 검사 등의 의료지원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팔꿈치에 화상 흔적이 있다는 한국화상인협회의 김효진 간사는 "화상은 외형적 추형으로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심정을 털어놨다. 화상장애의 경우 '안면장애'만 범주에 포함되어있다며 김 간사는 "안면장애는 안면부(얼굴과 목부분)의 60%이상, 결국 얼굴 전체가 손상되는 경우에만 4급으로 판정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안면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며, 미용성형이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고 의료지원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간질협회 회원이라는 한 여성 참가자는 "소아간질의 원인을 알아내려면 MRI 검사가 필수다. 그러나 비용이 너무 비싸 여러 번의 검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낙인이 찍힌 병을 고칠 수 있는데도 의료비용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며 의견을 말하고 "반드시 MRI 검사는 의료보험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또한 "간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병명을 바꿔주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한다는 장현주(34, 서대문구 북가좌동)씨는 그동안 몰랐던 장애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개선되지 않는 사회의 편견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다."고 심정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애관련 세미나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이런 토론이 장애인의 실질적인 생활 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오늘 발표하신 박사님과 교수님처럼 힘있는 분들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앞장 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