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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묵상글 (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 고통의 그 순간에 사랑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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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고통의 그 순간에 사랑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 축일의 독서로 방금 들은 이 말씀은
주님의 최후 만찬 복음의 다음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이 두 말씀이 이렇게 연결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그 사랑받는 제자들은 끝까지 견디었다.
그 사랑받은 김대건 신부님도 끝까지 견디었다’로.
절망의 상황에서 모진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너의 사랑이든 나의 사랑이든 사랑이 견딜 수 있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이면 더더욱 견딜 수 있게 합니다.
물론 겸손도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이?’라고 반발하지 않고
겸손히 수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겸손이 고통을 수용하게 하는 힘이라면
사랑은 고통을 그저 수용하는 것을 넘어
달게 받아들이게 하는 힘입니다.
저는 몇 년 전서부터 감수 곧 달게 받아들이는 것에
생각이 많이 머물고 그러기에 당연히 많이 얘기하는 주제입니다.
사랑은 고통을 억지로 또는 가까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 달게 받아들이는 힘입니다.
저는 요즘 더위와 소음 이중고에 시달립니다.
식당 옆 건물을 새로 짓는데 그 소음이 크고
여름 더위에 주방 열기 때문에 그 더위가 대단하지요.
그런데 고통은 고통인데 고통의 그 순간,
이까짓 고통은 고통도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사랑을 조금만 떠올려도 불의 열기가 사랑의 열기로 바뀌고,
이마에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은 고통을 사랑이 되게 하기에 자랑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첫째로 사랑으로 시작해야 하고,
다음으로 고통의 그 순간에 사랑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에 파묻혀 사랑을 떠올리지 못하면 말짱 헛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고통의 그 순간에 고통에 파묻히지 말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땀과 고통을 사랑으로 잘 바꾼 분들이 성인이고
오늘 우리의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입니다.
자형의 밀고로 아버지가 순교하시고, 어머니는 반쯤 실성 상태가 되는 등,
그야말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을 때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얼마나 쓰라렸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올리셨겠지요.
“그때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고통의 그때 복음과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면 성인이고,
그렇지 못하고 고통만 있으면 그는 범인이요 비신앙임을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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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전삼용 요셉 신부님.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마지막 마음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신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무엇보다 김대건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사랑을 느껴보려면 그분이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여러 언어를 배우신 신부님은 총 21통의 편지를 남기셨는데 19통을 라틴어, 1통을 한문, 마지막으로 1통을 한글로 쓰셨습니다.
이 중 마지막으로 감옥에서 신자들에게 쓰신 한글 편지에 김대건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1. “세상에 한 번 태어나 우리를 만들어내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 태어난 보람이 없다.”
예수님께서 가리옷 유다에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신부님은 먼저 자신을 창조한 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 태어난 보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헛되고 헛된 세상 것들이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을 볼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2. “자기를 만들어내신 하느님을 알아 입교 영세했다 할지라도 주님의 제자답게 살지 못하면 이 또한 세상에 난 보람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배은망덕하게 되어 오히려 세례받지 못한 사람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진다.”
신부님은 세례를 받았다 해도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주님과 원수가 되어 영원한 벌을 마땅히 받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농부가 고생하여 농사를 짓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농부는 밭을 갈아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3. “부디 지금의 박해에 굴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 밤낮으로 하느님께 빌어 세속과 육신가 마귀를 대적하고 이 고난을 참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너희의 영혼을 구해라!”
당시 신앙의 목적이 명확하였습니다.
바로 세속과 육신과 마귀를 이겨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기도와 말씀, 성사생활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오며 온전한 의탁으로 예수님과 일치하여 이미 패배한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시련의 시기를 당하여 여러분은 마음을 다져 힘을 다하고 역량을 다하여 마치 병기(묵주, 성서 그리고 성사생활)를 다 갖춘 건장한 군사처럼 싸워 이길지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소유욕과 육욕, 그리고 교만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도록 주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열매를 맺지 않는 신앙인은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즘 삼구(三仇: 세속, 육신, 마귀)에 대해 아는 신자가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었습니다.
김 신부님이 순교하신 해가 1846년 병오박해이니 200년도 안 되어 김대건 신부님이 가장 강조하셨던 교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 교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지 모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젊은 야망의 증권 중개인 조던 벨포트가
만연한 부패와 사기에 가담한 기업 스트래튼 오크몬트의 창업자가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영화 내내 조던은 자신의 무모한 행동과 행동의 불법성에 대해 자주 경고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습니다.
그는 세속, 육신, 마귀에 있는 그대로 노출되었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가게 되고 그의 제국은 무너지고
부와 가족과 자유를 잃습니다.
조던은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입니다. 조던에게는 적어도 세속, 육신, 마귀의 삶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던 이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내와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 안에서조차 그것이 잘못임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세속, 육신, 마귀의 교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보낸 당신 유일한 편지에서 그분은 돌아가시기 직전 세속과 육신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만을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가르치시려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로만 김대건 신부님을 존중하지 말고 진심으로 그분을 존경한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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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우리나라의 첫 사제요, 한국 사제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여 대대로 순교자를 낸 신심 깊은 집안에서 1821년 충남 당진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솔뫼는 그의 증조부(복자 김진후 비오), 부친(성 김제준 이냐시오)을 포함 4대 11명이 순교의 꽃을 피운 곳입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성격, 진실한 신심을 드러냈던 신부님에 대해 모방 신부님은 “이 아이는 아마 천주께서 선택하신 아이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1836년, 열다섯 살 때에 세례를 받은 그는 모방 신부가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자, “남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고국을 떠나(1836.12) 육로로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1837.6)하여 4년간 철학과 신학 공부했습니다. 만주에 들른 그는 북경으로 가던 신자 김 프란치스코로부터 기해박해로 아버지는 참수를 당하고 어머니는 교우집을 떠돌아다니며 신세를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앵베르 주교가 기록했던 박해의 기록과 모방신부와 샤스탕 신부의 편지, 그리고 목자를 보내줄 것을 청한 교우들의 편지를 받고, 그 길로 조선에 있는 메스트르 신부를 만나기 위해 변문을 향했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장춘 소팔가자 성당에서 부제품을 받고서 선교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홀로된 어머니도 뵙지도 못하고,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갔고, 1845년 8월 17일에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후, ‘라파엘’ 호를 타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는 동시에 선교사제의 서해 입국 통로를 개척하다가, 1846년 6월 5일에 체포되셨습니다. 신부님은 당신의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학문을 아깝게 여긴이들이 인재로 쓰려고 수차례 회유를 하지만, “천주를 숭배해야만 한다. 이를 거절하면 죄를 면치 못한다.”고 답했으며, 교우의 이름을 대라 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천주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신부님은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고 옥중편지를 통해 이렇게 신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천주를 알지 못하면 산 보람이 없습니다. 눈물로 씨 뿌린 농부가 추수하는 기쁨을 누리듯 신앙도 좋은 열매를 맺을 때 천국의 기쁨을 누립니다. 박해를 두려워 말고 천주를 섬기고, 순교자들을 기억합시다. 성인들의 발길을 따라 교회에 충실한 시민이 되고, 사랑의 일치로 주님 만나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한강가의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이 땅에 남긴 신앙의 씨앗은 여전히 한국의 신자들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조선대목구 제3대 대목구장인 페레올 주교는 추도사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면 어느 누구나 그의 열렬한 신앙심과 성실한 마음에 존경심과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일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고, 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임금으로부터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도 “임금 위에 또 천주께서 계시어 당신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그의 배반함은 큰 죄악이라, 임금의 명령이라도 옳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용감히 증거 했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새남터에서의 마지막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으니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통한 건 오직 천주님과 교회를 위함입니다. 나는 죽으나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얻으시려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참수될 당시, 칼로 여덟 번 목을 친 뒤에야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칼을 든 열두 회자수 망나니가 목을 치기 위해 무릎의 꿇려 머리를 잡아당긴 상황에서 신부님은 말합니다.
“이 모양으로 하고 있으면 칼로 치기가 쉽겠느냐? 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쳐라.”
성인께서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습니다.’(로마 5,2-3).
이제 우리 역시,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가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2고린 4,10-11).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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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 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는데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이고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는데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1845년 8월17일에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39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으며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때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차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 주었습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 입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 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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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구 사제 모임을 마치고 멀리 남부에서 온 신부님들이 뉴욕에서 며칠 더 머물렀습니다. 제가 뉴욕에 있기 때문에 잠시 뉴욕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신부님들이 뉴욕에서 머무는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숙소는 신문사에 마련하였습니다. 첫날은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보고, 밤에 야경을 보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손님들이 오면 모시고 다녔는데 모두들 좋아하였습니다. 둘째 날은 ‘타임 스퀘어’를 중심으로 ‘센트럴 파크’까지 걸어보려고 하였습니다. 뉴욕의 맛과 멋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원하는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아침미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성당을 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날은 ‘예수성심 대축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제성화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퀸즈성당에 부탁을 드렸고, 우리는 ‘예수성심 대축일’ 미사를 함께 봉헌하였습니다.
신부님들은 제가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에도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신부님들에게 제가 미사를 봉헌하는 성당을 보여주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성당에서 조배하였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기대와 예상을 벗어난 신부님들은 뉴저지에 있는 ‘뉴튼수도원’엘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뉴욕에서 2시간 넘게 이동하는 거리에 있는 수도원입니다. 원장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본인은 독일로 성지순례 중이라고 하면서 그래도 수도원 방문을 환영한다고 하였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신부님들을 위한 식사를 마련해 주었고, 부원장 수사님께서 뉴튼수도원의 ‘역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뉴튼수도원에는 ‘마리너스’ 수사님의 무덤이 있습니다. 마리너스 수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화물선의 선장이었던 수사님은 흥남부두에서 피난민 1만 4천명을 배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2월 23일에 흥남부두를 출발한 배는 12월 25일 성탄절에 무사히 거제도로 입항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였던 선장님은 미국으로 돌아와 수도자가 되었고, 평생 뉴튼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선종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부님은 ‘성극 모세’를 관람했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성극을 보기 전까지는 모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성극을 보면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고뇌에 찬 인물이었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것을 보면서 주교님의 지팡이는 악의 유혹을 물리치는 도구임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10가지 표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는데 마지막 표징은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결국 우리를 구원에로 이끄는 것은 놀라운 업적과 능력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였음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지난 5월에 ‘성극 모세’를 보았지만 그런 묵상은 못했습니다. 다만 모세와 예수님의 삶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가 두 팔을 벌리면서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이는 사제가 미사를 마치면서 팔을 벌려 강복을 주면서 교우들을 파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듯이 우리들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성극이 주는 교훈이라고 하였습니다. 피정 중에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천상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뉴욕에 머물렀던 ‘사제들’을 보았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사제성화의 날’에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제들에게 있어 결코 변할 수 없는 본질적인 측면은, 오늘의 사제나 내일의 사제 모두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제는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맡겨주신, 성사를 집행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입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제 한명 한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또 하느님께서는 그 사제 한명 한명을 통해 교회와 신자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소중한 소명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고, 부르심을 받들어 가슴 벅차오르게 응답했던 그 체험과 열정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어제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봉헌하였듯이, 오늘의 사제들도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보여주었던 ‘수선탁덕’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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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사랑의 순교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1845년 8월17일 상해부근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사제품을 받았으니 조선교회에 첫 사제입니다. 이어 사제생활 1년1개월만인 1846년 9월16일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당시 성 김대건 신부의 나이는 만25세입니다. 참으로 꽃다운 한창 젊은 나이에 순교했고 저는 성인보다 무려 3배나 살고 있습니다.
만25세 나이로 순교했으나 성인의 삶은 참 판란만장했고 치열했으며 용감했습니다. 말그대로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순교자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순교적 삶에 무한한 영감과 힘을 주며 한없이 부끄럽게 합니다. 성덕의 삶은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의 ‘삶의 양’이 아니라 하루하루 어떻게 살았느냐의 ‘삶의 질’에 있음을 봅니다. 성인의 마지막 1986년 8월26일 순교 얼마전 쓴 옥중편지는 얼마나 꿋꿋하고 박식하고 신심깊고 효심 깊었는지 언제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끝부분만 인용합니다.
“저는 감히 주교 각하께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각하께 간절히 바라건대,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이제 저는 진심으로 각하의 발 아래 엎디어, 저희 사랑하올 부친이요 공경하올 주교님께 마지막 하직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후 천당에서 뵙겠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옥에 갇힌 탁덕 김 안드레아.”
제2독서 윗 성인의 옥중편지후 이어지는 응송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그대로 성 김대건 순교자의 고백처럼 생각됩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4,7-8ㄱ)
성가 287장 5절까지 이어지는 ‘최민순 작사, 이문근 작곡’의 가사와 곡도 불후의 작품으로 부를 때 마다 감동입니다. 최민순 시인 신부님의 가사가 참 아름답고 깊습니다. 1절만 인용합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이 짙어갈 때
진리의 찬란한 빛 그몸에 담뿍안고
한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시여.”
기념하고 기억할 뿐 아니라 순교적 삶을 살라고 우리를 분발케 하는 순교성인들입니다. 어떻게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항구히 주님을 섬기는 사랑의 삶입니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항구히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신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주님만을 섬겼습니다. 이래야 갈림이 없는 내적일치의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가 줄기차게 말씀하신 것은 주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고 주님을 사랑하여 섬겨야 하는데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고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거슬러 증언했지만 그들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를 유혹하는 배금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 극단의 이념들,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우상들입니다.
참으로 일편단심 주님을 섬기는 삶이 참 자유요 행복인데 예나 이제나 우상들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데 세상 “맛”에 따라 살아가니 세상 우상들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침내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즈카르야 예언자의 경고는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 너희가 잘 될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마침내 요아스 임금은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 즈카르야를 죽입니다. 즈카르야의 마지막 임종어가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참으로 시종여일, 죽는 그날까지 주님을 섬기는 삶에 항구하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둘째, 언제나 주님께 희망을 둔 희망의 삶입니다.
주님께 희망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희망을 둘 때 한결같은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강조하는 바도 희망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은총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샘솟는 희망입니다. 바로 주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삶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어야 유혹에도 안빠지고 타락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존엄한 품위를 견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끝까지 견뎌 인내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사랑에서 희망이요, 희망에서 인내의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도 걱정하지 말라며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어 주님은 끝까지 인내의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입니까?
1.늘 주님을 한결같이 섬기는 사랑의 삶입니다.
2.언제나 주님께 궁극의 희망을 둔 희망의 삶입니다.
3.끝까지 견뎌 인내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결국은 하느님께 대한 끝까지 한결같은 신망애의 삶입니다. 이래야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영적승리의 순교적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5,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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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오늘의 주님 말씀을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읽었다면 혹은 들었다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는 이들은 믿음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은 세상에 반하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김대선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많은 순교자가 세상의 법도와 규율을 어겼다 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해외로 유학을 다녀왔고, 여러 나라의 말을 할 줄 알았으며 서양 문물을 직접 접했던 사람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셨습니다. 나라 안팎을 둘러봐도 이런 인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믿음이라는 신앙 위에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사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걸으셨습니다.
기억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서품되신 그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 신부님께서 첫 미사를 봉헌했던 그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 말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분명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세상 편이 되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선함과 밝음을 져버리라고 다그칠 것입니다. 그날이 온다면 그 순간 우리가 오늘의 복음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하여도 우리가 조금씩 주님의 나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늘 우리의 시선이 선함과 따뜻함과 주님의 나라로 향해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름에 생각나는 것.
냉면
팥빙수
화채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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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네 집 대청마루
시골 할머니네 옥수수
시골 할머니네 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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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생각나는 것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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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한때 저의 나약함과 재능 부족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힘없는 저의 모습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 저를 이렇게 힘없고 보잘것없이 만드셨냐면서 하느님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한때’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약함과 재능 부족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가장 강력한 힘을 드러내셨을까요? 빵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테고, 병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실 때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아닙니다. 가장 강력한 힘을 드러내셨을 때는 바로 십자가에서였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 장면은 가장 무능해 보이는 순간이며, 가장 나약해 보이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가장 큰 힘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가장 나약하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실 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불평불만을 하며 그분의 손길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 자체를 볼 것이 아니라, 그분의 능력을 믿고 더 의지해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성장해 갑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나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지우고, 대신 세상 것에 관한 관심과 믿음으로 하느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아주 짧은 사제 생활을 하셨습니다. 1845년 8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46년 6월에 체포되어 그해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문초를 받으면서 보여준 신부님의 모습에 조정에서는 회유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는 세상의 기준보다 하느님의 기준이 더 중요했습니다. 특히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잘 아셨기에 어떻게든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하느님께 철저하게 의지하셨습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성녀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순교의 영광이 가장 큰 힘을 드러내는 증거임을 지금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후손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도 성인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큰 힘을 세상에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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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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