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김선옥
냉장고 티브이 세탁기가 수거차에 오른다
한때는 거실에서 주방에서 몸값을 톡톡히 하던 저들
흔전만전 내부를 파먹다가
붉은 살 군데군데 붙어있는 수박껍질처럼
내다 버린다
신제품이 출시 되면서
십 년 수명도 못 채우고 고물이 된
고장 한번 없이 아직은 쓸 만한데
차에 실려 중고센터로 가는 몸
정년이 멀었는데 누가 버렸나
끊긴 출근길에서
갈고 닦고 조여보지만
어디에서도 중고품이 된 남자
신상품에
앉았던 자리를 내어주고
어금니 거뭇거뭇 녹슬어 가는 몸
----애지 가을호에서
그 옛날에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돈이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돈과 인간의 지위가 역전된 것이고, 우리 인간들은 성인군자가 아닌 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의 광신도가 된 것이다. 돈은 아주 계산에 민감하고 냉철하며, 오직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만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평가한다.
인공지능은 아주 효율적이고 인간보다 천배는 더 뛰어나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우리 자본가들의 충신이 되었다. 인공지능병원이 들어서면 수많은 의료인들이 추풍의 낙엽처럼 떨어질 것이고, 인공지능로펌이나 인공지능법원이 들어서면 모든 법조인들이 추풍의 낙엽처럼 떨어지게 될 것이다.
추풍의 낙엽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예고된 풍경이지만, 그러나 인공지능의 등장에 따른 실직은 ‘인간과 기계의 경쟁’에 따른 대참사라고 할 수가 있다. 제아무리 건강한 신체와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자본의 법칙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이 꽃보다 아름답고 돈이 인간보다 우월하다. “냉장고 티브이 세탁기가 수거차에 오”르고, “한때는 거실에서 주방에서 몸값을 톡톡히 하던 저들”이 그 건강함과 고유기능에는 상관없이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십년 수명도 못 채우고 고물이 된” 것이다. 고장 한번 없었다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고, 정년이 아직 멀었다고 소리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본의 물결은 새로운 물결이고, 자본의 법칙에 따라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중고품들’은 모조리 다 폐기처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밤낮으로 공부하고 밤낮으로 자기 자신의 몸을 갈고 닦으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한번 중고품으로 낙인이 찍힌 실직자들은 그 설자리가 없게 된다. “끊긴 출근길에서/ 갈고 닦고 조여보지만/ 어디에서도 중고품이 된 남자”가 그것을 말해주고, “신상품에/ 앉았던 자리를 내어주고/ 어금니 거뭇거뭇 녹슬어 가는 몸”이 그것을 말해준다. 신제품이나 신입사원들이 우리 자본가들을 황금의 천국으로 몰고 가는 천사들이라면 중고품이나 중견사원들은 사사건건 말썽이나 부리고 제자리만 사수하려는 ‘집 지키는 개’와도 같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중고품은 골동품도 아니고, 폐품보다도 더 가슴이 아프고 쓰라린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중고품(실직자)은 주군의 운명에 따라 무덤 속까지 따라가야만 했던 기쁨조와 순장조와도 같다. 이팔청춘---, 꽃다운 젊음이 다 피기도 전에 시대착오적인 실직자의 운명이 되고, 이 쓸모없음에 대한 고통과 분노로 이빨을 갈며, 자살특공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실직자의 운명일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도 아니고, 인간의 지위는 영원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만물의 영장에서 중고품으로, 또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자본 중심주의’로 그 사회적 지위와 가치관이 변모를 하게 된 것이고, 우리 인간들은 다만, 황금알을 낳다가 비명횡사를 하게 될 ‘산란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김선옥 시인의 [실직]은 수사학의 꽃인 은유와 상징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중고품의 운명에 실직자의 운명을 덧씌우는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펼쳐보인다.
아는 것은 힘이다. 김선옥 시인은 ‘자본주의의 음모’를 백일하에 파헤치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인문주의의 찬가’를 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