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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소피스테스’(새로읽는 고전:9)
◎‘참됨 의미’ 토해낸 형이상학 입문서‘소피스테스’는 플라톤이 노년에 저작한 대표적인 대화편이다. 참됨 즉 ‘진짜란 무엇인가?’를 제기한 물음은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면 철학자들은 참됨 진짜를 늘 묻곤했다. 참된이란 우선 ‘맞음’이다. 즉 ‘진리’다. 또 참됨이란 진짜로 존재하는 것 리얼리티를 가리키며 올바르다는 것이다. ‘소피스테스’는 바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가리키는
진짜란
1)객관적인 인식 *인식론
2)진정한 존재 *존재론
3)올바른 가치 *가치론
이 세가지 종류의 참됨을 탐구하고 있는 걸작이다.
우리는 오늘날 가짜의 시대에 살고 있다.가짜 정치가들,가짜 기업인들,가짜 교수,가짜 법관,가짜 학생,가짜 상품,온통 가짜가 판을 친다.언어조차도 가짜다.아무런 내용도 없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남의 이야기 살짝 베낀 것들이 지면을 장식한다.이 세상 모든 것이 가짜다.우리 인생 자체가 가짜가 아닐까.도대체 진짜는 어디에 있을까.이 세상에 참된 것은 존재할까.참됨의 의미는 무엇인가.
○‘대화편’으로 새 사상 설계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는 아테네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쇠퇴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올 때였다.페르시아전쟁에 이김으로써 ‘그리스의 평화’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도시 국가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이르러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던 ‘올림픽’은 과잉경쟁과 사기가 판치는 시장바닥이 돼버렸고,승리의 벅찬 감정을 노래하기 위해 만들었던 ‘드라마’는 젊은이들의 광란의 장소가 돼버렸다.소크라테스는 이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젊은이들에게 ‘이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를 설파했다.소크라테스는 그를 미워했던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명목으로 재판을 받고 독배를 마셨다.
플라톤은 대부호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아테네 제일 가는 준수한 외모에 뛰어난 글솜씨를 자랑했던,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젊은이였다.그는 당시 대부분의 부잣집 젊은이들처럼 정치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소크라테스를 만나면서 인생의 행로를 바꾸었다.그는 ‘철학’을 통해 세상을 구제하려고 마음 먹었으며,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젊은시절 썼던 시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그리고 ‘대화편들’을 통해 그 뒤 서구 지성사 전체를 지배할 위대한 사상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식장사꾼 집요히 공격
‘소피스테스’편은 플라톤이 노년에 저작한 대표적 대화편이다.이 저작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소피스테스’란 그리스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아테네로 모여든 ‘지식 장사꾼들’을 가리킨다.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많은 ‘지식인들’이 요청된다.소송이 많이 걸리므로 수많은 판검사 변호사들이 필요하고,떼돈 버는 장사꾼들이 많으므로 그 상황을 정리해줄 경영학자 경제학자가 필요하다.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럽고 쓸쓸하므로 그 마음을 쓰다듬어줄 철학자 문학자들도 필요하다.또 어지러운 세상에 권력자에게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해줄 정치학자도 필요하다.소피스트들은 바로 이 어지러운 아테네에서 자신의 지식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해 세상을 구하려 했던 ‘학자 지식인들’이 아니라,이른바 ‘궤변’을 통해 어떻게 이 어지러운 세상을 요령있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가르친 지식장사꾼들,문화사기꾼들이었다.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한평생 논적(論敵)으로 삼았던 이 소피스트들을 그의 대화편을 통해 집요하게 공격했다.이 대화편들중에서도 그의 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저작이 ‘소피스테스’다.
참됨, 즉 ‘진짜’란 무엇인가.이 대화편이 제기한 물음은 바로 이것이었다.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면 철학자들은 참됨,진짜가 무엇인가를 늘 묻곤 했다.이 참됨,진짜를 ‘실재(實在)’라 부른다.
그런데 참됨은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1) 참됨이란 우선 ‘맞음’이다.즉 ‘진리’다.진리인 것이 참된 것이다.
2) 또 참됨이란 진짜로 존재하는 것,참된 존재,즉 ‘리얼리티’를 가리킨다.
3) 마지막으로 참되다는 것은 올바르다는 것,선하다는 것을 가리킨다.즉 ‘좋음’ 또는 ‘옳음’을 가리킨다.
첫번째 맥락을 ‘인식론적’맥락이라 하고,두번째 맥락을 ‘존재론적’맥락이라 하고,세번째 맥락을 ‘가치론적’맥락이라 한다.다시 말해 참됨,진짜란 객관적인 인식,진정한 존재,올바른 가치를 동시에 의미한다.
○‘동그라미 형상’ 모방세계
‘소피스테스’는 바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가리키는 이 세가지 종류의 참됨을 탐구하고 있는 걸작이다.
가짜를 진짜로 속이는 자들,이들이 소피스트다.가짜를 진짜로 속인다는 것은 세가지를 의미한다.하나는 틀린 것을 맞다고 하는 것이요,둘은 없는 것 즉 가짜를 있는 것 즉 진짜라고 하는 것이요,셋은 그른 것,잘못된 것을 옳다고 하는 것이다.
개를 보고 “저것은 토끼다”라고 말하는 것이 인식론적 가짜요,개가 없는데 “저기에 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존재론적 가짜요,의사가 아닌 사람이 처방전을 쓰는 것이 가치론적 도덕적 가짜다.
소피스트들은 바로 가짜를 진짜로 속이는 사람들.오류 가짜 허위를 진짜로 속이는 사람들이다.그렇다면 진짜는 무엇일까.진짜의 규준이 서야 가짜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인 것,영원한 것,자기 동일적인 것,순수한 것,이것이 참된 것이다.예컨대 수학적 원을 생각해보자.보름달의 동그라미,접시의 동그라미,눈동자의 동그라미,호수에 던진 돌이 그려내는 동그라미는 모두 불완전한 동그라미다.자세히 살펴보면 완벽한 동그라미는 없다.
○‘사유의 세계’로의 안내서
그러나 이 모든 동그라미들이 어떤 완벽한 동그라미를 모방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수학이 정의하는 완벽한 동그라미를 모방함으로써 우리 현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더 나아가 수학적 동그라미도 더 완전하고 영원한 동그라미를 모방한 것이 아닐까.플라톤은 이 이상적(理想的)인 동그라미를 동그라미의 ‘형상(形相)’이라 부른다.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로 형상의 세계를 모방해 만들어진 것이다(조물주가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은 ‘티마이오스’에서 그려지고 있다).플라톤은 이 형상을 발견하고 규정하는데 평생을 바쳤다.왜냐하면 이 진짜를 수립해야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올바른 문화가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국가’편은 이 형상에 입각한 이상적인 국가를 그리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플라톤의 철학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질 들뢰즈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모두 반(反)플라톤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그러나 알랭 바디우처럼 플라톤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다시말해 플라톤주의와 반플라톤주의의 대립이야말로 현대 형이상학의 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유의 세계의 중핵에는 ‘형이상학’이라는 담론이 위치해 있다.형이상학이야말로 인간 사유의 가장 높은 경지다.그리고 형이상학에 입문하려면 우선 플라톤의 ‘소피스테스’를 읽어야 한다.말초적인 감성이 아닌 깊은 사유의 세계에 들어가려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정우 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