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간신히 피한 헌재 마비 사태…재판관 선출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2024.10.15 00:43
후임 재판관 선출이 지연되면서 헌법재판소가 6인 재판관 체제라는 비정상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진은 이종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지난 6월 27일 헌재 대심판정으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정족수 조항 효력정지, 6명만으로 사건 심리 가능
재판관 3명 여전히 선출 못해…국회의 직무 유기
헌법재판소가 6년 만에 다시 기능 마비에 빠질 위기에 놓였다가 겨우 벗어났다. 헌재는 어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제기한 헌법재판소법 일부 조항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헌재법 23조 1항이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 참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일부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 공석이 발생한 경우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위원장은 지난 8월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이번 헌재 결정이 아니었다면 이 위원장은 언제쯤 최종 결론이 나올지 기약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 후임 재판관 선출을 기다려야만 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공직자를 포함한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다.
헌재가 최악을 피한 건 다행이지만 사흘 뒤면 ‘6인 재판관 체제’라는 비정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종석 헌재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세 명이 이틀 뒤 임기 만료로 물러나는데 아직 후임 재판관을 선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에도 재판관 공석으로 헌재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적이 있다. 헌재 재판관의 반복적인 공석은 정치권의 무책임이자 직무유기다. 헌재도 어제 가처분 결정문에서 “임기 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헌재 재판관은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각각 세 명씩 임명하고 국회가 세 명을 선출한다. 이번에 공석이 된 재판관 세 명은 국회가 선출할 몫이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후임 재판관의 추천 방식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국회 관례에 따라 여야가 각각 한 명씩 추천하고 남은 한 명은 여야 합의로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 민의에 의한 의석 분포를 반영해 야당이 두 명의 추천권을 가져야 한다고 맞선다. 정치권이 이 같은 정쟁을 벌이느라 핵심 헌법기관을 비정상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헌재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1987년 헌법 개정으로 출범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헌재는 국회가 대통령 등 공직자 탄핵소추를 의결했을 때 법률 위반의 중대성 등을 따져 최종적으로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다. 일부에선 야당이 정치적 계산으로 헌재의 비정상 상황을 방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한 공직자는 자동으로 직무가 정지되는데, 헌재의 탄핵 심판이 늦어지면 직무정지도 길어져 사실상 탄핵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야당은 전향적 태도로 여당과의 협의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