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에제키엘 36,23-28 마태오 22,1-1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혼인은 한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일생 동안의 통과 의례
가운데 한 단계입니다. 예수님의 첫 기적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였습니다(요한 2,1-12 참조).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중요성도 두 번씩이나 언급하시는데,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계명(마태 5,31-32 참조)과 함께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라는 선언을 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드실 때도 혼인은 좋은 예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인
‘혼인 잔치의 비유’가 그렇고, ‘열 처녀의 비유’(마태오 25,1-13 참조)도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인 ‘혼인 잔치의 비유’를 묵상합니다. 임금이 혼인 잔치를 열고 종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을 불러오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참석을 거부하고
심지어 임금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분노한 임금은 군대를 보내 복수를 하고, 종들에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잔치에
데려오게 합니다. 마침내 혼인 잔치는 손님들로 가득 찹니다.
그런데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는
하인들에게 그의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혼인 잔치는 가장 풍성한 잔치였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화려하게
치장을 하였고 손님들도 합당한 예복을 갖추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랑 신부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거리에서 불려 온 사람들은 종들을 무작정 따라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초대받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의 입성을 혼인 잔치의 초대로 비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준비하고 있어야만 하는 믿음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땅히 갖추어 입고 준비해야 할 우리의 예복을 오늘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하여 알려 주십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서울대교구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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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에제키엘 36,23-28 마태오 22,1-14
예수님의 비유의 중심 주제는 늘 하느님 나라이고, 이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잔치로 비유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 속의 혼인 잔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언제나 문을 잠그지 않고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의 잔치는 기쁨과 무상성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잔치에서 이런 무상성의 특성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잔치를 연다고
초대하면 벌써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무엇을 들고 가야 하나?’ ‘얼마쯤 넣어 가야 하나?’
나아가 ‘꼭 가야 하나?’ 등의 별의별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요즘 세상에서 공짜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공짜라고 해 놓고 실제로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입니다. 무상의 초대가 사라져 버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초대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성의
초대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모두 불러오라는 비유 속 주인의 말은
속상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로마 5,6)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이가 초대받아 풍부하게 나누고 먹을 수 있는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잔치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복을 마련하는 문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초대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하느님 나라의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잔치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거기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 욕심만 차리고 저만 위하여 사는 사람이 내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만 아는 이들 속에서
기뻐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옷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 옷, 곧 하느님 나라에
걸맞은 양식으로 살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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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에제키엘 36,23-28 마태오 22,1-14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학생 때입니다. 가을이면 북한산으로 교구 신학생들이 소풍을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산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삼겹살, 김치찌개, 소주 한잔은 산행의
피로를 풀어 주었습니다. 식사 후에 모두 모여서 장기자랑을 하였습니다.
마칠 때는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교가’를 부를 때도 있었고, ‘임쓰신 가시관’을 부를 때도 있었고,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를 때도 있었습니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공동체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수들의 공연장을 가면 한국의 관객들은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터를 켜거나 야광봉을 들고 공연하는 가수와 함께 하려고 합니다.
외국의 가수들은 한국 관객들의 ‘떼창’에 매료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가수는 노래하고, 관객은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가수와 관객이 공연을 통해서 하나가 되고,
함께 즐기는 것이 한국의 공연문화입니다. 미국에서 야구경기를 두 번 보았습니다.
응원의 열기는 한국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야구경기에서도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넘어
응원을 통해서 선수들과 하나가 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한국은 미국과 다른 모습을 봅니다. 피정, 교육, 미사와 전례가 있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본당에 다양한 행사가 있습니다. 전 신자 도보성지 순례를 가기도 합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도 수리산 성지, 절두산 성지를 전 신자가 걸어서 순례했습니다.
미사를 마치면 구역별로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었습니다. 전 신자가 기차를 타고
성지순례를 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갈 수도 있지만 함께 가면서 친교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금마련 바자회를 하기도 했고, 체육대회를 하기도 했고,
본당의 날 행사를 하기도 했고, 전 신자가 바닷가로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매년 여름캠프를 갔습니다. 구역별로 연도대회, 성가 경연대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장례가 나면 빈소로 가서 함께 연도를 바쳤습니다. 제가 함께하는 부르클린 한인 성당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행사가 있습니다.
장례가 나면 빈소에서 연도를 함께 합니다. 야외미사도 있습니다. 매 주일 미사가 끝나면
친교실에서 음식을 나눕니다. 한국인들은 신앙생활에서도 전례의 엄숙함을 따르기도 하지만
친교와 나눔을 통해서 신앙의 기쁨을 나누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종교는, 신앙생활은 어쩌면 하느님과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베들레헴 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선으로 넘어오신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감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삶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을 넘어서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시곤 했습니다. 등잔에 기름을 잘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면 기쁘게 맞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복을 잘 갖춘 사람은 혼인잔치에서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름은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하는 재물입니다.
기도, 자선, 희생, 나눔입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예복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정결, 가난, 순명입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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