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는 굼벵이 / 박태일 굼벵이도 연길 굼뱅이는 시골 굼벵이 굼벵이 바구니 곁에 굼벵이와 연이 없을 듯 싶은 처녀가 앉았다 굼벵이는 왜 굼벵이라 부를까 구멍을 파고든다고 굼벵인가 구물구물 베틀베틀 구르니 굼벵인가 가지도 왕가지 호박도 맷돌 호박 하남 아침시장 까망 크레용을 하나씩 녹여 마신 듯 깨벗은 굼벵이를 보면서 내 슬픔도 어느 하늘을 걷다 멈출 바람개비 굼벵이 바람개비 같으리라 생각한다
- 시집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산지니, 2023.11) ----------------------
* 박태일 시인 1954년 경남 합천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 1980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 『옥비의 달』 『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 등. 1990년 김달진문학상, 2002년 부산시인협회상, 2004년 이주홍문학상, 2014년 최계락문학상 등 수상 현재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시인이 처음 연변 땅을 밟은 것은 1991년 8월이라고 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정식 수교는 1992년 8월이었으니, 수교 전의 중국 땅을 시인은 방문한 것입니다. 수교 전이라 양국 간의 직통 노선도 없었고, 더군다나 수도인 북경도 아닌 중국의 소도시인 연길까지의 방문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시인의 방문은 불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변대학교에서 열리는 남북한 국제학술대회의 참가를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연변에 도착한 시인은 일행과 떨어져 처음으로 룡정, 윤동주, 송몽규의 무덤을 둘러보았고, 백두산 천지에도 올랐다고 합니다. 저도 두 번, 연변을 방문한 기억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문은 1999년쯤이었습니다. 한 단체의 일원으로 연변시의 초청을 받아서 방문했습니다. 연변을 연변이라고 부르지 않고, ‘옌지’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에 처음 백두산을 올랐었는데, 수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변을 찾는 국내 관광객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기에 외국에 도착했다는 상황도 낯설었고, 한국말처럼 들리지만, 특이한 억양의 사투리나 음식, 연변의 거리도 익숙하면서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1991년 8월에 도착한 시인은 저보다 더 낯설었을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의 첫 장을 넘기며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인이 연변이라는 타지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한 권의 시집을 펴낼 수 있을 정도의 영감을 주었던 것일까요. 시인은 시집의 붙임(연변 시집을 펴내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느 관광객의 여행시와 다른, 연변 장소시를 내가 쓸 수 있도록 이끈 힘과 일깨움은 그분들로부터 말미암았다.”라고요.
시인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한(韓)민족이라는 피의 흐름, 그 근원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나에게도 좋은 것이고 누구에게나 슬프고 아픈 것은 나에게도 아프고 슬픈 것입니다. 그것은 연변 시장에서 만난 처녀나, 하남 시장에서 만난 누군가, 그리고 시인에게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죠. 사람이라면 다소 느리더라도 흐를 수밖에 없는, 굼벵이처럼 우리 가슴속을 흐르는, 목적이나 선후가 없는 인간애(人間愛)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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