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혀

[장성숙]

기가 막혀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내게 상담을 받는 한 남성이 명절을 쇠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

   “때때로 아이의 눈이 얼마나 정확하고 무서운지, 등줄기에 땀이 쫙 솟는다니까요.”

   설 명절에 부모님을 방문한 뒤 그 남성은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단란하게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음식점에 들렸을 때 4살짜리인 딸이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단다. 그래서 아빠인 자기가 밥을 안 먹으면 아무런 간식도 주지 않겠다고 딸에게 엄포를 놓았는데, 그래도 딸은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뒤 부부가 차 안에서 마실 커피를 사며 아이들에게 줄 딸기 우유도 샀다고 한다. 이때 아들이 마실 것만 산 게 아니라 깜박 잊고 딸의 것도 사버렸단다.

   비록 딸의 것도 사긴 했지만 좀 전에 밥을 먹지 않으면 아무런 간식도 주지 않겠다고 말한 게 있어 그는 아들에게만 딸기 우유를 건네고 딸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딸은 막무가내로 울며 자기도 먹겠다며 고집을 피웠단다. 그러자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7살 자리 아들이 아빠에게 동생에게도 주라고 간청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인 자기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이러한 아들의 청을 거부하였단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너무 완강했나 싶어 아들에게 아빠가 어떻게 보였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살살 구슬려 말을 시켜보았단다. 그랬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했다.

   “동생과 똑같아 보였어요.”

   이런 말을 들은 자기는 너무나도 기가 차 한동안 멍하니 있었는데, 등줄기에 땀이 확 솟더란다. 어쨌든 자기도 먹겠다고 떼를 쓰는 여동생과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고 버티는 아빠가 똑같아 보였다고 하다니…. 그는 아들의 그 놀라운 발언에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기가 막히네요.’ 하는 말을 토해내었다. 졸지에 40대인 그 아버지는 7살짜리 아들에게 한 방 먹고 말았다. 상담자인 내가 불만이 많은 그 남자에게 너그럽게 마음을 쓰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그 아들의 말 한마디가 훨씬 강하게 작용했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게 없고, 그때그때의 여건에 따른 상대적으로 옳고 그름이 정해지는 가변적인 것들 뿐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고 유연해져야 그만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나’라고 하는 아집이 있는 한 자신의 견해나 관점이 합당하다고 우기기 일쑤다. 그래서 끊임없이 갈등이나 분쟁을 일으키며 사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렇게 분쟁하는 게 살아있음의 징표라고는 하지만 그 귀한 시간의 상당 부분을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설사 상대가 무리하거나 잘못을 했더라도 연민을 가지고 그러려니 하며 너그럽게 넘어가는 게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요즈음 부쩍 하게 된다. 엄정하게 한다고 더 나은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져줄 때 상대방도 기분이 상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존중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져서인지, 더 고분고분해지는 것을 빈번하게 목격하니 말이다.

   요즈음 들어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자녀에게 좋은 부모는 똑똑한 부모라기보다 푸근한 부모라는 사실이다. 자녀가 잘했든 못했든 물고 빨아주는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 앞에서 그동안 상담자를 제2의 부모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엄부자모의 역할을 강조했던 나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상담하면서 엄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며 서릿발 같은 직언을 서슴지 않았었는데, 그것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즉 자녀를 물고 빨고 하는 부모의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면, 상담자 역시 그렇게 마냥 따듯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성적인 판단이나 지적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지적이나 판단을 할 때 따듯함을 충분하게 동반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도움은커녕 도리어 반감이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그다지 푸근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고집도 세고 하고 사리 판단이라는 것을 중시하기도 하고…. 이러한 자신의 성향을 어떻게 해야 좀 더 푸근한 것으로 성장시킬지 막연하다.

   이러던 차에 내게 상담을 받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 맞아! 엄부 역할도 따듯함을 흠뻑 머금은 상태에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완성일 따름이지!’ 하는 생각을 절로 하였다. 7살짜리 어린 아들에게 옳고 그름을 떠나 아버지가 떼를 쓰는 여동생과 똑같아 보였듯이, 나 또한 자칫하다가는 내담자에게 설익은 미숙한 상담자로 비치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윤길순 (Texas)]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며 살아가는 인생!!
지적 ,판단 지겹지요.
반감, 저항 반응 당연하지요..

수고하셨어요.^^***

[장성숙]

예, 요즈음 마음이 많이 착찹하답니다. 다름 아니라 저의 상담을 받은 어떤 여성이 저에게 반기를 심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는 사람인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좀 심하다고 말했더니 난리를 치며 제가 공감적이지 않다고 하였답니다.

[윤길순 (Texas)]

[박숙희]

그 여성은 해결할 숙제를 가지고 상담하려는 게 아니라 공분과 위로를 바라고 왔던 모양입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