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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8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아담 안에서 눈을 떴으나 아들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속히 말씀 앞에 앉습니다.
세상의 것을 접하기 전에 먼저 주님과 함께 연합하기 원하오니 이 종을 받아 주옵소서.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서 그런지 잠을 푹 잤습니다.
아직 약 기운 때문에 정신이 몽롱하지만 나의 정신을 깨우사 맑은 정신을 허락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신부로 세워주시어 이 하루도 주님과 한 몸 된 부부의 모습으로 살게 하소서.
주님 안에 나의 생명이 있사오니 그 생명으로 호흡하게 하시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시 41:1-13
제목 : 내가 바로 주를 대적하여 발꿈치를 든 자입니다.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 나의 묵상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을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은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어 가난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가난한 것을 비롯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 사업이나 여러 가지 일에 실패한 사람, 가진 자들로부터 억압 받는 힘없는 노동자들, 그런 고통과 실패로 인하여 절망하고 있는 사람, 권세자들로부터 횡포를 당하는 무기력한 약자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자들이며 누군가의 도움과 보살핌이 절실하게 필요한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같은 기관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성금을 모금하기도 하고 날개 없는 천사들이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맞아 아무도 모르게 수 천 만원 혹은 수억 원씩 기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또한 교회가 이런 일을 감당하여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고통받고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진짜 가난한 사람이 누구일까?
어느 뉴스에 나온 소식이다.
40대 중반인 부부가 서울역에서 서로 작별을 하였다.
아내는 어린 딸을 데리고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경찰인 남편과 함께 서울역에 나왔다.
남편은 아내와 딸을 전송하고 서울역 광장으로 나와서 걷다가 갑자기 캑캑거리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조금 옆에 떨어져 있던 청년 한 명이 뛰어와서 쓰러져 있는 경찰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입을 열어 돌돌 말려 있는 혀를 손으로 잡아끌어 당겼다.
경찰은 점심에 먹은 음식이 기도를 막는 바람에 혀가 말려 그 혀도 함께 기도를 막아서 순간적으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쓰러진 것이었다.
혀를 펴자 경찰은 순간 기침을 하면서 숨을 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청년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였고 경찰의 손과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하였다.
10분 후에 119가 도착하여 경찰을 병원으로 후송하였다.
이 미담의 주인공은 해군작전사령부에 근무하는 중위로 밝혀졌다.
연말연시에 참 아름다운 소식이며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40대 후반의 이 경찰이 이처럼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다시 죽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언젠가 또 다시 죽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육신의 목숨(프쉬케)보다도 진짜 생명(조에)이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을 말한다.
이 땅 위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진짜 불쌍한 사람이고 그야말로 가난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는 바로 이처럼 영원한 생명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이런 자에게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전하는 자가 진짜 복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사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 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런 자들은 재앙과 어려움이 닥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주신다고 말한다.
또한 2-3절에서 그를 지키며 이 땅에서 복을 주셔서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고 비록 병상에 있다 할지라도 그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처럼 가나한 자를 돌보는 자의 생명을 지키시며 그의 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이런 물질, 목숨, 건강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구약은 신약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옛 언약이요 신약은 새 언약이다.
옛 언약에서는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구약의 율법을 지켜서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주의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갈 때 주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요셉이 고생고생 하다가 나중에 총리가 되었으니까 우리도 ‘고진감래’ 고생 후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조금만 참고 고생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욥이 그 엄청난 고난을 겪은 후에 물질을 두 배로 받은 것처럼 우리도 이 고난을 견디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2-3배의 물질 축복을 주실거야, 하는 식은 옛 언약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은 여전히 꿈속에서 사는 것, 그림자나 모형을 실제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롬 5:15b)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골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4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신을 고쳐 달라고 간구한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물론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울 대신에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밧세바를 범하고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그녀의 남편을 죽이는 비열한 짓을 저질렀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의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 죄를 지적하신다.
다윗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백하지 않고 지내온 2년여의 세월이 아마도 지옥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편 32편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 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그런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그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한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즉시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시 32:5-6)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죄를 회개한다고 해서 죄의 결과까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한 대가 곧 그에 대한 징계는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것은 생명이다.
죄를 가지고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주의 보혈을 힘입어 용서를 구하고 회개할 때 거기에 아들 안의 생명이 임하고 그로 인하여 영생을 얻게 된다.
다윗과 같은 경우도 그의 죄를 용서는 받았지만, 죄의 결과로 낳은 아들은 하나님께서 치셔서 결국 죽고 말았다.
5절 이하에서는 다윗을 대적하고 비웃으며 공격하는 원수들을 고발하며 자기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원수가 다윗이 빨리 죽기를 바라며 악담을 하는 것을 고발하고, 원수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 그들의 중심에 악한 것을 생각하였다가 그것을 험담으로 퍼트리기도 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수군수군하기도 하며 다윗이 중병에 걸려서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무엇보다 가장 친한 친구조차 그를 배신하고 돌아서는 그런 것을 보면서 그 원수를 갚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9-10)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도대체 뭔가?
사도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을 외면하고 다 떠나버린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하여 원망하기보다 주의 복음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한다.
(딤후 4:16-18)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다윗은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바울은 자기가 당한 고난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기를 바랐다.
성경은 다 같은데 왜 다윗과 바울의 기도, 다윗의 기도와 예수님의 말씀이 이토록 정반대일까?
그것은 우리가 시편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시편에서 다윗이 원수를 멸해 달라고 하는 기도는 사람 원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사실 자신의 왕위를 찬탈하고 빼앗은 압살롬과 다윗 자신을 배신하고 압살롬 편에 선 자신의 친구 아히도벨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윗이 그들을 직접 대적하여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뒤에서 사주하며 역사하고 있는 사탄의 궤계를 끊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대제사장들로부터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3일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크게 꾸짖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
이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 뒤에 숨어서 역사하고 있는 죄의 세력, 곧 사탄을 향하여 명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영적 세계를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열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가지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인지 아니면 사탄이 주는 욕심인지를 잘 분별하여 사탄의 궤계라면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수년 전 늘행복한교회를 목회할 때의 연말이 생각난다.
그 때는 교회가 참으로 몹시 어수선하였다.
여기저기서 교회를 옮기겠다는 이야기, 교회를 끊겠다는 말, 교회를 잠시 쉬겠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런 말들로 인하여 마음이 많이 착잡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일들이 닥치면 사실 목사로써 내 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은 아픔이 뒤따른다.
그들을 심방하고 주의 말씀으로 권면해 보지만,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실 일임을 나는 안다.
나는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주님 손에 달려 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히 지적해서 말할 수도 없다.
영적인 눈으로 분별해 보면 희한하게 상대를 오해하도록 모든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탄의 계략이다.
다윗이 이런 사탄을 대적하고 갚을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간구했던 것처럼, 교회를 흔들어 놓으려는 이 사탄의 계략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시에는 마음이 아프고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파레시아로 다시 담대하게 일어나 내가 아버지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프긴 해도 그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진짜 아픈 건 숫자가 줄어드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불쌍하기 때문인 것이다.
큰 교회로 옮기겠단다.
거기서 존재감 없이 그냥 왔다갔다,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생활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한다.
내게 맡겨진 베트남 사역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목회지이다.
이제 곧 한 해가 지면 또 다시 한 해가 시작되며, 새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 할 것을 다짐해 본다.
내가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복음 전하는 일밖에 없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 묵상 후 기도
주님...
지금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은혜와 위로를 보게 하셨고 마지막 남은 한 달을 주님과 더 가까이 연합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나온 세월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그런 일들로 인하여 나 스스로 수군수군거렸던 이 죄를 용서하소서.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였던 이 우매한 종을 주의 공의로 심판하소서.
내가 주님을 대적하여 발꿈치를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자백하오니 이제는 조용하며 잠잠히 주의 품안에서 주의 말씀을 얻어먹는 자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이 땅에 가장 가난한 자들인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는 자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