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초등학교 다니던 때 서부활극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 중 많은 영화가 인디언들과의 전투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한참 인디언의 습격으로 어려움을 당하던 포장마차 행렬이 있는 곳에 나팔소리 울리며 미군 기병대가 출동하여 달려옵니다. 인디언들을 물리치고 백인들을 구하는 장면을 보면서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습니다. 당시에 백인 기병대는 좋은 사람, 인디언들은 나쁜 사람으로 머릿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 생각에 의구심을 가지고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서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후의 일입니다. 영화의 내용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좋고 나쁜 사람은 인디언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인디언’ 하면 나쁜 사람들이었는데 그냥 미국의 원주민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도 여러 다른 부족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알고 있던 아파치 족이나 코만치 족 이외에도 많았습니다. 매우 전투적인 부족이 있는가 하면 온순한 부족도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들이 본래 그 땅에 살던 원주민이었습니다. 그곳에 주로 유럽에서 많은 백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원주민 입장에서는 자기네 땅을 빼앗으려 들어온 이방인들입니다. 정당한 값을 주고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강제로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그냥 넘겨줍니까?
따지고 보면 오늘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위해서 오랜 침략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 안에서 인종 청소작업과 같은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잔인성과 탈인간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문명의 시대에도 그 포학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으로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도 소위 독립전쟁이랍시고 명분을 세워 비슷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반적인 인간성을 포기한 짓입니다. 참으로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이 작은 행성 지구촌에서 각자 한 세기 살자고 이렇게 모질게 살아야만 하는지 생각할수록 아프기만 합니다.
그 후에 미국 정부는 일정 부분 보호구역으로 정하고 인디언들을 집단 이주시켜 거주지역을 제한하였습니다. 과연 비옥한 땅을 주었을까, 충분한 만큼의 지역을 주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때로는 한 곳으로 몰아세워 한 부족을 몰살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능력도 없는 노인들과 어린아이들까지, 말 그대로 부족을 청소해버렸습니다. 오늘 과연 원주민이 얼마나 남아서 생존하고 있을까요. 옛날 철없이 박수치며 좋아했던 영화들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픽픽 쓰러지던 원주민들이 과연 오늘날 범죄자들처럼 악했던 사람들이었나 생각해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법이 있어도 강자들의 것이요 질서도 힘 있는 자들이 세우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늘이라고 달라진 것이 있는가 싶습니다.
어려서는 아비의 억압, 커서는 남편의 압제 속에서 살다가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자유를 얻습니다. 고난의 대가로 넉넉한 경제적 여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겠지요. 그 재능을 아비에게서도 남편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방해거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맘껏 다니며 초상화를 그립니다. 사진기가 흔하지 않았던 시기이니 자신을 남기기에는 초상화가 최적이었겠지요. 유명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면 그만한 값도 나오니까 가지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마당에 꼭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의 마음과 열정을 표현하고 싶은 것입니다.
어느 날 인디언들의 생활 현장을 담은 그림을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수우족의 추장이라는 사람의 용맹스런 모습을 담겠다는 포부를 가집니다. 실제 짐을 싸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오로지 그를 찾아 그의 초상화를 그리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러나 닥친 현실은 전혀 딴판입니다. 수우족의 소유하고 있던 땅을 빼앗아 차지하려는 백인들의 음모가 벌어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곳으로 낯선 백인 여자가 들어갑니다. 왜? 한창 정부에서는 인디언 지역 보호를 놓고 가부가 갈려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치적 문제는 알지도 못하고 화가는 자기 포부만 이루려고 불구덩이에 들어간 것이지요. 단순히 그림을 그리려는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인디언뿐만 아니라 화가인 ‘웰던’까지 처리하려고 합니다. 높은 값을 치르며 추장도 만나 원했던 그림을 그리고 기병대 장교의 도움도 받기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야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정부가 적극 인디언 소유의 땅을 차지하려 나선 것이니 당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목도하며 웰던은 자연스럽게 인디언들의 권리 옹호를 위한 투사가 됩니다. 그러나 다수와 소수의 싸움입니다. 옳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의 욕심이 권력까지 업고 있으니 누가 당할 수 있습니까? 아무튼 대단한 여성이라 여깁니다. 인종 민족 나라를 초월하여 여성을 등한시하던 때 앞서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우먼 워크 어헤드’(Woman Walks Ahead)를 보았습니다. 2017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