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1코린토 1,17-25 마태오 25,1-13
오늘 복음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신랑은 그리스도이시고,
열 처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저마다 그리스도의 신부고 교회입니다
(에페 5,22-32 참조).
슬기로운 처녀들은 모범적인 신앙인들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착하기는 커녕,
약고 야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슬기로운 처녀들의 지인이고 친구였을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에 기름이 떨어지자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그것을 좀 나누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이 기름은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뜻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의 깨어 있음을 대신해 줄 수 없고,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한결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등잔의 불은 어두운 밤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충실히
사는 삶을 상징합니다. 등불의 기름은 행실이 동반되는 지속적인 믿음의 삶입니다.
이 기름은 뒤늦게 급히 마련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가난한 형제들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청주교구 정용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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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1코린토 1,17-25 마태오 25,1-13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루사이에 부고를 두 번 들었습니다. 여행사를 하시는 형제님의 아들이 밤사이 심장마비로
하느님 품으로 갔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젊은이가 꿈을 다 펴지 못하고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부모님의 상실은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하며 젊은 청년이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가
슬픔을 딛고 힘을 내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내년에 부제품을 받는 형제님의 장모님이 가슴이 답답하여 병원엘 갔지만 안타깝게도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하였던 어르신입니다. 자식들에게는
큰 슬픔이지만 어르신께서는 이제 투석이 없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리라
믿습니다.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Hodie mihi, Cras tibi)”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문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10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0처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등잔은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름은 그 시간과 공간에 채워야 하는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빌려올 수도 없고,
나의 것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름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 주어라. 누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까지 내 주어라.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이런 삶은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타인에게 빌려 올 수 없습니다. 공기가 있어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그냥 우리가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름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삶 또한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빌릴 수 없습니다. 물이 있어서 마시는 것처럼 우리가 행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름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름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참된
신앙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름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는 불빛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름은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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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1코린토 1,17-25 마태오 25,1-13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마태오 25,4)
오늘 복음에서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로 묘사됩니다.”(25,1)
여기서 신랑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요(9,15), 열 처녀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슬기로운 이들도 있고,
듣고도 지키지 않는 어리석은 이들도 있습니다(7,21-27).
선인들과 악인들이 함께 사는 불완전한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내림을(24,48)
안타까움 속에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밤중, 뜻밖의 시간에 오실(25,6.13) 주님을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기다리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준비하고 있다가
마중 나가야 할 것입니다(1테살 4,17).
이렇듯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늘 깨어(24,42; 25,13) 준비하고 실행한 이들은 마지막 날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은 이들은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25,11) 하고 청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7,21-23. 24-27).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오시는 분이 누구이시며 기다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식 차원만이 아니라 주님을 맞기에 합당한 삶을 포함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시든 내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여야겠지요.
만반의 준비를 하고도 잠들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는 깨어 기다리며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돈으로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올 수도 없으며,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자가 책임져야 할 신앙의 문제요,
하느님과의 고유한 인격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등과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한 등은 무엇이고
기름은 무엇일까요? 등은 주님의 말씀이요 그 말씀과 주님의 영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인
깨끗하고 순수한 내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름이란 인내와 희망 가운데 주님을 기다리는 몸짓이요, 그분을 갈망하는 거룩한 열정이며,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실행하는 태도입니다.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것은 말씀의 실행을 말합니다. 곧 가장 작은 이,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사랑하고 주님으로 모시는 사랑의 실천을 뜻합니다.
그것은 주님을 향한 기도요, 선이신 주님의 사랑과 정의 안에 머무는 행실을 말합니다.
사랑의 불꽃은 나의 어두운 영혼과 세상의 어둠을 밝힐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있도록
합시다. 등도 기름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 곧 말씀을 듣지도 실행하지도 않는 사람이 될 수야
없겠지요. 또 어정쩡하게 등은 준비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곧 말씀을 듣기는 하나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오늘도 불현 듯 나를 찾아오실 주님을 사랑으로 기다리는 가슴 설레는 행복한 날이 되도록,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주님의 영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모닥불을 피웠으면 합니다.
작은 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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