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29:18)
신33:26-34:12절) 모세의 비전
Ⅲ.모세의 비전(하)
이제 모세는 자기가 해야 할 사명(使命)을 모두 다 마친 후, 죽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큰 기쁨 가운데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꿈은 단순히 개인적(個人的)인 꿈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꿈이요,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34:1-3절)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모세가 그 불가능(不可能) 했던 모든 일들을 다 감당(勘當)하고.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포기(抛棄)하지 않았던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熱情)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모세가 고집쟁이(꼴통) 이스라엘 백성들만 생각했더라면, 그는 절대로 이 모든 일들을 감당(勘當)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실 때, *갈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고. 또 절대로 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열정(熱情)이 모세를 설득(說得)했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모세로 하여금 불가능(不可能)한 것을 가능(可能)하게 만드는 꿈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홍해를 앞에 두고 애굽 군대(軍隊)가 추격(追擊)해 오는데도 동요(動搖)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14:13절)...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救援)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에게 소망(所望)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영원토록 망(亡)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곧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우리들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환란(患亂)이나 재앙(災殃)이나 전쟁(戰爭)과 같은 어려움이 올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모세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34:4절)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개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하나님께서 무려 450년 전 아브라함에게 창13:17절)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縱)과 횡(橫)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約束)하셨는데, 이제 그 땅의 경계(境界)까지 왔습니다. 지금 450년 전 하신 하나님의 약속(約束)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무슨 말씀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말씀은 영원히 유효(有效)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은 보물(寶物)지도와 같습니다. 누구든지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가면. 보물(寶物)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변명(變名)의 말씀을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귀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냥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가나안 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우상(偶像)과 음란(淫亂)을 몰아내고. 의(義)와 공평(公平)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지구상(地球上)에서 한 번도 존재(存在)하지 않았던 가장 깨끗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社會)를 그들이 만들 것입니다. 그 앞에서 마귀(魔鬼)의 세력(勢力)은 힘을 쓰지도 못하고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이처럼 꿈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幸福)한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에 절망(切望)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이익(利益)때문에 죄(罪)와 타협(妥協)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봉사(奉事)한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죽을 때까지 기력(氣力)이 쇠(衰)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끝가지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고. 사망(死亡)의 세력(勢力)이 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아무도 그의 무덤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세를 신격화(神格化)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도 한 인간(人間)이요, 형제(兄弟)이지. 절대자(絶對者)는 아니었습니다.
유다서 9절에 보면 모세의 시체(屍體)를 두고, 미가엘과 사탄(詐誕)이 다투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마 사탄(詐誕)은 모세가 과거 살인자(殺人者)였으니, 그의 시체(屍體)를 내어 놓으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가엘 천사가 사탄(詐誕)을 향해 *주께서 너를 꾸짖으신다* 면서 모세를 훼방(毁謗)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그 많은 능력(能力)보다도 그가 예수님의 보혈(寶血)로 죄(罪)씻음 받은 것이 더 중요함을 보여 줍니다.
이 세삼에서 아무리 능력(能力)있게 사용된 종이라도 정작 그의 죄(罪)가 예수님의 보혈(寶血)로 씻음 받지 못한다면, 사탄(詐誕)이 그를 그낭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은 구원(救援)하고, 자기는 죄(罪)를 회개(悔改)치 않아 지옥(地獄)에 갈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수룬은 예수 믿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은 우리에게 있고. 하나님의 꿈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고,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세상의 썩어질 것들과 바꾸거나 섞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족(滿足)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만족(滿足)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절망적(絶望的)인 일이 우리에게 닥친다 할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자리가 잠시 모세가 올라갔던 *드보산*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건너갈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즉 눈앞에 있는 땅만 너무 쳐다보지 말고. 저 멀리 있는 서해와 헤브론 산(山)과 남방 땅까지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귀(魔鬼)는 자꾸만 나뿐 정치인(政治人)들을 충동질(衝動質)해서 우리를 망(亡)하게 하고, 어려움에 빠트리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귀(魔鬼)를 책망(責望)하십니다. 즉 마귀(魔鬼)는 과거 우리의 허물들을 들추어내어 우리를 비참(悲慘)하게 하려고 하지만, 주께서 마귀(魔鬼)를 꾸짖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는 이상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마른 골짜기에 있는 모든 뼈들이 살아나는 에스겔의 환상(幻像)(겔37:10)처럼, 성전(聖殿)문지방에서 흘러내린 생수(生手)가 온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는 하나님의 꿈(겔47:5)이 우리를 통해 이 땅에 분명하게 이루어짐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