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JSA 북한군 경비초소에서 11발의 총성이 울리고 2명의 북한군 사망자와 1명의 부상자 남한군 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도대체 그 안에는 그 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는 라쇼몽(다 알겠지만 이건 구로사와 아끼라의 영화로 한 살인사건에 대한 4가지 다른 견해가 차례로 보여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식으로 두 사람의 엇갈리는 증언을 차례로 보여주고, 플래쉬백을 이용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묘사하며 관객을 추리의 대열에 동참시킨다. 그 속엔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도대체 누가 누구를 죽였으며, 왜 죽였는지, 사라진 한 발의 총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초소 안엔 누가 있었는지 얽히고 섥힌 실타래가 존재하고 관객들은 소피 소령(이영애)의 입장에서 탐정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뛰어난 건 이것 때문이 아니다.(물론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 특히 이수혁 병장의 진술서가 넘어가면서 진술서의 내용이 나오는 장면은 최근에 본 영화중 최고의 장면전환 중 하나하고 생각한다. 좀 오버하자면 활자매체를 영상매체로 표현하는 영화적 표현방식에 대한 은유는 아닐까?) 오히려 라쇼몽식 연출의 (최근) 백미는 단연코 브라이언 드팔마의 스네이크 아이즈였고, 플래쉬백 스타일의 압권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다. 게다가 이런 류의 시나리오는 미스테리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다. 그러다면 무엇이 이 영화를 단순한 미스테리물을 뛰어넘게 하는 걸까?
2.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II
그러니까 일반적인 미스테리 영화가 관객의 시점을 관찰자, 해결자와 일치시키려 한다는 걸 염두에 둘때,(예를 들어 유주얼 서스펙트를 생각해보라. 여기서 관객은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이 영화가 뛰어난 건 소피 소령의 시각에 관객을 일치시킴과 동시에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남한군 이수혁 병장(이병헌)의 시각에도 공감을 갖게 하며 이렇게 분산된 시각은 소피 소령의 가족사가 드러나면서 하나로 엮어지게 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건전말에 대한 해소와 세인물의 휴머니즘이 나타난다. 바로 여기가 이 영화가 단순한 미스테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경계선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영화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이 대립되는 두 사람(다른 두 병사를 합하면 네사람)을 한 공간에 공존시키면서도 정치성을 탈색시킨채(북한의 과격한 사회주의 구호도, 남한의 살벌한 반공주의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장난끼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인간미를 부각시키고 있다.(이건 단순한 개그가 아니며 나아가 바로 이것이 이 영화를 쉬리의 반대점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역시 좀 오버하면 쉬리가 이데올로기를 오락으로 환원시켰다면, JSA는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인간미를 감동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슬픈 비극을 더욱 가슴절이게 하면서 영화의 범주를 확대시킨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한다. 이 모든 비극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소피의 가족사처럼) 과거에 있는 걸까?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총을 들어야 했던) 현재에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는 걸까? 마지막 장면의 사진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올해 본 최고의 엔딩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