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기 원합니다.
(창세기 32 : 1-12)
야곱은 이제 라반의 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불편하고 부담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20년 동안 하란에서 종살이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에서와의 만남입니다.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끝내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야곱은, 이제 형인 에서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형의 주관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집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진 에돔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형인 에서가 조금이라도 반대를 하면 아버지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에서가 20년 전의 감정 때문에 야곱을 해치려고 하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서를 만나자니 너무나 부담스럽고, 안 만나자니 아버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해결하겠습니까?
1. 뜻밖에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을 만났습니다.(1~2절)
야곱은 라반과 헤어져서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1-2절에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20년 전 에서를 피해서 도망치다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워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사닥다리 위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꿈이 아니라 길에서 직접 하나님의 군대을 만난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마하나임’은 ‘군대’ 또는 ‘진영’이라는 뜻인데, 특히 ‘두 진영’이란 뜻이니까 두 무리나 되는 천사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게 하나님의 천사들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그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영이라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때는 야곱의 눈에 보였습니까? 그것은 앞으로 야곱에게 닥칠 위험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바로 잠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큰 위기에 닥칠 그를 지켜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천사 군대가 출동하여 그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야곱을 안심시키시고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2.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3~5절)
본문 3-5절에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야곱은 이제 에서에게로 사람들을 미리 보내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지금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 에서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애쓰고 있고, 최대한 자기를 낮추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였지만 서로를 향한 불편함과 적개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제끼리 경쟁하느라 생긴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신앙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가치관이 다른 가족입니다. 그들은 내면적인 변화나 영적 성숙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비신자 가족이 크리스천인 가족에게 묻는 질문은, ‘하나님이 밥 먹여 주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데 세상에서는 돈도 못 버냐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그러나 같은 집에 살면서 자기 일에 아주 뛰어날 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약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꼬집어내는 가족은 아주 고통스럽고 괴로운 존재입니다. 같이 살지 않는다고 해도 어쩌다 한 번씩 만날 때마다 한두 마디 툭 던지는데, 그 한두 마디가 1년 동안 열심히 쌓아온 믿음을 뒤흔들어 놓는 겁니다.
에서와 야곱은 인간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형제였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에서는 그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남성다움이 뛰어난 남자의 기준이었고, 얼마나 사냥을 잘하느냐는 것이 남성다움의 조건이었습니다.
에서는 아주 뛰어난 사냥꾼이었고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고 근육질인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모릅니다.
반면 야곱은 영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장자권의 중요성도 알았습니다. 그가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았던 것도, 힘이 없어서 그랬다기보다는 내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기도합니다.
7-8절에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에서가 자기를 만나기 위해 400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즉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오던 길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심한 두려움에 빠집니다. 야곱은 이제 ‘난 이제 정말 죽었다.’라고 생각한 겁니다.
환영하러 오는 것인지 싸우러 오는 것인지 정확하지도 않은데, 미리 제 발이 저려 자신을 치러 온다고 생각하면서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둘로 나눕니다. 에서가 한 쪽을 치면 다른 한 쪽은 피해서 반이라도 건져보겠다 생각합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야곱의 모습입니다.
단순히 에서가 오고 있다는 말만 듣고 야곱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에서는 일종의 무력시위로 400명을 이끌고 오는데, 야곱은 굉장히 예민하고 극단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의 마음속에 에서라는 존재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에서가 400명과 함께 온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고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야곱이,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 앞에 벌벌 떠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 엄청나게 두려운 순간 야곱은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사실 이 정도의 두려움이 찾아올 때 기도가 잘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기도가 안 되는 겁니다.
야곱도 처음에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재산부터 둘로 나누고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자신이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9절)
2)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0절)
20년 전에 이곳을 지나갔을 때에는 지팡이 한 개 밖에 없던 자기가, 지금은 두 떼나 되는 무리를 거느리게 된 것은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것들이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3)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과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1-12절)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갈등과 고민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삶에 이처럼 진실하고 간절하면서도 하나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린 적이 없습니다. 이 기도 안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지금 닥친 문제를 있는 그대로 아뢰는 솔직한 고백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프랑스 루불박물관에 전시된 조각품 중의 하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의 수작이라 합니다. 그런데 애석한 일은 누가 만들었는지 그 이름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눈물겨운 전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가난한 조각가가 헐벗고 굶주려 가면서도 피와 땀을 짜내는 노력의 결과로 걸작품을 완성시켰는데 하루는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기에 조각품이 얼어 상할까봐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덮어놓음으로써 조각품은 보존이 되었지만 그는 얼어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자기의 노력을 최대로 기울여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 얼어죽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 인간은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해도 버릴 수가 없어서 하나님의 독생자를 희생시켜 가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 누구든지 자기의 것은 사랑합니다. 남의 자식이 아무리 인물이 잘나고 재주 있고 훌륭해도 내 자식만큼은 사랑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모든 자식을 다 사랑하나 그 중에도 어리고 철없고 병든 자식을 더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녀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하고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
위기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문제가 해결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은혜 은혜 구합니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강하심과 크게 하심이 있음을 고백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가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