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약 마음과 경계가 서로 흔들려서 마른 나무에 불 붙드시 번잡스레 정신없이 세월을 보낸다면 이것은 비단 화두드는 공부에만 방해로운 것이 아니라 나쁜 업보만''
2. 모든 일이 마음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착한일을 하면 천당에 나고 '' 포악하면 범이나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 곤충이 되고 가볍고 분주하면 나비가 되나니''''
3. 다만 한생각 차이 그대로 만가지 형상이 나타난다 하였으니 무릇 그 마음을 텅 비워서 성성하고 순일하게 하며 흔들리지 않고 혼미하지도 않게 해서 허공같이 헌출하게 하면 어느 곳에 생사가 있으며 어느곳에 보리가 있으며 어느곳에 선악이 있으며''' 다만 활달 하고 역력히 밝아서 밑바닥 까지 사무치면 살아도 삶을 따르지 않고 죽어도 죽음을 따르지 않는다 부처도 조사도 짓지 않으며 크게는 대천세계를 감싸고 작게는 티끌에도 들어가며 능히 부처이며 능히 중생이니라
또한 크고 작음도 아니요 모나고 둥근것도 아니요 밝고 어두운 것도 아니어서 자유로히 융통함이 철저하여 조금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4. 무릇 이 현묘한 법문을 참구하는 이는 항상 반조 하기를 힘쓰고 참구하는 용심을 성성하게 깨어 있고 세밀하여 끊어지는 사이가 없이 참구하는 것이 지극히 간절하여 참구한다는 마음조차 없는 경지에 이르면 홀연히 마음길이 끊어져 근본생명자리에 이르게 되면'''
5. 무릇 현묘한 이치를 알려는 이는 마음자리를 돌이켜 비추어 보는 공부를 착실히 알아''''
6. 마음속이 텅비고 육근이 텅비어 너그러우면 이것이 보시이고 이와같이 맑고 깨끗한 것이 지계이고
비고 부드러운것이 인욕이며''''
-----------------------------------------------------------------------------------------------------------
*** 경허 큰스님은 근세 한국불교 고승들의 스승이 되시는 분 입니다
경허집 중 니우후(진흙소의 외침) 라는 제하의 글중에서 중요 부분 들을 발췌 했습니다
발췌한 부분들이 지닌 뜻은 페르시아 니힐리즘이기 때문 입니다
과거칠불의 사상은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이고 삼세 인과응보 사상인데 반하여 페르시아 니힐리즘은
공사상 내지 허무주의 입니다 공사상은 반야심경에 있드시 선악이 없고 우리의 육근과 육식이 없다고 우기는 사상 입니다
니힐리즘은 닐이 열반이고 닐니리아 는 공한 세상 텅비고 아무것도 없는 세상 이라는 말 입니다
윗글 에서
1. 번은 세상을 버려야 된다는 뜻이다
2.번은 편견에 불과하다
나비의 몸짓이 가볍고 분주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나비는 자기 일에 가장 효율적인 자세로 유능하게 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비가 무거우면 꽃이 망가진다
지룡이는 흙을 흙답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만물 각자는 우리 모두 에게 소중한 존재이며 필요한 존재로 그 자체가 신비를 지닌 완벽한 여래이다 (여래는 자연을 부처로 보는 사상임)
3.번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는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과 자연은 이미 원래 부터 그렇게 되어 있다
텅 비우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텅 비우는 일이 아니게 된다
무를 추구하면 추구하는 그 자체가 유인 것이다 [신심명]에는 동을 그쳐서 지에 돌아간다면 그침이 다시 더욱 동이 된다고 하였다
(견유몰유 종공배공 지동귀지 지갱미동-- 신심명)
마음이 사람과 자연을 존재하게 하고 그 마음이 원래 유이면서 무이다 별도로 무가 되려고 노력할 일이 아닌 것이다
노력을 한다면 원숭이가 물속의 달을 건지려는 짓과 같다
4.번에서 마음길이 끊어진 자리가 근본생명자리라고 했는데 원문은 <本命元辰>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명원진은 육신을 있게 하는 근본으로 업력이다 업력은 마음길이 끊어진 자리가 아니라 生을 창조하는 력동적인 <에네르게이아> 이다
5.번 에서 마음자리를 돌이켜 보는 공부는 사념처수행 중의 하나이고 육묘문 수행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경허 대선사의 방식은 사념처의 그것도 아니고 육묘문의 그것도 아니다 경허대선사의 마음 챙기기는 달마대사의 관심법과 같은데 그 법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항상 알아채는 것이다 알아채는거 그 자체도 번뇌이므로 불을 휘발유로 끄려는 짓 과 같아서 이 수행을 장기간 하면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된다 마음의 흐름을 과도하게 막기 때문이다
유념이 무념이므로 이를 깨달아 집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무념이 될려고 노력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6.번은 육바라밀 보다 무념의 마음이 더 중요하여 무념이면 육바라밀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육바라밀을 수행하면 복덕과지혜가 증장 하기 때문에 원만보신의 관상인 삼십이상 팔십종호가 몸에 있게 되고 마음에는 육신통이 갈무리 되어 있어 십력과 사무애지 불십팔불법공을 소유하게 된다
무념 상태란 사념처 또는 육묘문 등 호흡선에서 지(止) 에 해당 되는 것이지만 止에는 공덕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몸이 육신성불 하여 관상이 변하고 마음은 지혜공덕이 원만하여 복혜양족한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무념이나 열반(니힐) 모두 천산이나 신장성의 자연환경에서 얻어지는 느낌이 이념으로 발전 한 것이다
열반 (니르바나) 은 숫자 10의 성질이다
10은 1을 시작하는 0 이고 0은 공이요 허무 내지 공무 이다
신장성 감숙성을 흐르는 열수( 열수= 니힐수=니련하 인데 지금 지도에는 타림목하로 되어 있음, 10개의 지류로 되어있어서 녈수라고 한다) 가 돈황에서 모래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가 발해군 청해(포창해 인데 지금은 나포박호 라고 함) 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니르바나는 타림목하에서 모티브를 얻은 개념이다
이 지역이 고대페르시아(파사) 이었으므로 페르시아 니힐리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육바라밀은 공불교가 아닌 有불교의 수행법이다 우랄알타이 사카무니의 가르침을 기초로 생겨난 개념으로 복과 지혜를 이루는 현실적 이익을 초래하는 공덕수행이다
그런데 박트리아에서 일어난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은 불의 성질인 허무( 離中虛)에 탐닉되어 육바라밀 수행을 경홀히 대하고 있다
박트라아는 대하 또는 서하 또는 탕구트 인데 하나라의 시조는 염제신농이고 허무를 유의 어머니로 보는 백인노자가 염제신농의 후손이다 이들은 모두 달을 숭상하는 월종씨 월지족이다
경허대선사의 니힐리즘과 달마대사의 니힐리즘은 같은 것이다 달마대사의 니힐리즘은 쿠샨인들의 정신세계 이며 쿠샨인들은 페르시아인 들이다 달마대사도 안식국 또는 향지국 사람이다 안식국은 안식향이 나오는 나라이고 안식향이 바로 귀상(쿠샨)이다
안식향산 나트륨은 살균제 방부제이지만 귀신을 쫒으며 호흡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작용도 가지고 있다
안식향은 鬼霜이라고 하는데 귀신귀 서리상자를 쓴다 하얀 서리 같이 생긴 이 약은 주로 귀신 붙은 병에 쓴다
동쪽에 이미 주술 호국 불교가 있는데도 서쪽으로 공사상인 금강경을 가지러 간 것은 금강경에는 귀신 떼는 공이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 반야심경은 있는 것을 없다! 아니다! 라고 강하게 부정하여 원귀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어 떼어내는( 컷오프 ) 것이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은 모든 개념을 아닐非와 아니不 그리고 없을無를 가지고 부정하는데
사향사과 육바라밀 십팔계 오온 십이연기등 有불교 교리와 수행점차를 부정하고 있다
금강경은 육사외도중 산자야 베타붓타 의 설이고 有불교에서는 이를 가르켜 희론외도라고 하였다
수 나라 당 나라 고구려 신라 백제는 전쟁에서 죽은 원혼을 천도 하고자 공불교를 구하러 서쪽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감숙성의 페르시아 배화교는 참회를 할 때 불을 가지고 한다
불주위를 돌면 죄업이 소멸된다고 한다
천수경에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라는 글귀는 ''''백겁동안 쌓인 죄 한생각에 없어지니 마른풀이 불에 타듯 다타서 남은것이 없네'''' 라고 번역된다 이 역시 쿠샨의 공불교의 영향이 천수경에 들어 온 것이다
천수경에는[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이라는 글도 있다 번역하면 --- 죄는 자성이 없어서 마음따라 일어나니 마음이 없으면 죄조 따라서 없어진다-- 어떠게 마음이 없어지며 설사 마음이 없어진다하여 죄가 따라서 없어질 수 있는가? 망언 일 뿐이다 하나님에게 속죄금 내면 죄가 없어진다는 무식한 망언과 한치도 다른게 없는 소리이다
진짜불교인 有불교는 [소작업불망 인연회우시 과보환자수-- 치문경훈] 라고 했다 뜻은 --지은바 업은 없어지지 않아 인연이 모일때 과보가 돌아와 스스로 받는다 --- 이것이 진리이고 이것이 종교이다
[불락인과--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망언 했다가 여우 몸을 받은 [백장야호] 실화가 있다
참회의 길은 오직 이참사참이 있을 뿐이다
이참은 죄의 실체를 여실히 깨달아 마음으로 진정 뉘우치는 것이고
사참은 그에 따라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이다
공불교의 허무주의는 죄까지도 공으로 몰아가 세상의 도덕과 질서와 법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조석예불 할 때 무술의 신이며 무기로 무장하신 호법신중단에 페르시아 허무주의로 有불교 교리인 오온십팔계 십이인연이 없는거라고 우기는 반야심경을 신중님 면전에서 독송하고
삼세인과응보 제악막작 중선봉행을 가르치신 부천님 앞에서
모든 것은 없는 것이고 그게 아닌 것이라는 불가지론 희론외도 의 사상인 금강경을 독송하여 복 달라고 기도 하니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첫댓글 최남석님, 안녕하세요!
위 글을 읽으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특히 1.2.3.4 번까지의 내용은, 아주 쉬운 문제같기도 하지만 또한 아주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허 큰스님에 대해......사실 별로 아는 것이 없다보니, 뭐러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 분의 말씀은 가슴에 와 닿아 뭉클하게 만듭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반야의 공이 텅빈 그냥 공(但空)이 아니고, 묘한 그무엇이 있는 공(妙有)이라 봅니다.
문자상으로는 허무 니힐리즘의 감이있지만 공을 인식함은 깨달음의 중간 과정입니다.
공의 알맹이가(眞空妙有) 바로 천지의 근원입니다.
천지의근원으로서 진공묘유 그것은 후대에 완성된 불교철학이고 현대에 와서 소립자 물리학도 같은 견해 입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나 경허스님들의 사상은 그냥 페르사아 허무주의 일 뿐 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원래입장은 삼세인과응보로서 유사상입니다 공사상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싯다르타 부처는 사성제에서 유무를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했습니다 공이니 진공묘유니 그런것은 관념일 뿐 수행에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허스님의 관심법은 달마대사의 관심법과 같은 것으로 그 수행은 자아분열을 일으켜 정신이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수행은 몸속의 양기를 증강하여 호흡을 길게 만들고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유루에서 무루로 전환되어 번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상태는 풍식을 초월한 상태아고 이것을 克己(극기) 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