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____
제주를 훔쳤다
김명아
제주를 훔치기 위해 나는 일행과 헤어져 자유여행을 선택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장소를 계획하고 가방을 챙겼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뒤로 하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갔다. <내 손안의 제주> 관광 안내 책자를 쥐고 불안한 기류에 비행기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설렘으로 제주에 도착했다. 렌트카를 타고 일행은 나를 제주돌문화공원에 내려주고 떠났다. 혼자 숲길로 들어섰는데 30분 가까이 인기척 없이 습한 바람만 불어왔다.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연을 먼저 생각하고 자연과 함께 한다”는 원칙 아래 나무 한그루도 베지 않고 달팽이 속도로 옮기며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 제주돌문화공원이다. 자연과 호흡하는 백운철 관장의 철학을 기억하며 관람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거석 사이를 통과하며 100만평의 규모에서 그의 이름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철학은 돌하르방처럼 웃고 있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2020년 완공 예정인데 한라산과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이 제주의 과거에서 현재 미래를 잇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때까지 잘 지켜주리라.
사진가 배병우 선생은 “공간이 스스로 숨 쉬게 놔둘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백장군의 설화를 주제로 구성된 신화의 정원에서 현무암을 보며 용암의 숨구멍을 만져 보았고 <오백장군 갤러리>에서 “뿌리 깊은 여신” 양광자 전을 관람했다.
주로 인물 군상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군중 속의 군중 모습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부여했고 군상들은 서로 얽혀 사회의 실타래를 풀고 있었다. 몸통만 그려져 있거나 무표정하고 과장된 채 상처를 보듬고 자아의 실체를 그림으로써 치유하고 있는 조형언어는 붓질을 계속하고 있었고 삶의 본질에서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전시관을 나와 중문 관광단지에 있는 <박물관은 살아있다>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길거리는 깨끗했고 버스는 2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으며 시속 60km 이상 달리지도 못했다. 그 속도는 주변을 살펴 볼 수 있게 했으며 관광도시로써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세계 최대 착시 테마파크인 <박물관은 살아있다>에 도착해 줄을 서서 들어갔다. 홀로그램과 공간투시기법을 활용한 작품으로 원근법이 잘 나타나 착시현상을 주는 움직이는 미술관이었다. 모두가 웃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관람하고 있었는데 사진촬영 팁에 따라 관객이 직접 연출하고 표현해 봄으로써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은 동심의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반짝이는 거울 방을 통과해 상상력과 아이디어 넘치는 방들을 지나오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박물관을 나와 저녁 약속이 있는 표선면 횟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화산의 선물을 보았다. 수많은 오름을 낳고 언덕과 돌, 바람, 구름의 변화무쌍함은 황홀했다. 내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제주의 석양을 품어 보았다.
저녁을 먹고 한화리조트로 가는 길은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잠자리에 누워 벽에 부딪히는 나뭇가지 그림자에서 바람을 느끼며 섬을 헤집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 흔들림에 몰입하며 벽에 비친 그림자를 받아 읽었다.
이튿날, 흔들리며 흐르던 밤을 건너 새벽에 깨어났다. 맑은 하늘이었다. 일행은 골프를 치러 떠났고 나는 일상의 여유를 느끼며 깊은 호흡으로 걸었다. 섭지코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고층 건물이 없는 하늘은 막힘이 없었고 맞닿는 지평선을 따라 시시로 변하는 하늘 얼굴은 가늠할 수 없는 구름의 스케치였다. 성산일출봉을 지나며 바닷가에서 바람소리를 동영상에 담아 소식도 전했다. 섭지코지로 향하는 해안가는 요트와 페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제주 동쪽 해안 절경 속에서 바람을 안고 언덕에 오르자 풀밭에서 조랑말 타는 아이들과 셔터를 누르는 가족들이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다. 그 곁을 지나 봉화를 피우던 ‘협자연대’를 보고 코지 끝까지 올랐다. 흰 등대와 오름의 붉은 흙빛, 푸른 바다와 포말을 보며 들녘을 걸으니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껴졌다. 마주한 바람을 마음에 심으며 섭지코지에서 가까운 <김영갑 갤러리>로 가기 위해 다시 콜택시를 불렀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책을 본 후 작품사진을 직접 그려 보면서 꼭 가보리라 생각했던 곳이었다. 한라산 옛 이름인 두모악에 자리 잡은 폐교, 삼달분교를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서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고 있는 사진을 위해 근육을 움직여 손수 정원을 일구고 전시관을 만들며 투병생활을 했다고 했다. 제주도에 매혹되어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고 순간과 마주하기 위해 영혼과 열정을 바친 수행이어서 일까. 정지된 사진에서 바람의 움직임이 만져졌다. 2002년 문을 열었고 두모악에서 잠든, 사랑하는 제주에서 치열하게 살다간 예술가를 통해 제주의 속살을 보았고 애잔함으로 작가정신을 떠올리며 쇠소깍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라산 천연보호 구역,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등재된 효돈천 하구 와 검은 모래 해변은 돌탑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깊은 수심은 신비로운 빛깔로 시선을 끌었으며 기암괴석과 소나무 숲을 끌어안고 있었다.
카약, 테우, 제트보트가 바다를 가로 지르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한 채 제주에 계시는 선배님의 초대로 흑돼지 전문 식당으로 갔다. 어제 저녁은 뱅어돔을 맛보았는데 오늘은 흑돼지로 만찬을 즐기니 즐거웠다.
태풍이 오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숙소로 돌아와 몰려드는 먹장구름과 폭풍전야의 잠잠함에 걱정 되었는데 일찍 깨어난 창문은 뜻밖에 맑은 아침이었다. 새벽의 고요한 몸짓과 제주가 내어준 축복에 감사하며 올레 7코스로 향했다.
제주의 동맥을 잇는 올레로 가는 동안 한라산이 구름을 품어내고 있는 풍경은 시선을 끌어 당겼다. 돔베낭길을 따라 예쁜 찻집들이 여유를 부렸고 사색의 외길은 또 다른 길을 내고 있었다. 바다의 깊이와 바람에 머무르며 치유되고 있는 자신을 다독이며 또 걷고 걸었다. 1987년 개관된 우리나라 최초 시립미술관인 <기당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그 바람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기당 강구범 선생이 고향 서귀포에 건립 기증했다는 미술관은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종이 거울을 통해 보여주었고 아이들 미술대회 작품 “꿈보따리”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바람에 담은 색동 꿈들이었다. 주제별로 아카이브된 파일, 낡은 일기장도 있었고 그림에는 옛 제주의 여름과 함께 태풍과 바람의 흔적을 담은 현무암의 노래가 있었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데 자동차로 데려다 준다고 미술관으로 신랑이 찾아와 <이중섭 미술관>으로 함께 이동했다.
이중섭거리는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많았고 소품들이 멋지게 손짓 했다. 6.25 전쟁 당시 서귀포로 피난 와서 가족들과 1년간 거주하며 그린 그림들과 그 후 일본으로 건너 간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그림들도 애틋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 “서귀포 환상”은 전쟁과 가난을 잊고자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결과라고 했는데 가족을 그리워하며 행복한 꿈을 꾸는 모습처럼 보였고 아이들이 물고기와 게를 잡고 노는 모습도 정겨웠다. 한국의 국민화가답게 한국의 모든 것을 표현하려 했고 참혹함 속에서도 그리고 또 그렸다는 작품들은 담뱃갑 속의 은지화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지금은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이중섭, 백년의 신화>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일행을 만나기로 한 제주시로 가서 저녁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 시계는 멈췄지만 내 마음엔 지금도 제주 하늘이 걸려 있으며 제주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다.
김명아 / 여수에서 태어났으며 2009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붉은 악보』, 『물 속의 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