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덕의 길 / 예수의 성 데레사
제10장
나 자신을 떠남이 없이
나 아닌 것을 떠남은 미치지 못하는 행위고,
이탈의 덕과 겸손은 늘 함께 있다
1. 세속을 떠나고 친척을 떠나서 이곳에 깊숙이 갇혀 살고 있으니 여러분은 이제는 할 일을 다했고 무엇과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자매들이여,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집 안에 들어 있는 도적을 그냥 둔 채로 도적이 무섭다고 문을 꼭꼭 닫고 편안히 누워 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집 안 도적은 그중 나쁜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라도 조심을 게을리하여 내 뜻을 끊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일을 살피지 않으면 별의별 일들이 생겨서 영신의 거룩한 유를 박탈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진토와 납덩이의 집에 눌려 하느님께로 날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2. 여기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은 일체가 허무요. 모든 것이 무상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는 것입니다. 덧없는 것에서 정을 떼고, 다함이 없는 것에 정을 두는 일입니다. 이것은 변변치 못한 방법 같을는지 몰라도 실천해나가다 보면 영혼을 아주 굳세게 만들 것입니다.
작고 작은 것에라도 행여 정을 붙일까 조심을 하고 힘써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면, 주께서는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당신이 이 집에다가 우리를 불러 주신 것만도 벌써 큰 은혜고, 당신 하실 일을 다하신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떼어버리는 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나 자신을 떠나야 한다는 것. 나를 끊어버린다는 것. 이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신한테 집착하고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 여기에 필요한 것이 참다운 겸손입니다. 겸손과 자아 이탈은 언제나 같이 다니는 자매 같아서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떠나라고 일러준 그런 친척과는 다르니 여러분은 그것을 끌어안아서 사랑하고 그 곁을 떠나지 마십시오.
아, 높고 높은 이 두 가지 덕, 창조된 모든 것의 두 여왕, 전 세계의 두 황후, 허구 많은 악마의 올무와 함정에서 우리를 구하고, 우리 스승 그리스도님이 그토록 아끼시던 그들! 주님은 한 번도 그들 없이는 납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두 가지 덕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지 훌륭히 성공할 수 있고, 온통 지옥을 상대로 하든. 전 세계와 그 모든 유혹을 상대로 하든, 넉넉히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이 그의 것이니 누구를 무서워할 것이 없고, 무서워할 누구도 없는 까닭은 모든 것을 잃는대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며, 잃음을 잃음으로 알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 무서운 것은 하느님을 촉범(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것) 할까 함이니, 이 두 가지 덕을 제 탓으로 잃음이 없이 고스란히 지켜지기를 빌 따름인 것입니다.
4. 이 두 가지 덕의 특색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덕을 지닌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아서 남들이 그에게 덕이 있다고 말하더라도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고 무슨 덕이 있는가 하고 여기는 사실입니다. 그는 오직 두 가지 덕을 소중히 여기므로 이를 연마하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자기를 한껏 완성해나갑니다. 두 가지 덕을 지닌 사람은 아주 표가 나는 법이라서 본인이야 추호도 드러낼 마음이 없지만, 그와 접촉하는 사람이면 즉시 깨닫게 마련입니다.
나 같은 주제에 겸손과 극기를 가려 말한다는 노릇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습니까? 영광의 임금님께서 벌써 그것을 치하하셨고 무수한 고통을 치르시면서 증명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따님들이여, 바야흐로 이집트의 땅을 벗어날 시기는 왔습니다. 힘을 냅시다. 두 가지 덕만 얻는 날엔 만사를 얻을 것이니, 만사가 다 맛깔스러울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쓰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달디달 것입니다.
5. 우선 힘쓸 일은 우리의 육체에 대한 사랑을 깨끗이 없애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본성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기 때문에 수도원에 사는 것이 적지 않은 고생인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육체를 너무 아끼기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특히 수도자의 경우 그렇지만 수도자가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어떤 수녀들은 수도원에 들어온 목적이 딴 데 있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그 일에만 힘쓰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그런 짓을 해 보았자 별수도 없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조차 옳지 않다고 나는 봅니다. 자매들은 단단한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여기에 온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으러 왔습니다.
몸이 편해야 회칙도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가 집어넣는 유혹인 것입니다. 건강에도 힘쓰면서 회칙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좀 그럴싸하게 들립니다만 그런 모양으로 지키다가는 한 달은 고사하고 하루도 온전히 못 지킨 채 죽고 말 것이니. 그런 바에야 뭣하러 수도원에 왔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6. 이 문제에 대하여 몸조심하는 분별이 없을까 염려할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며, 오히려 고행을 지나치게 하기 때문에 죽지나 않을까 하고 우리 걱정을 먼저 해주시는 고해신부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몸 아끼지 않는 것처럼 우리 자신이 꺼려하는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매사에 그만한 조심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내 말이 이상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 역시 나더러 남을 자기 식대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나도 아닙니다. 그들 말이 옳으니 말입니다.
내 생각에는 몸을 아낄수록 주께서는 병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내게 한해서는 그러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크신 자비로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편히 지내려고 하면 꼭 무슨 병통이 생겼습니다.
또 어떤 수녀들은 제 몸을 제가 괴롭히고 있는데, 이것은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흔히 하는 말투로, 단 하루도 가지 못할 고행을 무턱대고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는 악마가 넌지시 그런 것은 몸에 해롭느니 하고 씌우는 바람에 그만 무서워서 달아나 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회칙이 명하는 고행마저 할 용기를 잃어버립니다. 사실 그들은 몸에 해로울 것이 조금도 없는 침묵과 같은 회칙의 사소한 것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머리가 조금 띵하다고 해서 죽을 병도 아닌데 공동으로 드리는 성무일도 기도에 나가지도 않는가 하면, 제멋대로 고행을 한답시고 덤비다가는 필경은 이것도 저것도 안 하기 일쑤인 것입니다. 어떤 때는 조금만 아픈 기만 있어도 무엇이든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고 허가만 맡으면 다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7. 그럼, 원장은 왜 허가를 주느냐고 말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물론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원장에게 꼭 필요하다고 아뢰고, 여기에 덧붙여서 의사는 그의 편을 들고, 한편 또 옆에서는 그의 벗이나 친척이 울고 있으니 원장인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나 애덕을 범하지나 않을까 망설이게 되고, 드디어는 애덕이 모자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의 잘못을 막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8. 이런 일은 더러 있기 쉬운 일들이므로 여러분이 삼가라고 여기에 적어 드립니다. 악마가 올가미를 씌우는 바람에 혹시 건강이 나빠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어 매사에 그르침이 없게 하소서. 아멘.
-완덕의 길 / 예수의 성 데레사 /최민순 옮김 /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