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의 산행
윤회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영혼은 흔히 '마음' '정신' 이라는
단어와 혼용되는 것 같은데,
아무려나 육신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만은
공통되는 것 같습니다.
서양의 어느 과학자는
영혼의 무게를 재는
실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혼이 눈에 보이는 것이어서
저울에 달 수 있는
상황은 물론 아닙니다.
그의 실험 방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사람의 몸무게와,
같은 사람의 숨이 넘어간
직후의 몸무게를 재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설정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측정된 두 가지 몸무게의 차가
바로 영혼의 무게가 되는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실제로 002그램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영혼의 유무에 대한 논쟁 자체를
황당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양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최한숙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양 선생님께서 사십 구일
기도를 막 끝낸 즈음이었습니다.
대자암에 참선 공부를
하러 갔을 때 만난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
처사님이 있었습니다.
최한숙 씨는 기관지를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그 분을 통해
양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 선생님은 서울 시청 앞
프라자 호텔커피숍에서
최한숙 씨를 만났습니다.
최한숙 씨는
'기관지 확대증' 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코와 입으로 피를
심하게 쏟곧 했습니다.
기관지를 절개해서 꿰매는
치료 방법이 있었지만
몸이 워낙 약한 탓에
병원에서 시술을 못 한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최한숙 씨는
기관지 확대증 때문에
양 선생님을 찾았는데
양 선생님은 최한숙 씨를 보자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보살님!
부모가 돌아가시면 앞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최한숙 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불편한 기관지 때문에
쌕쌕거 리며 울었습니다
"아들이 둘이었어요.
그런데 큰아들은 십 이년 전에
교통사고 사고
현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도 너무 보고 싶어요''
''보살님의 병은 그 아드님을 보고 싶은
사무친 마음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최한숙 씨는
병을 얻고 일년 동안은
사경을 헤맬 정도로
위독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아들을 잃고 나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던
남편도 당분간 학교를 쉬었습니다.
복직을 해서는 남자 학교에서
여자 학교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남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 또래만 했던 아들 생각이
떠나지를 않아서였습니다.
"보살님, 아드님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시죠?"
''그 아이를 꿈에라도
한 번 봤으면 원이 없겠는데,
십 이년 동안 꿈 속에도
한 번 나타나지를 않았어요."
''저하고 어디를 좀 가십시다.
설악산에
오세암이라는 암자가 있어요.
거기를 한 번가시지요. ''
''그 아이를
천도해주러 가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저
저하고 한번만 다녀오십시다.''
''그렇지만.. 이 몸으로 어떻게.. "
''가시게 됩니다. 큰아드님하고
같이 가시는 겁니다.''
양 선생님의 입에서
큰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최한숙 씨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은 듯했습니다
''예. 가지요.
그런데 뭘 준비해야 할까요.
음식을 준비해야 합니까?"
"무겁게 많이 가져가실 건 없고요,
평소 아드님이 제일 좋아하던 것들로
한두 개만 배낭에 넣으시면 됩니다."
봄이라 산불 걱정으로
입산이 통제되는 때가 지나기를 기다려
6월경에나 오세암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일행은 차를 타고 올라 가다가
백담사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그 곳에서부터 오세암까지의
꽤 먼 거리를 걸어서
오를 작정이었습니다.
비가 조금씩 뿌리고 있었습니다.
약간 그늘진 날씨가 걷기에는
오히려 상쾌했습니다.
양 선생님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건강한 사람한테도
쉬운 행보가 아닌데
기관지가 나빠서 숨이 턱에 닿는
사람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양 선생님은 미리
처방을 내렸습니다.
''보살님!
큰아드님하고 가시는 겁니다.
아드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고 있어요."
그 말 한 마디를 던지고
양 선생님은
부러 뒤도 안 돌아보고
앞질러 가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목구멍에 숨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와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너무 뒤처진다고 생각되면
개울물에 손을 담그면서
모습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올라가곤 했습니다.
백담사에 조금
못 미쳤을 때였습니다.
하얀 산목련 한 송이가
최한숙 씨 앞에
툭 떨어저내렸습니다.
최한숙 씨는 아들이 자신과
함께 가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것도 견디며
산을 오르다가
산목련이 떨어지는 것을 보자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보살님! 이 꽃이 왜 하필
제 앞에 떨어졌을까요?"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는 줄
알고 그러는 것이겠지요''
그때까지도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던 최한숙 씨는
양 선생님의 그 말 한 마디에
새로운 힘을 얻은 듯했습니다.
혹여 양선생님이,
"보살님, 많이 힘드시죠?
괜찮으시겠어요?" 라고 말했다면
죽어도 더 이상은 못 가겠다고
당장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있을 것입니다.
오세암까지의 길 중간쯤에
이르러서 쉬어가려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양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니
최한숙 씨는 아주 숨을 고르게 쉬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처음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새파란 입술에 하얗게 질린 얼굴이
꼭 물에 빠진 사람 같았는데,
올라오고 있는
최한숙 씨의 얼굴은
완전히 딴 사람이었습니다.
"보살님! 숨 안 차세요?"
''이상해요. 전혀 숨이 안 하네요."
그렇게 해서 최한숙 씨는
오세암까지 아무 일 없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기관지가 말짱하게
나은 것은 물론입니다
기도처로 유명한 오세암은
사시사철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법당에는
양 선생님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지 스님도 이상한 일이라고
한 마디 할 정도였습니다.
오세암에 불사를 하고부터 이렇게
사람이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이다. 사탕, 초코렛,
쥬스 등을 법당에 놓았습니다.
최한숙 씨 의 큰아들이
좋아했던 것들이었습니다.
함께 절을 하고 앉아 있는 사이,
양 선생님의 눈에는
죽은 아들의
영혼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피부색이 옥같이
인물이 빼어난 아이가
하늘에서 비추는 빛 속으로
사뿐히 걸어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양 선생님도
눈물을 쏟았습니다.
최한숙 씨는 터져나오는
격한 울음을 참지 못하고
법당 밖으로 나가 기둥을
붙잡고 통곡을 했 습니다.
하룻밤을 지낼 방으로
최한숙 씨를 데리고 들어와서
양 선생 님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살님! 제가 오세암에
오시자고 한 이유는요
아드님이 살아서 어머니 손을 잡고
이렇게 경치 좋은 곳을
거닐어보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잖아요.
죽은 영혼으로라도
함께 와보고 싶어하길래
제가 오시자고 한 것입니다.
아드님이 보살님을
여기까지 모시고 온 거예요.''
최한숙 씨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보살님! 불법에서는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하지요
아드님은 인간으로서는
보살님의 배를
마지막으로 빌린 겁니다.
우리가 윤회하지 않기 위해서.
해탈 ·열반의 경지에 가기 위해서
평생 동안 공부를 하는 것인데
아드님은 인간의 몸으로서는
마지막으로 공부를 하러 왔던 겁니다.
그 후에 천상에 가서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아무도 일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십 이년 동안 인간의 세계를
떠돌면서 자기도 답답했던 거예요.
아드님이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니
보살님의 꿈에 보일 리가 없지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다음 날, 내려오는 길에서도
최한숙 씨의 아들의 영혼은
가장 험한 곳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왔습니다.
그 곳에서 아들의 영혼은
양 선생님께 자기 대신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양 선생님이
최한숙 씨의 팔을 붙들자
그녀 역시 직감적으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울먹이며
양 선생님을 끌어 안았습니다.
''얘야! 잘 가거라.
정녕 이 에미가 몰랐구나.
너를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
이제 네 갈 길로 부디 잘 가거라."
그 곳에서 조금 더 산을 내려와
개울이 있는 곳에서 씻기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하면서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최한숙 씨가 말했습니다.
''참, 보살님! 그 꿈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큰아이를 낳은지
삼일 만에 꿈을 꾸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장성한 모습인 거예요.
어떤 스님한테 업혀 가면서
제가 부르니까
뒤를 돌아보더라구요.
한 손에는 목탁을 들고
한 손에는 염주를 쥐고 있었어요.
한번 뒤를 돌아보더니
그냥 가던 길을 내처 가는 거예요
그 아이를 낳은지 삼일 만에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지금에야 알 것같네요''
최한숙 씨는 그 이후
절에 갈 때마다
복전과 별도로 봉투 돈을 넣어
불단 앞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큰아들의 용돈인 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