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서 내가 체험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학술대회는 발터 벤야민 학술대회였다. 그때 정독도서관 강당 좌석수가 3백여 명이라고 했는데, 꽉 차고 자리가 없어 서서 듣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2023년 9월 2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도 정말 많은 학자와 시민들이 모였다. 도쿄 연합회관 2층 강당에 몇 명이 앉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대강 사오백 명은 가득 모인 듯 했다. 앞뒤에서 찍은 사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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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면 이상한지 모르지만, 두 가지만 쓴다.
첫째, 일반 시민들이 역사적인 학술 대회에 참여하는 풍경이 인상 깊다. 일본에 있을 때 메이지 학회에 회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거의 오백여 명이 학회에 모였다. 학회 정회원은 학자이지만, 일본 시민도 준회원으로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동엽학회를 섬기면서 이런 방법으로 시민과 학자가 교류하는 학회를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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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학술 주제가 '간토대학살 책임과 과제'인데도 이렇게 많이 모였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학살'이라는 단어는 정말 피하고 싶은 단어다. 오랜 일본인 친구이며, 이 학술대회에도 참여한 이치카와 마키 상은 '학살'이라는 단어가 자신이나 친구들이 대할 때 여간 거북한 표현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이 모였다는 것이 놀랍다. 물론 재일조선한국인이 많이 참여했겠으나, 방송은 안 돼도 끝까지 행사를 찍고 참여한 NHK 기자 등, 내게 명함을 건넨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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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받은 9월 1일 앞뒤로 한국에서도 이 주제로 많은 행사가 있었는데, 과연 몇 명이 모였을까. 저만치 모인 자리는 없는 것으로 안다. 왜 그럴까. 우리는 모여야 하는 자리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그간 너무도 많은 비극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면서 지친 것이 아닐까. 제주 4,3, 세월호 4.16, 수유리 4.19, 광주 5.18 몇 가지 숫자만 써도 우리는 금방 지친다. 눈물도 말라 붙었다. 게다가 지금도 촛불집회에 나가야 하는 일정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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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번 학술대회에서 단연 주목 받은 키워드는 '제노사이드(genocide)'와 '역사 부정론'이다. 특히 마에다 아키라(前田朗) 교수의 제노사이드 논의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간토 사건을 보게 한다. 마에다 교수 발표문에서 중요한 부분을 아래처럼 요약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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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폴란드의 형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제노사이드란 개념을 생각해냈다. 람킨은 제노사이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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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가 하나의 통일체인 국민집단을 맞서고 그 행위가 개인에 향하는 것은 그 개인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민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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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유엔이 설립되고 1948년 12월 유엔총회는 제노사이드 협약을 채택한다. 램킨의 아이디어가 불과 4년 만에 국제협약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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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란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서 행하여진 아래의 행위를 말한다.
(1) 대상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는 행위.
(2) 대상 집단 구성원에게 중대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
(3) 대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의 육체적 파괴를 초래할 목적으로 의도된 생활조건을 집단에게 고의로 부과하는 행위.
(4) 대상 집단 내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 의도된 조치를 과하는 행위.
(5) 대상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로 이동시키는 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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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각에서 볼 때, 나치스 독일의 유태인 학살, 아르메니아인의 집단학살, 쿠르드의 제노사이드, 루완다 투치족의 제노사이드, 구 유고슬라비아의 스레브레니차 학살, 미얀마의 로힝야 학살 등이 제노사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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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교수는 간토대학살을 네 가지 제노사이드로 규정한다.
(1) 첫째, '식민지 제노사이드'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 1896년 제1차 의병운도, 1919년 3.1독립운동에 이어지는 집단학살이다.
(2) 둘째, '대지진 제노사이드;다. 대지진이라는 자연 재해를 이용한 '자연재해 제노사이드'다.
(3) 셋째, '코리안 문화 제도사이드'다. '동화주의', '황민화 정책' 그리고 '문화통치'로 조선말 사용 금지, 일본 이름 강제, 문화재 약탈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 제노사이드다.
(4) 넷째, '기억의 제노사이드'다. 역사부정론, 증거부정론, 학살부정론 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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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에다 교수의 제노사이드 규정은 간토대학살을 보는 내 시각을 좀더 지구적 문제, 세계적 문제로 보게 했다. 사실 나는 '간토조선인학살'이라는 표현을 책에서 잘 쓰지 않고 피했다. '조선인'만 죽은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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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제노사이드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칠백여 명을 넘어서는 중국인,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15엔 50전'을 표준어로 발음할 수 없었던 오키나와 등 일본의 지방 출신자들 학살당한 인륜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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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조선인 학살'만 강조하면 배타적인 애국주의인 징고이즘(jingoism)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번 100주기 행사에서 첫날 31일 저녁 첫 행사로 가진 '조선인-중국인 피해자 추모집회'와 이후에도 이어진 '조선인-중국인 합동추모집회'는 좋은 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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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마치고 식사할 때 마에다 교수님이 곁에 계셔서, 제주 4.3과 광주 5.18에 대해 질문했다. 마에다 교수님의 답은 확고했다.
"제주와 광주는 민족 내 문제이죠. 제가 규정하는 제노사이드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에게 가하는 학살을 뜻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주와 광주 사건은 제노사이드로 규정하지 않고, 권력의 학살로 봅니다."
나치 정권이 600만 유럽계 유럽인을 학살한 민간인 학살한 홀로코스트(Holocaust, 1933~1945)는 용어 규정이 확실한데, 제노사이드와 민간인 학살은 그 성격이 겹치기도 하여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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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제회의에서 나는 '백년 동안의 증언-한일 작가 시민의 증언'을 발표했다. 학술주제가 비극의 극복이기에, 검은 넥타이를 하고 긴장하며 잘 하고 싶었는데 내 발표는 너무도 성기고 헐거웠고, 게다가 오랜만에 하는 일본어 발표도 엉망이었다. 죄송하기만 했던 서생인데도, 발표가 끝나자 여러분이 와서 질문을 하거나, 새로운 자료가 있다며 메모해주기도 했다. 정말 풍성히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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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학살 100주기를 기억하며 한국과 일본에서 귀한 연구자들이 발표한 학술적 연구 성과들을 책으로 내야 하는데, 이벤트만 하고 마치는 듯 하여 한편으로는 아쉽다. 어느 출판사든 이번에 한국과 일본에서 발표된 연구 성과들을 책으로 묶어 남기면 좋겠다.한일 정부의 삭제와 무책임의 죄악과 상관없이 진실한 증언은 쌓여야 한다. 삭제의 죄악에 맞선 기억의 복원과 치유가 인류의 미래를 축조해야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