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두잉(doing)입니다.
두잉은 행위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노력해야 하고,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두잉, 유위법(有爲法)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법은 무위법이라고 했습니다.
무위법은 빔(空)의 상태입니다. 그냥 이렇게 비어 있음, 존재의 상태입니다.
좋은 칭찬은, 무엇을 잘 한 것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그게 진정한 칭찬입니다.
대부분은 상대방이 잘 할 때 그 잘한 댓가와 보상으로 칭찬을 하는데, 그것은 좋은 칭찬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처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사실은 부모님들이 자녀가 잘한 것에 대해 칭찬하는 것을 보면, 그 이면에 자녀를 내 뜻대로 조종, 통제하려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잘 한 것을 칭찬하면서 속마음은 ‘잘 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해’하는 마음이지요.
성적이 잘 나오면 칭찬을 하는데, 그 이면에는 계속 그렇게 좋은 성적을 유지하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성적 잘 나왔네. 정말 잘했어.”라고 칭찬하면서 칭찬 스티커도 남발하곤 하죠? 이런 칭찬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책 많이 읽었으니까 정말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 주면 아이가 진짜 책 속에 파묻혀 좋아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칭찬 받기 위해서’ 책을 읽게 된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목적이 책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책 속의 내용에 진정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칭찬을 받고 싶어서 읽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당연히 책을 대충 읽게 됩니다.
그냥 성과 위주로 뭔가 저분에게 잘 보여서 칭찬 받아야 되기 때문에 책을 읽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도적인 사람이 되질 못하고, 주체적인 사람이 되질 못합니다.
권위자, 자신을 지지해 주는 자, 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눈치 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인정·보상·칭찬에 쩔쩔매면서 자꾸 눈치 보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통해 아이를 조종 통제하려고 하면서 내 식대로 아이를 바꾸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은 잘못된 칭찬, 좋지 않은 칭찬입니다.
그런 방식의 칭찬 이면에는 ‘이 아이는 아직 불완전하고 부족해. 나는 완전해. 그러니까 완전한 내가, 엄마인 내가, 어른인 내가 저 불완전하고 아직 무지몽매하고 뭘 모르는 저 아이를 가르쳐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키워야 돼.’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그런 칭찬을 만들어 냅니다.
즉 대 평등심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자라면 자식을 대할 때도 ‘너도 부처, 나도 부처야. 한 분의 거룩한 부처님이 인연 따라 나에게 와서 나를 이렇게 기쁘게 해 주는구나.’라고 대해야 합니다.
역할은 부모와 자식으로 서로 다르지만, 본질은 누구나 거룩한 한 분의 부처와 같은 존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연 따라 임시로 나에게 왔기 때문에 잠시 나의 자식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지, ‘내 자식’이라고 여기며 소유물인 양 대해서는 안 되겠지요.
자식은 인연이 자식일 뿐이지, 실체적으로 영원불멸한 나의 자식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닙니다.
한 분의 거룩한 부처님이라고 생각해서 ‘칭찬여래원’을 행하는 것은, 정말 한 분의 여래로서 찬탄해 주고 칭찬해 준다는 것은 그 아이를 내 방식대로 바꾸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방식대로 바꾸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 아이를 내 뜻대로 조종 통제하려고 칭찬하는 대신 어떤 칭찬을 하게 될까요?
그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그저 있는 그대로 칭찬해 주게 됩니다.
무엇을 잘 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를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칭찬 같지 않아 보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아이의 진정한 자존감을 높이는 칭찬이 됩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