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아가 치밀어 올라 울화통이 터질 것같다. 들어보지도 못한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라는 녀석이 잠입해 온 사실이야 눈에 보이지 않으니 뒤늦게 알아챘다 치더라도 들어와서 근 한 달 동안 온 나라를 들쑤셔 놓고 있는데도 그 정체 하나 제대로 못 밝혀낸 채 갈팡질팡 끌려다니는 꼴이 정말 가관이다. 게다가 '오뉴월 더위에 염소뿔이 물러 빠진다'고 6월 중순에 벌써 낮 최고온도가 연일 30도를 웃돌아 멀쩡한 사람도 열불이 날 지경이다. 이럴 때 소나기라도 시원스레 쏟아지면 좋을텐데 그마저 기대할 수 없으니 정말 애가 탈대로 탄다. 안타깝지만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데 아무 힘도 보탤 수 없는 나로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말을 곱씹으며 이 사태를 그저 관망할 따름이다.
이런 판국에 그나마 몇가지 단비같은 일이 답답한 가슴을 흠뻑 적시며 열화를 식혀주었다.
우선 장모님이 훨씬 편안해 보인다는 점이다. 병세가 눈에 띄게 호전된 건 아니지만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신듯해 보기 좋았다. 우리 부부도 한 숨 돌리면서 토요일밤 수원으로 올라와 일요일엔 옆지기는 집에서 쉬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광교회 후배들과 광교산을 다녀왔다. 덕분에 젊은 후배들과 교감하는 기회를 갖은데다 사진속 아이들도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어제는 지난 5일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를 통보받았는데 '절주, 저지방식이, 정기적 검진 및 관리가 필요하다'는 소견이어서 특별히 우려할만한 사항이 없었다. 절주야 원래 평소 많이 마시거나 자주 마시는 편이 아니니 크게 걱정할 게 없는데 다만 LDL콜레스테롤 문제는 좀 신경을 써야할 듯하다. 육식보다 채식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상지질혈증을 관리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지만 지방 분해 능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니 유념할 수밖에... 어쨌든 당장 문제될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어제는 또 4단지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이사장이 오래만에 안부를 전하면서 장성에서 내 애인이 올라오니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내 애인이란 말에서 집히는 게 있었다. 짐작컨대 장성 백양사 부근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김사장이 올라온다는 얘기였다. 김사장은 4단지에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아 소유하고 있는데 이사장을 통해 그 아파트를 처분했구나 싶었다. 그 김사장과 내가 한 때 함께 근무했던 사실을 아는 이사장이 애인이라고 설레발을 치면서 식사 자리에 초대한 것이다. 아니나달라 약속장소에 가보니 김사장 부부가 와 있었다. 무려 36년만의 해후라 무척 반가웠다. 옆지기도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선약이 있다며 아쉬어했다. 옆지기도 36년전 그 김사장이랑 함께 근무했었으니까...나중에 우리 가족끼리 편백나무 숲에 둘러싸인 김사장네 펜션에 묵으면서 아쉬움을 달래도록 해야겠다. 아, 참! 그러고 보니 36년만의 해후가 아니었구나. 몇년 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캐리비언배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네.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 소나기를 맞아 수영복 차림으로 실내 온탕에 들렀는데 거기서 마주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었지... 그때도 세상 참 좁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도 그랬다. 김사장 남편과 통성명을 하고 고향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잘 아는 고향선배랑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죄짓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지.
오늘은 40년지기 절친끼리 용인 고기동 한정식집에서 회포를 풀었다. 모그룹 계열사 사장을 그만 두고 수지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친구를 격려하고 늦게나마 생일도 축하하기 위해 뭉쳐서 실컷 먹고 떠들었더니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그 기분을 살려 돌아오는 길에 신갈 운전면허시험장에 들러 '건강검진 결과통보서'로 적성검사를 대신하고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아 왔다. 이 면허증으로 또 다른 단비를 기대하며 내 인생을 새롭게 운전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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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원한 철부지의 낙서장 원문보기 글쓴이: 영원한 철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