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표추천 0조회 20420.08.24 06:31댓글 0
문학 청년들에게
- 비계 덩어리를 읽고
<비계 덩어리>를 읽고, 나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분들에게 전할 목적으로 '문학청년들에게'로 제목을 달았다. 내가 본 것을 전하여서 그들의 문학적 여정에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게 하려 하는 것이다. 문학청년들에게 라고 썼다고 어찌 문학청년들에게만 보내는 글이겠는가? 문학은 메시아적인 소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에 내용도 모르며 읽은 모파상의 단편 소설<비계 덩어리>를 다시 읽었다. 모파상이 이 소설을 쓴 그때(1880년)의 프랑스의 모습이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한심한 작태들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독후감이다. 이런 인간 무지와 이중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이라 불린다고 생각한다. 프러시아 군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루앙을 탈출하려고 보수주의자로 대변되는 부류인 귀족과 부자, 종교인(수녀), 자유민주를 외치는 진보주의 정치인, 그리고 그들 모두가 경멸하는 창녀(창녀 이름이 비계 덩어리)가 함께 마차를 탔다. 마차는 우리 사회라는 상징이고 사회 구성원은 인간을 계급화 시켜서 마차에 탄자들처럼 크게 5단계 계급으로 나뉜다다는 뜻이고, 그런 사회를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로 양분시켜서 그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며 가장 힘이 약한 자를 제물로 삼아서 “억압된 사회를 탈출하자”고 헛소리를 외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파상이라는 천재 작가가 그린 것이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그들은 노골적으로 같이 마차를 탄 비계덩어리를 경멸한다. 한 참을 지나자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한 그들은 배가 고파진다. 마차 안에서 음식을 준비해온 사람은 그들이 경멸한 창녀(=가장 하층민이 일용할 양식을 생산한다는 상징)가 유일하다. 굶주린 그들은 창녀가 먹는 음식에 침을 흘린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 줄 곳 창녀를 벌레 보듯 했다. 창녀가 음식을 나눠준다. 더럽다고 입에 대지도 않을 것 같던 그들이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운다. 그러고도 그들은 창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줄 모른다. 그것도 모자라서 진보주의 정치가는 자신의 성적 욕구까지 해소하려고 비계 덩어리에게 접근(자기 쾌락향유의 도구로 하층민을 학대하는 짓)한다. 비계 덩어리는 거부한다. 그러다가 마차는 더 큰 폭력사회로 상징되는 프러시아 군대에 잡힌다. 프러시아 장교는 비계 덩어리가 자신의 하룻밤 성적도구가 되어 주면 마차를 출발시켜 주겠다고 한다. 비계 덩어리는 장교의 요구를 거부한다. 마차에 탄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 모두가 또 다시 비계 덩어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탈출(자유)을 위해서 비계 덩어리의 자유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린하기 시작한다. 결국 비계 덩어리가 프러시아 장교의 수청을 들어주고 나서 그들은 풀려(해방)난다.
자신들의 안녕과 자유를 위해서라면 비계 덩어리(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사랑의 선택권까지 훼절시키려드는 함께 마차를 탄(세상을 살아가는)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나타내 보이는 사악한 인간의 이기심과 그 이기심을 온갖 고상함과 우아함과 이념으로 포장하고 위장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추악한 작태들 ~.
아브라함이 무고한 아들 이삭을 신의 제물로 바치려하던 이래로 세상은 여전히 순수하고 어린 영혼이 사악한 영혼들을 살리기 위한 재물이 되어 왔다는 것을 그래서 울고 싶지만 울음조차 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파상이라는 천재가 성찰하고 단편 소설로 그려 낸 것이다. 모파상이 말하는 비계 덩어리는 누구일까? 몸을 팔아 먹고사는 창녀일까? 이 소설에서 진짜 창녀는 누구인가? 영혼이 팔린 줄도 모르고 나는 최소한 몸을 판자보다는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이라고 여기는 비계 덩어리들에게 이 독후감을 바친다.(2020.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