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한창 꽃 카페 활동을 열심히 하던 때였다.
우리는 석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꽃을 가꾸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대체로 순수하고 다정했다. 한 번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아 다음 모임 때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오곤 했다.
신입 회원은 그날의 단연 ‘꽃’이었다. 모두가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었고, 예쁜 꽃도 품득듬뿍 챙겨주었다. 지금의 우리 ‘백두천지’ 모임처럼, 그때도 만남의 날이 늘 기다려졌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성향도 제각각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한 회원님은 모임의 든든한 중심축이었다. 모임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 중요한 결정도 대부분 그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어느 조직이든 이처럼 무게감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반면에 나는 귀여운 천방지축이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배려하고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 이리저리 오지랖을 부리곤 했다. 회원들도 그런 내 모습을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정겹고 예쁘게 봐주었다.
모임 날이면 회원들이 각자 정성껏 키운 꽃들을 가져왔다. 가져온 꽃들은 서로 그냥 나누기도 하고, 고급진 꽃은 모임 회비도 마련할 겸 소소하게 경매에 붙였다. 그래봤자 아주 헐값이었다. 사람마다 유독 눈독을 들이거나 관심 있어 하는 꽃이 있게 마련이라, 서로 “저 꽃 참 탐난다”며 속닥거리곤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슬그머니 그 꽃을 가져다가 쓱 건네주곤 했다. 때로는 경매에 직접 참여해 대신 낙찰받아 안겨주기도 했다. 단돈 몇 천 원이니 기꺼이 낼 수 있었고 전혀 아깝지 않았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내 주머니는 늘 가벼워졌지만, 마음만은 세상 누구보다 풍족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회원이 모임의 중심축인 그분을 ‘시아버지’, 나를 ‘친정아버지’ 같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가정을 엄격하고 든든하게 지켜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라면, 친정아버지는 언제나 따뜻한 정으로 자식을 오냐오냐 감싸 안아주는 편안한 존재라는 뜻이었으리라.
그 말이 어찌나 기분 좋고 정겹게 들리던지. 다른 회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해 주었다.
지금은 비록 그 모임을 떠났지만, 가끔 ‘친정아버지’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 시절, 참 따스했던 정겨운 얼굴들이 하나둘 함께 떠오른다.
첫댓글
시아버지와 친정 아버지
즐감했습니다
글을 참 맛깔스럽게 쓰십니다
그렇지요. 딸바보는 있지만 며느리바보는 없으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친정 아버지
참 정겨운 표현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