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 2 - 알히페리아 궁전에서 걸어서 에브르 강변을 지나 대성당에 가다!
어제 2026년 5월 15일 스페인 동쪽 최북단인 지로나를 구경하고는 기차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고속철 AVE를 타고 서쪽 내륙 사라고사에 도착해 호스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5월 16일 알히페리아궁전을 보기 위해 아침에 호스텔을 나와 한 블록인 큰 도로로 나옵니다.
큰도로 버스 정류소 Conde De Aranda No62(No 41) 에 알히페리아 궁전행 버스는 32, 33,
34, 52, N3 중에 32번이나 33번 Bus를 타고 Av De Madrid (No29) /Aljafería
정류소에 내리거나 또는 34번 Bus를 타고 Diputados/ Aljafería 정류소에 내리면 됩니다.
하지만 저게 2정거장 거리에 불과하니 우리 부부는 시내 거리도 익힐겸
걸어가기로 하는데.... 보통 두서너 정거장은 늘 걸어 다니니,
드디어 알히페리아 궁전 Aljafería Palace 이 저만치 보이는데.....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기로 성의 해자를 따라 한바퀴를 돌면서 보니
들어가는 입구는 여기 공원이 있는 곳에서 보이는 저기 문
하나뿐인데..... 마침 여직원 2명이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바깥에 있는 매표소로 가니 비로소 문을 여는데, 다가 가서 살펴보니 입장료는
7유로인데...... 우린 여권을 보이니 경로 우대인지 1인당 2유만 받습니다.
중국은 60세는 반액이고 65세나 70세는 무료지만 일본은 별 할인이 없습니다?
그런데 뭐어라 묻는데..... 아니? 돈을 받고 표를 내주면 되지 새삼 물어볼게 무어람? 그럼 여기
한곳만 보느냐 뭐 다른 곳이나 아님 보물관이 있어 거기 까지 보느냐라고 묻는가 했더니....
가만히 말을 들어 보니 그건 아니고 몇시에 들어갈 것이냐고 묻네요? 아니! 우리가 오늘
아침에 1번 으로 도착했는데 우리 앞에 누가 있다고 우리 순서가 뒤로 밀리느냐 말이요?
지금 당장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긴 시간대 별로 몇 명씩 인원을 한정해서 입장을
시키는데, 벌써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아 앞 순위는 인원이 다 차서 마감된 듯 싶습니다?
지금 시간이 10시인데....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서너명 밖에 없었는데 순식간에 50~60명
이 넘어가는 것을 보니 그럼 여행사 단체는 인터넷으로 미리 표를 샀나 보네요?
해서 몇시 타임이 있느냐고 물으니 매표소 할머니 직원은 13시, 14시, 15시 및 16시가 있다고 하기에
15시로 했다가 아무래도 다른 관광지를 먼저 보면서 느긋한게 좋지 싶어... 16시로 수정을 합니다.
알히페리아 궁전 입장시간이 6시간 정도 남았으니 그때 까지는 구시가지를 찾아가서 먼저 필라르
성모 대성당을 보기 위해.... 강변 남쪽에 자리한 올드 타운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갑니다.
여기 버스 정류소 Av De Madrid No29/ Aljafería 에서 36번 Bus 를 타고 북쪽
으로 올라가서는 P. Echegaray y Cahallero N 80/Once 에 내리면 됩니다.
거기서 왼쪽에 강을 끼고 강변릏 따라 걸어 산티아고 다리 Punte de
Santiago 를 지나면 바로 우리 목적지 필라르 성모 대성당 입니다.
그런데 울 마눌이 걸어서 가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기에 30 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니 그냥 걷자는데..... 그럼 한시간 가량 걸린다고 할걸, 잘못 말했나 봅니다?
휴대폰 구글 지도에 산티아고 다리 Punte de Santiago 를 입력해서 들고 걸으니 광장이 나오고
거기에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데.... 이집트에서 만든 진품인지 아니면 모조품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벨리스크 (ὀβελίσκος, obelisk) 는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 태양 신앙을 상징으로 세웠던 기념비로 화강암
으로 만들어졌으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사각뿔 (피라미드꼴) 형태를 뜁니다.
이집트 중왕국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파라오의 통치 기념제때 신전 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는데
건축 의도에 대해서는 다산(多産) 을 기원하는 구조물이 아닐까 하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라는 단어는 고전 이집트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에서 왔는데...... ὀβελίσκος
(오벨리스코스) 이니 '뾰족한 끝' 를 뜻하며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이라고 했는데,
이집트어로는 테케누 (tekhenu) 라고 불렸고 한자어로는 방첨탑 (方尖塔) 이라고 합니다.
많은 오벨리스크가 고대 로마 또는 근대 식민지 시기에 유럽으로 반출되었으니..... 프랑스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특히나 가장 유명한데, 이집트 총독이 프랑스
의 황제 루이 필리프 1세에게 증정한 것으로 본래 룩소르에 3200년 전 부터 있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 중에는 그 앞에 이집트에서 반출된 오벨리스크가 많은데.....
장식용으로 갖다 놓았으니, 라테라노 대성전 앞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완성해 카르나크 신전 앞에 세웠던 것입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벨리스크는 “태양신 라” 를 상징했으며, 아크나톤의 종교개혁 시기에는 아톤, 즉
태양원반의 석화된 빛줄기로 여겨졌으며..... 벤벤은 “누” 라는 태초의 물에서 솟아난 언덕
으로, 피라미드의 꼭대기 돌을 벤벤석 (피라미디온) 이라고도 하는데 오벨리스크와 관련이 있답니다.
이스탄불에 있는 '더핀 오벨리스크' 는 동로마 제국 시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른
오벨리스크들 처럼 하나의 석재로 되어 있지 않고 여러 벽돌 모양 돌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를 점령한 로마 제국 시절에 유럽으로 옮겨졌거나 제국주의 시절에 강탈해간 것이
많으며 특이하게도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오스만 제국
에서 독립하기 위해 프랑스를 우군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루이 필리프 1세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프랑스는 답례품으로 대형 기계식 시계를 1846년에 보내니 카이로 성채에 설치했지만 10년도 못 가서
1855년 고장나 작동이 되지않은 폐물이 되자 오벨리스크를 프랑스에 주는걸 결사반대하던
오귀스트 마리예트는 폐물이 되어버린 시계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3천년이 넘어도
변함없는 위대한 보물을 10년도 못가 고장나는 고철덩어리와 바꾸고 말았다." 면서 한탄했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 반출된 오벨리스크는 이탈리아 로마에 13개,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 1개,
영국 런던 템스 강변 1개,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 1개, 튀르키예 이스탄불 1개가 있습니다.
미국의 백악관 앞 워싱턴 기념탑이나 보스턴의 벙커힐 기념탑 같은 것은 오벨리스크를 모방하여 새로
새워진 탑인데..... 그럼 오늘 여기 오벨리스크도 스페인 사람들의 모조품인 것일까요? 아니면 진품?
예전에 이집트 전국일주 여행을 하면서 룩소르에 갔었으니 룩소르신전에 2개가
서 있어야 할 오벨리스크가 1개만 서 있어 균형이 맞지 않았는데
바로 파리로 간 것이며.... 그간 세게 여행에서 오벨리스크는 무수히 보았습니다.
계속 걸어가니 바람이 어찌 센지 걷기 힘들 정도라 골목길로 들어가니 빵 굽는 냄새가 나서 새로 나왔으면
사려고 주변을 둘러 보아도 제과점이 보이지 않으니 그럼 어느 가정집에서 오븐으로 구웠나 봅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데 엄마나 학부형들이
응원하는걸 보니...... 초등하교 저학년 아이들로 보이는데 참 열심입니다?
그러고는 더 걸어서 마침내 에브르강변에 도착했는데.... 여긴 조깅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으며 또 벤치가 엄청 많으니 산책하다가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계속해서 에브르강의 강변을 걸어서 이윽고 큰 길로 올라서서 조금 더 걸으니 저만치
큰 다리가 보이는데..... 이른바 산티아고 다리 Punte de Santiago 인가 봅니다?
그리고 에브르강 남쪽에 멋있는 엄청 큰 성당이 보이니 바로 우리가
가려고 하는 필라르 성모 대성당 ( 기둥의 성모 마리아 ) 입니다.
대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주변을 한바퀴 둘러 보는데데..... 먼저 Ave de Cesr Augusru 거리 에는
로마시대 유적인 성벽 터가 보이고 그 뒤쪽에 중앙시장 Mercado Central de Zaragoza 이 보입니다.
도시 이름인 사라고사 Zaragoza 의 어원은 로마시대의 도시명 Caesaraugusta 이니 고전
라틴어 식으로 읽는다면 '카이사르 아우구스타' 이지만 교회식으로 읽으면 '체사르
아우구스타' 인데..... 이 발음이 열화되고 몇 철자가 생략되어 Zaragoza 가 된 것이랍니다.
사라고사는 옛 아라곤 왕국의 수도이자 문화 중심지로 유적이 남아 있는 역사 도시이며,
스페인 북부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스페인에서
볼수 있는 이슬람 유적들은 주로 늦게 수복된 신카스티야 지방과 안달루시아에 있습니다.
스페인 북부는 이슬람의 영향을 찾기 어려운게 일반적인데 사라고사 타이파국이 이합집산하던
소국들 치곤 권력 기반도 뿌리내렸고..... 이베리아 북부 험악한 산악 지형이 사라고사
타이파국이 다른 변경지대 베르베르계 타이파국들 보다 오래 지속되는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수십년 전부터 디카로 사진을 찍어 여행기에 올리고 있는데 예전의 디카를 바닥에 뜰어뜨린후 못쓰게
되니 새 디카를 사려고 했더니 하이마트에서 이젠 취급을 하지 않는지라 남포동 지하상가에서
엣날 디카를 샀는데 반년 정도 잘 쓰다가 화면 떨림 현상으로 오늘은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동아일보 이다겸 기자와 고진영 기자가 기사를 올렸으니 “덜 선명한 사진 더 힙해”
빈티지 디카 찾는 2030, 완벽-보정 이미지 익숙한 청년들, 빛 번진 사진서
자유-여유 찾아, 가격 최대 3배 뛰고 대여점도 생겨, SNS엔 디카+놀이 ‘디놀’ 문화 확산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특색이 없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덜 선명하고
약간 흔들린 사진을 올리는 게 더 ‘힙’해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한 빈티지 디지털카메라 (디카) 매장에서 만난 박가은씨는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진열된 카메라 10여 대를 번갈아 찍어본 뒤 2013년 출시된 제품인 ‘캐논 파워샷 A2600’ 을
35만 원에 구매했다. 약 2∼3평 규모의 매장에서는 2030 세대 손님 10여 명이 연신 디카 셔터를
누르며 색감과 기능, 가격을 꼼꼼히 살폈다. 매장이 비좁아 밖에서 5명 가량이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2000∼2010년대에 출시된뒤 단종된 빈티지 디카가 2030세대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가격은 3배 이상 뛰었고 디카 대여 매장까지 생겼다. 최신 스마트폰카메라는
2억 화소에 달하지만 단종된 디카는 수백만 화소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
사진의 완벽함 대신 빛 번짐이나 노이즈가 남아있는 사진에서 자유로움과 여유를 찾으려 한다.
5일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1∼ 6월 ‘디카’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보다 22% 높았다. 디카를 찾는
수요가 늘자 상권도 바뀌고 있다. 세 운상가에서 디카 매장을 운영중인 이규태 씨는
“ 2곳 정도였던 세운상가 디카 매장이 올해 5곳으로 늘었고 7월 중 2곳이 더 들어올 예정” 이라고 말했다.
2030세대는 디카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학생 오모씨는 “디카를 찾으려고 최근 집 정리를 했다”
며 “작동하는 1대는 사용중이고, 나머지 2대도 배터리를 구해 살려볼 생각” 이라고 말했다.
박성현씨는 “10만 원에도 살수 있었던 디카가 요즘은 30만 원에도 겨우 구해진다” 며 “원하는 디카
모델을 사기위해 중고거래 앱에서 모델명을 알림으로 설정해두고 알림이 뜨면 곧바로 확인한다” 고 했다.
디카 인기가 이어지면서 대여 매장도 등장했다. 올해 1월부터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서
디카 대여숍을 운영중인 김민재씨는 “ 디카 가격이 오르면서 구매전
원하는 기종을 체험하거나 이색적인 데이트 콘텐츠로 활용하려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SNS에서는 디카로 찍은 사진을 올려 취미를 인증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1년 가까이 디카 사진 기록용
SNS 계정을 운영해 온 이모씨는 “설정값과 색감, 수리점 등 디카 이용 정보를 공유하는 용도로 계정
을 활용하고 있다” 며 “주말마다 카페나 전시, 식물원을 함께 찾을 ‘디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고 말했다.
디카 유행에는 과거 날것의 감성에 대한 동경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여 대 디카를 보유한
조수연씨는 “부모세대 사진처럼 자유롭고 날것의 분위기가 좋다” 며 “디카사진을 보면
실제보다 행복한 순간처럼 기억이 미화되는 느낌이 들어 계속 찾게된다” 고 했다. “완벽주의나
보정된 이미지에 익숙한 젊은층이 거친 결과물에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찾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