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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高句麗),신라 (新羅)
□ 을지문덕(乙支文德)
〇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신묘한 꾀는 천문을 꿰뚫었고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묘한 헤아림은 지리에 통달했네
戰勝功旣高 (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만족을 알면 멈추시길
◀ 이 시는 수(隋)나라 장수인 우중문(于仲文)에게 준 시로
〚작자〛 을지문덕.(乙支文德) 수나라 30만 대군을 살수에서 전부 몰살시켜 강대했던 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대영웅. 그가 을지문덕이다. 을지문덕 전기를 쓰신 민족주의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을지문덕을 4천 년 우리 역사에서 제일의 인물이라고 했다.
□ 최치원(崔致遠)
〇 등윤주자화사상방(登潤州慈和寺上房) - 崔致遠
登臨暫隔路岐塵(등림잠격로기진) 산에 올라 잠시 갈림길 먼지와 멀어졌으나
吟想興亡恨益新(음상흥망한익신) 흥망을 읊으며 생각하니 한이 더욱 새롭구나
畫角聲中朝暮浪(화각성중조모랑) 뿔나팔 소리 가운데 아침저녁 물결일고
靑山影裏古今人(청산영리고금인) 푸른 산 그림자 속엔 고금 인물 몇몇인고
霜摧玉樹花無主(상최옥수화무주) 서리가 옥수를 꺾어 꽃은 주인이 없고
風暖金陵草自春(풍난금릉초자춘) 바람이 따스한 금릉에 풀만 절로 봄이구나
賴有謝家餘境在(뇌유사가여경재) 사씨 집의 남은 풍광이 있음에 힘입어
長敎詩客爽精神(장교시객상정신) 길이 시인에게 정신을 상쾌하게 하네
◀ 자화사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회고(懷古)하는 시이다.
〇 촉규화(蜀葵花) - 崔致遠
寂寞荒田側(적막황전측) 적막하고 거친 밭 바로 옆에
繁花厭柔枝(번화염유지) 번성한 꽃 연약한 가지 누르고 있네
香輕梅雨窺(향경매우규) 장마 비 멎어서 향기 가볍게 날리고
影帶麥風湫(영대맥풍의) 바람 불어와 보리 그림자 누워 있구나
車馬誰見賞(거마수견상) 거마 탄 이 누가 있어 기쁘게 보아주리
蜂蝶徒相窺(봉접도상규) 벌 나비만 분주하게 서로 엿보네
自璃生地賤(자참생지천) 태어난 땅 비천함이 스스로 부끄럽고
堪恨人弁遺(감한인변유) 사람들 버려 둔 것 한스럽기 그지 없구나.
〇 추야우중(秋夜雨中) -崔致遠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오직 힘들여 읊고 있건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 알아주는 이 적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 밖에는 삼경의 비가 오는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에 만 리의 마음이여
◀ 이 시는 표수현위(漂水縣尉)를 지내던 18~23세 사이에 지은 시.
〇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 崔致遠
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광분첩석후중만 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상공시비성도이 고교류수진롱산
첩첩한 돌 사이에 미친 듯이 내뿜어 겹겹 봉우리에 울리니
사람 소리 지척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항상 시비 소리 귀에 이를까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하여금 온 산을 둘러싸게 했네
◀ 이 시는 최치원이 말년에 가야산에 은거 이후 독서당에서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세상의 온갖 시비(是非)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우의적(寓意的)으로 읊은 시이다.
〚작자〛 최치원(崔致遠)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 고려 (高麗)
□ 고조기(高兆基)
〇 영청현(永淸縣)
路橫層岫僻(노횡층수벽) 길은 층층으로 솟은 산봉으로 나고
城倚半天孤(성의반천고) 성은 우뚝 공중에 외롭게 기대었구나
碧洞長虛寂(벽동장허적) 푸른 골 안은 항상 텅 비어 적막한데
行雲忽有無(행운홀유무) 떠가는 구름은 문득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古松能自賴(고송능자뢰) 오래된 늙은 솔은 바람소리 절로 내고
春鳥巧相呼(춘조교상호) 봄 새는 교묘하게 마주 부른다
物像馴吟賞(물상순음상) 몇 날을 묵어면서 술병을 기울인다
留連倒酒壺(유연도주호) 온 갖 물상 시흥을 돋우기 알맞아
〚작자〛 고조기(高兆基, ?~1157) 고려시대 인종, 의종 때의 문신. 이자겸 실각 후 봉우를 탄핵하다가,
좌천되었다. 대관으로, 이자겸의 난 때 동조한 조신들의 파직을 상소하다가 예부낭중으로 전직되었다.
□ 권근(權近)
〇 발수주로상 유감 (發隨州路上 有感)
催車出登道 (최차출등도) 수레를 재촉하여 길에 오르니
畏日流炎曦 (외일유염희) 여름날이라 불볕이 흐르누나
驅馳踰山坂 (구치유산판) 달려 달려 산언덕을 넘어가자니
馬困人亦疲 (마곤인역피) 말이 피곤하고 사람도 피곤하네
行行不自息 (행행부자식) 가고 가서 쉴 새 없으니
王事有程期 (왕사유정기) 나랏일은 날짜가 정해졌기 때문
風來草樹動 (풍래초수동) 바람 부니 풀과 나무 흔들리고
吹我涼膚肌 (취아량부기) 내게 불어 피부와 살이 서늘하네
眷彼病畦者 권피병휴자) 농사에 병이 든 저 농부 돌아보니
曝背勤鋤犂 (폭배근서리) 등 쬐며 김매고 밭 가는데 바쁘군 그래
孜孜望秋稔 (자자망추임) 가을 곡식 익길 바라며 노력을 다해
輸稅身忍飢 (수세신인기) 세 바치고 자신은 굶주림을 참네
我生幸免此 (아생행면차) 내 삶은 다행히도 이를 면했으니
奔走何由辭 (분주하유사) 분주하는 괴로움을 어떻게 사양하리까
〇 숙감로사(宿甘露寺) - 權近
煙蒙古寺曉來淸 (연몽고사효래청)
湛湛庭前柏樹靑 (담담정전백수청)
松韻悄然寰宇靜 (송운초연환우정)
涼風時拂柳絲輕 (량풍시불유사경)
연기 자욱한 옛절 새벽에 맑아지고
이슬 내린 뜰 앞에 잣나무가 푸르다.
소나무 운치는 초연하고 세상 고요한데
서늘한 바람 때로 가벼이 버들가지 흔든다.
〇 시고개벽동이왕(始古開闢東夷王) - 權近
聞說鴻荒日 (문설홍황일) 전설을 듣자니 아득한 옛날
檀君降樹邊 (단군항수변) 단군님이 나무 밑에 내려오셨다네
位臨東國土 (위임동국토) 자리에 올라 동쪽 나라 다스렸는데
時在帝堯天 (시재제요천) 때는 요임금과 같다오
傳世不知幾 (전세부지기) 전한 세대 얼마인지 모르지만
歷年曾過千 (역년증과천) 지나온 해가 천년이 넘었답니다
後來箕子代 (후래기자대) 그 뒷날 기자의 대에 와서도
同是號朝鮮 (동시호조선) 똑같이 조선이라 이름하였네
〚작자〛 권근(權近,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학자로 호는 양촌이다.
친명정책을 주장하였다. 조선 개국 후, 사병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길창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대사성 · 세자좌빈객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났고,
경학에 밝아 사서오경의 구결을 정하였다. 저서에는 《입학도설》,《양촌집》,《사서오경구결》,《동현사략》이 있다.
□ 길재(吉再)
〇 述志(술지)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시내 임한 초가집에 홀로 한가로이 살아가도
달 밝고 바람 맑아 흥취 남음이 있네
속세사람 오지 않고 산새만 지저귈 때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을 본다
◀ 이 시는 야은(冶隱)이 16세 때 지은 시다.
〚작자〛 길재(吉再, 1353~1419)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 1387년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를 지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 김구용(金九容)
〇 야초(野草)
纖纖野草自開花(섬섬야초자개화) 작고 여린 들풀은 절로 꽃을 피우고
檣影如龍水面斜(장영여룡수면사) 물에 비친 돛 그림자인양 물에 빗겨있다.
日暮每依烟渚宿(일모매의연저숙) 날 저물면 언제나 안개 낀 물가에 기대서니
竹林深處有人家(죽림심처유인가) 대숲 깊은 곳에 사람 사는 집들이 보인다.
〚작자〛 김구용(金九容, 1338~1384) 본관 안동. 자 경지(敬之). 호 척약재(惕若齋).
초명 제민(齊閔). 고려 말기의 학자. 사장(詞章)을 잘하였으며,《동문선》에 8편의 시가 전한다.
저서에《척약재문집》,《선수집》,《주관육익》등이 있다.
□ 김극기(金克己)
〇 황산강(黃山江)
起餐傳舍曉度江(기찬전사효도강) 江水渺漫天蒼茫(강수묘만천창망)
黑風四起立白浪(흑풍사기립백랑) 舟與黃山爭低昴(주여황산쟁저묘)
津人似我履平地(진인사아리평지) 一棹漁歌聲短長(일도어가성단장)
十生九死到前岸(십생구사도전안) 槐柳陰中村徑荒(괴류음중촌경황)
여관에서 일어나 밥 먹고 새벽에 강 건너니
강물은 아득히 멀고 하늘은 검푸르구나.
검은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 흰 물결 일으키니
배는 황산과 다투어 낮았다 높아았다 한다.
나루터 사람도 나처럼 평지를 밟는데
외로운 고기잡이 배 노래는 짧았다 길었다 한다.
아홉 번 죽었다 열 번 살아나 앞 언덕에 이르니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그늘 속에 시골 길이 거칠다.
〇 어옹(漁翁) - 金克己
天翁尙未貰漁翁(천옹상미세어옹) 故遣江湖少順風(고견강호소순풍)
人世嶮巇君莫笑(인세험희군막소) 自家還在急流中(자가환재급류중)
천옹이 아직도 어옹에게 너그럽지 않아
일부러 강호에 순풍이 적게 하네
인간 세상 험하다고 그대여 비웃지 마소
자기도 도리어 급류 속에 있는 것을
◀ 이 시는 고기 잡는 노인을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처럼 쓴 시로, 어옹의 삶을 통해
세상의 풍파는 어느 곳이든 다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작자〛 김극기(金克己) 고려 명종(明宗)조의 문인으로 그의 시는 자연과의 교감을 부드럽게 표현하거나
사대부로서의 고민과 전원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 많으며, 농민의 삶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것이 특히 주목된다
□ 김부식(金富軾)
〇 관란사루(觀瀾寺樓)
六月人間暑氣融(육월인간서기융) 江樓終日足淸風(강루종일족청풍)
山容水色無今古(산용수색무금고) 俗態人情有異同(속태인정유이동)
舴艋獨行明鏡裏(책맹독행명경리) 鷺鶿雙去畵圖中(로자쌍거화도중)
堪嗟世事如銜勒(감차세사여함륵) 不放衰遲一禿翁(불방쇠지일독옹)
세속의 유월은 더위가 가득한데
강루에는 종일토록 청풍불어 좋아라
산모양 물빛은 고금이 한결같으나
세상의 풍속과 사람의 인정은 다름이 있다
거룻배는 맑은 거울 속을 홀로 가는데
가마우지 한 쌍 그림 속으로 날아간다
아, 세상사 마치 재갈과 굴레같아
약하고 둔한 한 늙은이 놓아주지 않는다
〇 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 -金富軾
俗客不到處(속객부도처) 속객들은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登臨意思清(등림의사청) 올라오니 마음이 맑아지네
山形秋更好(산형추경호) 산 모양은 가을이라 더욱 좋고
江色夜猶明(강색야유명) 강 빛은 밤인데도 더 환하구나
白鳥孤飛盡(백조고비진) 흰 새는 훨훨 날아가 버리고
孤帆獨去輕(고범독거경) 외로운 배는 홀로 가볍게 떠 가네
自慙蝸角上(자참와각상) 스스로 부끄럽구나, 달팽이 뿔 위에서
半世覓功名(반세멱공명) 반평생을 공명 찾아 헤맸으니
◀ 이 시는 감로사에 올라 시승(詩僧) 혜소(惠素)가 지은 시에 차운한 시이다.
〚작자〛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고려 중기의 유학자·역사가·정치가였다.
이자겸과 묘청의 난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여,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에 책봉되고,
검교태보 수태위 문하시중 판이부사(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吏部事)에 올랐다.
유교주의적 대의명분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 보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중세의 유교적 합리주의자였다.
□ 이규보(李奎報)
〇 영정중월(詠井中月)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았으리.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도 따라 비게 되는 것을
〇 대농부음 이수(代農夫吟 二首) - 李奎報
帶雨鋤禾伏畝中形容醜黑豈人容
대우서화복무중 형용추흑기인용
王孫公子休輕侮富貴豪奢出自儂
왕손공자휴경모 부귀호사출자농
비를 맞으며 밭이랑에 엎드려 김을 매니
모습 검고 추악하니 어찌 사람의 모습이리오
왕손공자여, 나를 업신여기지 말라
당신들의) 부귀호사가 나로부터 나오나니
新穀靑靑猶在畝縣胥官吏已徵租
신곡청청유재무 현서관이이징조
力耕富國關吾輩何苦相侵剝及膚
역경부국관오배 하고상침박급부
새 곡식 푸릇푸릇 아직도 이랑에 있는데
현관서리(縣官胥吏)는 벌써 조세를 징수하네
힘써 밭 갈아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 우리에게 달렸는데
어찌 이다지도 괴롭히며 살을 벗겨 가는가
◀ 이시는 이규보(李奎報)가 직접 농부가 되어 서술하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작자〛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시대의 문신ㆍ문인. 명문장가로 그가 지은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하기도 하였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동명왕편(東明王篇)」등이 있다.
□ 이색 (李穡)
〇 부벽루(浮碧樓)
昨過永明寺 (작과영명사)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 (잠등부벽루)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城空月一片 (성공월일편) 성은 텅 빈 채로 달 한 조각 떠 있고
石老雲千秋 (석로운천추) 오래된 조천석 위에 천 년의 구름 흐르네.
麟馬去不返 (인마거불반)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데
天孫何處遊 (천손하처유) 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長嘯倚風岉 (장소의풍등) 돌다리에 기대어 휘파람 부노라니
山靑江自流 (산청강자류) 산은 오늘도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
◀ 이 시는 목은이 23세에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도중 평양 금수산 부벽루에 올라
역사와 인간의 무상함을 읊은 시로, 인구(人口)에 많이 회자(膾炙)되던 시이다.
〚작자〛 이색(李穡, 1328~1396) 고려 말의 문신·학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정방 폐지, 3년상을 제도화하고, 김구용·정몽주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우왕의 사부였다. 위화도 회군 후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다.
조선 태조가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사양했다.
□ 이달충(李達衷)
〇 삼일포(三日浦)
觀海來登晩景臺(관해래등만경대) 바다를 보려 만경대에 오르니
雲濤煙浪接天來(운도연랑접천래) 구름파도 안개물결이 하늘까지 ?혀온다
若將此水變春酒(약장차수변춘주) 만약 이 물로 봄술로 바꾼다면
何止日傾三百盃(하지일경삼백배) 어찌 하루에 삼백 잔만 마시고 말겠는가
〚작자〛 이달충(李達衷, 1309년 ~ 1384년) 자 지중(止中), 호 제정(霽亭),
시호 문정(文靖) 고려 말의 유학자·문신. 호부상서, 밀직제학, 계림부윤을 역임.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 이인로(李仁老)
〇 산거(山居)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봄은 가도 꽃은 아직 있고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하늘은 갰건만 골짜기는 절로 어둑하네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소쩍새 한낮에 울고 있으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비로소 깨닫노라, 깊은 골에 사는 줄을
◀ 이 시는 경상도 고령(高靈) 미숭산(美崇山) 반룡사(盤龍寺)에 들러 지은 시이다.
〇 소상야우(瀟湘夜雨) - 李仁老
一帶滄波兩岸秋 風吹細雨洒歸舟
일대창파양안추 풍취세우세귀주
夜來泊近江邊竹 葉葉寒聲摠是愁
야래박근강변죽 엽렵한성총시수
- 소상강의 밤비
한 줄기 맑은 파도 양쪽 언덕엔 가을
바람이 가랑비 뿌려 가는 뱃전 때리네
밤 되어 강가 대숲에 배를 대려하니
잎새마다 차가운소리 죄다 근심이로다.
◀ 송적팔경도(宋迪八景圖)라는 그림에 붙인 여덟 편 연작시 중 하나다.
〇 平沙落雁(평사낙안) -李仁老
-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
水遠天長日脚斜(수원천장일각사) 隨陽征雁下汀沙(수양정안하정사)
行行點破秋空碧(행행점파추공벽) 低拂黃蘆動雪花(저불황로동설화)
긴 강 높은 하늘, 햇살 빛치고
햇살 따라 기러기 모래톱에 내린다
줄지어 날며 가을 푸른 하늘을 점점이 가르네
나직하게 갈대밭 스치자, 눈꽃이 흩날린다
〚작자〛 이인로(李仁老) 고려 명종 때의 학자(1152~1220). 초명은 득옥(得玉).
자는 미수(眉叟). 호는 와도헌(臥陶軒). 강좌칠현의 한 사람으로,
우간의대부를 지냈으며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다.
작품에 시집 ≪은대집(銀臺集)≫, ≪쌍명재집≫, 수필집 ≪파한집≫이 있다.
□ 정습명(鄭襲明)
〇 석죽화(石竹花)
世愛牡丹紅(세애모단홍) 세상에선 모두들 붉은 모란꽃만 사랑하여
裁培滿院中(재배만원중) 정원에 가득히 심고 가꾸네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누가 이 거친 초야에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좋은 꽃떨기 있는 줄 알기나 하랴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어여쁜 모습은 연못 속의 달을 꿰뚫었고
香傳娘樹風(향전낭수풍) 향기는 밭두렁 나무의 바람에 전하네
地偏公子少(지편공자소)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아주는 귀공자 적어
嬌態屬田翁(교태촉전옹)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
〚작자〛 정습명(鄭襲明, 미상~1151)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형양(滎陽). 고려의 문신.
인종 24년(1146) 공예왕후(恭睿王后)가 차자(次子) 대녕후(大寧侯)를 태자로 세우려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 앞장섰으며, 인종의 신임을 얻어 승선(承宣)에 올랐다.
≪동문선 東文選≫에 <석죽화 石竹花> 등 3편의 시와 2편의 표전(表箋)이 수록되어 있다.
□ 정지상(鄭知常)
〇 서도 (西郊)
紫陌春風細雨過 輕塵不動柳絲斜
자맥춘풍세우과 경진부동유사사
綠窓朱戶笙歌咽 盡是梨園弟子家
녹창주호생가열 진시이원제자가
평양의 거리 봄바람에 가는 비 지나가니
티끌조차 불지 않고 버들가지 실처럼 늘어졌네.
푸른 창 붉은 문에 생황의 가락과 노래
이 모두가 노래 배우는 이원제자 집들이라네.
◀ 이 시는 봄비 내린 뒤 화려하고 번화한 평양 거리의 모습을 형용하고 있는 시이다.
〇 송인(送人) - 鄭知常
庭前一葉落 (정전일엽락) 뜰 앞 나뭇잎 떨어지고,
床下百蟲悲 (상하백충비)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
忽忽不可止 (홀홀불가지) 홀홀히 떠남 말릴 수 없네만,
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유유히 어디로 향하는가.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한 조각 마음은 산 끝난 곳으로,
孤夢月明時 (고명월명시) 외로운 꿈은 달 밝을 때에나.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를 때면,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그대 뒷기약 잊지 말게나.
◀ 이 시의 시적화자는 임과 이별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이별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달픈지
그 고통을 화자는 자연을 이용해 대비와 비유를 통해 잘 나타내고 있다.
〇 장원정(長源亭) - 鄭知常
岧嶢雙闕枕江濱(초요쌍궐침강빈) 우뚝 솟은 쌍궐이 강가를 베고 누워
淸夜都無一點塵(청야도무일점진) 맑은 밤에 도무지 티끌 한 점 안 이네
風送客帆雲片片(풍송객범운편편) 바람 실은 돛단배는 구름처럼 조각조각
露凝宮瓦玉鱗鱗(노응궁와옥린린) 이슬 엉긴 궁기와는 옥처럼 반짝반짝
綠楊閉戶入九屋(녹양폐호입구옥) 푸른 버들 속 문 닫은 여덟아홉 집이 있고
明月捲簾三兩人(명월권렴삼량인) 밝은 달에 발 걷은 두세 명의 사람 있네
縹緲蓬萊在何處(표묘봉래재하처) 아득한 봉래산은 어느 곳에 있는가
夢闌黃鳥囀靑春(몽란황조전청춘) 꿈 깨니 꾀꼬리가 푸른 봄을 노래하네
◀ 장원정에 가서 지은 시로, 정지상의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이다.
〚작자〛 정지상(鄭知常, ?~1135, 인종13) 고려 후기의 관인이다. 1354년 전라도안렴사로 있을 때
원의 사신 야사부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가 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었다.
공민왕이 배원정책을 펼친 후 호부시랑 어사중승 등을 거쳐 판사에 올랐다.
□ 정추(鄭 樞)
〇 오리(汚吏)
城頭烏亂啼(성두오란제) 성 위에 까마귀 요란하게 울 때
城下汚吏集(성하오리집) 성 아래 오리가 모여드는구나
府牒昨夜下(부첩작야하) 어제 정부의 통첩(通牒)이 내리면
豈辭行露濕(기사행로습) 어찌 싫다고 하겠는가
窮民相聚哭(궁민상취곡) 곤궁한 백성은 서로 모여 울고 있는데
子夜誅求急(자야주구급) 밤중이 되어도 주구(誅求)는 더욱 더하네
舊時千丁縣(구시천정현) 옛날 천정(千丁)이 살던 고을에는
今朝十室邑(금조십실읍) 이제 열 집 밖에 되지 않네
君門虎豹守(군문호표수) 대궐문은 표범과 호랑이가 지키고 있으니
此言何自入(차언하자입) 이 말이 어찌 들어가리!
白駒在空谷(백구재공곡) 흰 망아지는 빈 골짜기에 있는데
何以得維琄(하이득유집) 어찌 잡아 맬 수 있으리오.
〚작자〛 정추(鄭樞, 1333~1382)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초명은 추(樞).
자는 공권(公權). 호는 원재(圓齋). 벼슬은 수성익조공신(輸誠翊祚功臣)에 올랐다.
시호는 문간(文簡). 저서는 ≪원재집 圓齋集≫이 있다.
□ 정포(鄭誧)
〇 결려(結廬)
結廬在澗曲(결려재간곡) 개울가에 초가를 지으니
地僻心茫然(지벽심망연) 땅은 궁벽하고 마음은 망연하다
山光滿席上(산광만석상) 산 빛은 자리에 가득하고
澗水鳴窓前(간수명창전) 개울물은 창 앞에 드려온다
高謌紫芝曲(고가자지곡) 자지곡을 소리 높여 부르며
靜撫朱絲絃(정무주사현) 고요히 주현금을 어루만진다
門無車馬至(문무차마지) 문에는 이르는 수레와 마차 없으니
此樂可終年(차악가종년) 이러한 즐거움에 해를 지낼 만하다
〚작자〛 정포(鄭誧, 1309~1345)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설곡(雪谷)
. ≪동문선 東文選≫에 전하는 27편의 한시(漢詩)와 표전(表箋), 청사(靑詞), 축문(祝文) 등 12편과
저서로는 ≪설곡집 雪谷集≫이 있고, 1887년 ≪설곡선생실기 雪谷先生實記≫(3권 1책)가 간행되었다..
□ 진화(陣篍)
〇 소상야우(瀟湘夜雨)
江村入夜秋陰重 (강촌입야추음중)
小店漁燈光欲凍 (소점어등광욕동)
森森雨脚跨平湖 (삼삼우각과평호)
萬點波濤欲飛送 (만점파도욕비송)
竹枝蕭瑟碎明珠 (죽지소슬쇄명주)
荷葉翩翩走篹汞 (하엽편편주환홍)
孤舟徹曉掩蓬窓 (고주철효엄봉창)
緊風吹斷天涯夢 (긴풍취단천애몽)
강촌에 밤이 들어 가을 그늘 무거운데
조그만 주막에 고깃불 얼겠다.
빗발이 주룩주룩 편편 호수 걸렸는데
만 방울 파도는 날아갈 듯 하는구나.
바삭바삭 댓가지 밝은 구슬 부수듯하고
연잎사귀 푸득푸득 둥근 수은 굴린다.
밤새도록 외론 배 봉창을 닫아놓아
바람 부는 하늘가 꿈을 끊어 버린다.
〚작자〛 진화(陳澕) 고려 시대의 문인(?~?). 호는 매호(梅湖). 시에 능하고 사(詞)에 쓰인 말이
맑고 고와 경지에 달하였으며, 변태 백출(變態百出)한 표현으로 이규보와 더불어 이름을 떨쳤다.
문집 ≪매호유고≫에 시 몇 편이 전한다.
□ 최유청(崔惟淸)
〇 잡흥 구수(雜興 九首) - 崔惟淸
其一(기일)
春草忽已綠(춘초홀이록) 봄풀이 어느새 푸르니
滿園胡蝶飛(만원호접비) 온 동산에 나비가 날아다니네
東風欺人睡(동풍기인수) 잠든 사이에 동풍이 슬쩍 불어
吹起床上衣(취기상상의) 평상 위의 옷자락 펄럭이게 하네
覺來寂無事(각래적무사) 잠이 깨니 고요해 일이 없는데
林外射落暉(임외사락휘) 숲 저쪽에 저녁 볕 쏟아지네
倚檻欲嘆息(의함욕탄식)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 했더니
靜然已忘機(정연이망기) 고요히 이미 세상만사 잊었네
其二(기이)
人生百歲間(인생백세간) 사람이 사는 백 년 동안
忽忽如風燭(홀홀여풍촉) 홀연히 바람 앞의 촛불 같아라
且問富貴心(차문부귀심) 잠깐 묻노니, 부귀하려는 마음
誰肯死前足(수긍사전족) 누가 죽기 전에 만족할 수 있을까
仙夫不可期(선부불가기) 신선은 기약할 수 없으며
世道多飜覆(세도다번복) 이 세상길은 번복도 많아라
聊傾北海尊(요경북해존) 애오라지 북해의 술통 기울여
浩歌仰看屋(호가앙간옥) 큰 소리로 노래하며 천정이나 쳐다보세
〇 초귀고원(初歸故園)
里閭蕭索人多換(이려소색인다환)
墻屋傾頹草半荒(장옥경퇴초반황)
唯有門前石井水(유유문전석정수)
依然不改舊甘凉(의연불개구감량)
마을은 쓸쓸하고 낮선 얼굴도 많고
무너진 담장에 풀마저 우거졌구나
오직 대문 앞 우물만이 남아
달고 상큼한 지난 물맛과 다름없구나
〚작자〛 최유청(崔惟淸) 고려 시대의 학자ㆍ문신(1095~1174). 자는 직재(直哉).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다.
정중부의 난 때 다른 문신은 모두 화를 입었으나, 그는 덕망이 있어 죽음을 면하였다.
저서에 ≪남도집(南都集)≫, ≪유문사실(柳文事實)≫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