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이 받은 모란꽃에 나비가 없는 진짜 이유(1)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지만, 특히 동양화를 감상할 때는 거기에 그려진 소재에 담긴 뜻을 알고 봐야 그림의 참맛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동양화는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읽는 것이라 하였다. 동양화 감상은 글자 그대로 독화(讀畵)다. 그래서 곽희란 사람은 “그림은 소리 없는 시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다.”란 말을 남겼고, 소동파는 왕유의 그림에 대해 “왕유의 시에는 그림이 있고, 왕유의 그림에는 시가 들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독화의 관념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욱 굳어져, 북송 때에는 화원을 선발할 때 그림을 그리는 기능을 주로 하여 뽑지 않고, 문관을 뽑는 과거시험처럼 그릴 제목을 시제(詩題)로 내거는 일까지 생겼다. 제목을 따라 시를 잘 표현하듯이 그림도 시를 쓰는 것처럼 제목의 내용이 잘 담기도록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양화의 소재 배열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 독화법 대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개화 시기가 같지 않은 꽃을 함께 그리거나, 함께 그려진 철새와 꽃의 계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이 그러한 예다. 또 학은 늪에 사는 새인데 파도치는 바닷가에 서 있는가 하면, 호랑이가 까치와 같이 있고, 고양이가 참새와 같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배치는 우리의 일상적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
동양화에 등장하는 소재는 동물, 식물, 달, 바위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 소재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들의 외형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고, 소재를 나타내는 한자의 뜻이나 음과 관련지어진 것도 있으며, 고전의 명구나 일화를 담고 있는 것 등 매우 이채롭다.
모란과 장미는 꽃이 매우 크고 아름다워 부귀와 장수를 뜻하고, 석류와 포도, 대추는 씨나 낟알이 많아서 자손 번영이나 다자(多子)를 의미하는 것은 소재의 외형과 관련된 경우이다. 그리고 동양화에는 박쥐와 표범이 많이 등장하는데, 박쥐는 ‘박쥐 복(蝠)’ 자가 ‘복 복(福)’ 자와 음이 같아서 다복을 뜻하고, 표범을 나타내는 한자 ‘표범 표(豹)’ 자는 음이 ‘알릴 보(報)’ 자의 음인 [bào]와 같기 때문에,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소재를 나타내는 한자의 음과 뜻에 관련지은 경우다. 그림의 기법을 중국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그림이라도 음의 상통은 주로 중국 음이 기준이 되어 있다.
다음으로 고전의 명구나 일화를 재제로 한 그림을 보자.
한 동자가 소나무 아래에서 어떤 선비에게 구름 낀 산을 가리키고 있는 그림은, 가도의 유명한 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란 시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이는 고전의 명구를 그림으로 나타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선생님은 약 캐러 갔다고 하네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지금 이 산중에 계시지만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구름이 깊어서 알 수가 없다 하네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탁족도(濯足圖)는 선비가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의 내용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성품이 너무나 고결하여 타협할 줄 모르던 굴원이, 왕에게 옳은 말을 고하다가 쫓겨나 한탄하는 모습을 보고, 어부가 그를 안타깝게 여겨 이르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라고 하였다. 이는 자기만 고결하다 하여 남을 너무 탓하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세태에 적응하여 처신하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세상이 맑으면 갓을 쓰고 관직에 나아가 꿈을 펼치고, 세상이 흐리면 발이나 씻으며 은둔하며 기다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뜻이 담겨 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어부사의 이 구절에 담긴 뜻을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니 공자가 답하기를, 그것은 스스로 취하기에 달렸다는 뜻이라[自取之也]고 대답하였다. 모든 것은 자기가 처신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공자는 그것을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하지 않고, 물의 처지에서 해석하였다. 즉 물이 흐릴 때 사람들이 더러운 발을 씻는 것은, 사람이 물을 홀대해서가 아니라 물 자신이 스스로 탁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물 스스로가 맑은 상태를 유지하면 사람들도 자기가 중히 여기는 갓끈을 거기에 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자기가 처신하기에 달려 있으니, 각자가 스스로 수신(修身)에 힘쓰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탁족도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다. 단순한 피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다.
또 네 명의 노인이 산속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은사(隱士)로 유명한 상산(商山)의 사호(四皓)를 화제로 삼은 그림이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상산사호도(商山四皓圖), 상산위기도(商山圍碁圖) 또는 상산위기사호도(商山圍碁四皓圖)라 부른다. 상산은 섬서성(陝西省) 상현(商縣)의 동쪽에 있는 산으로서, 이곳에는 진나라 말기의 난세를 피하여 네 명의 노인이 은거하였다.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녹리선생(甪里先生)이 그들인데, 머리와 수염이 모두 희었기 때문에 사호(四皓)라 불렀다.
그들은 난리가 끝난 뒤에도 한(漢) 고조(高祖)가 불렀으나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고조가 항우(項羽)에게는 이겼으나 사호에게는 졌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으며, 소부(巢父) 허유(許由)와 함께 은사로 널리 추앙받았다. 이처럼 상산사호는 탐욕과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전범이 되었기로, 그림의 재제로도 많이 올랐고 시인들의 시제로도 널리 씌었다.
고려 때의 원천석이 쓴 제사호도(題四皓圖)와 서거정의 사호위기도(四皓圍棋圖)도 그러한 내용의 시다.
상산 깊은 곳에 함께 들어와 共入商山裏 (공입상산리)
어느덧 세월 흘러 머리엔 서리가 가득 霜鬢歲月深 (상빈세월심)
소나무 그늘 아래서 바둑을 두며 松陰棋一局 (송음기일국)
세상으로 향한 마음 휘둘러 끊었네 揮斷世途心 (휘단세도심)
―원천석의 <제사호도>
세상도 명예도 모두 다 버리고서 於世於名已兩逃(어세어명이양도)
한가로이 마주앉아 바둑만 두는구나 閑圍一局子頻敲(한위일국자빈고)
이중에 묘수 있건만 알아줄 사람 없더니 此中妙手無人識(차중묘수무인식)
때마침 유비가 있어 높은 한 수 두어 주리 會有安劉一着高(회유안류일착고)
―서거정의 <사호위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