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임영남
입춘立春에게 편지가 왔다
어서 길을 내라고
우체통으로 향한
눈부터 쓸어야겠다
- 임영남 시집 {슬픔도 졸이면 단맛이 난다}(근간)에서
한겨울의 동장군의 지배체제는 전제군주적이며, 어느 누구도 그 모진 눈보라와 사나운 추위를 쉽게 피해갈 수가 없다. 한겨울의 동장군은 그러나 진시황제와 네로황제와도 같은 폭군이 아니라 만물의 사령관이자 종의 건강을 책임진 대자연의 창조주라고 할 수가 있다.
가장 잔인하고 가혹하며 못 살게 하는 것이 천재생산의 교수법이듯이, 천길 낭떠러지와 풍전등화 속의 운명을 극복하려면 자기 자신의 그 모든 것을 다 걸고 정진하고, 또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진 눈보라 속에서도 더욱더 꿋꿋하고 의연해지지 않으면 안 되고, 사나운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집을 짓고 불을 피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자연의 교수법을 참지 못하고 꿈과 희망의 날개가 부러지거나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어버린 낙오자들이 다 걸러질 때쯤이면, 머나먼 남쪽 나라의 ‘입춘’으로부터 봄편지가 오게 된다. 천지사방 그 어디를 둘러봐도 입춘은 보이지가 않지만, 따뜻한 봄바람이 추녀끝의 고드름과 앞산의 눈을 녹이며,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늘, 항상, 공부를 하며 자기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는 자는 미래의 앞날을 바라보는 안목과 선견지명이 생기게 된다. 모든 시인은 선구자이고 개척자이며, 그는 모진 눈보라와 사나운 추위를 떨치며 우체통으로 향한 ‘눈길’부터 내게 된다.
입춘대길立春大吉, 임영남 시인의 [눈길]은 최고급의 봄편지이며, 천하제일의 동장군을 물리친 대서사시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언어는 백발백중의 개화율을 자랑하고 이 짧은 단시를 대서사시보다 더 큰 울림을 갖게 만든다.
시의 참맛이 [눈길]을 뚫고 봄편지로 활짝 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