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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천지 창조/ 창세기 1:1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woHE5fl5UbM
미술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의 실력과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남는 천재성을 가진 작가들은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롬 1:20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하게 보여 알려졌습니다.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광대함, 피조물의 섬세함, 피조물 가운데 있는 생명력 등 다양한 각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피조물의 광대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신 우주가 얼마나 광대합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크기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을 헤는 밤’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 4연에서 시인은 자신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아릴 것처럼 말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이 시에서 별들은 순수한 꿈과 이상, 광복에 대한 희망,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 고향 등등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룻밤 사이에 셀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가진 꿈과 이상과 추억 등이 너무나 많아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시인은 자신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하룻밤에 다 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에 만드신 별은 어떨까요? 별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호주국립대학의 사이먼 드라이버 박사는 우주에 있는 별의 총수는 7에 0이 22개 붙은 숫자만큼 된다고 합니다. 그 수는 7조 곱하기 1백억입니다. 7조 개도 많고 1백억 개도 많은데, 그 두 숫자를 곱한 것이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말해 보겠으나 피부에 와 닿을지 의문입니다. 어른이 양손으로 모래를 퍼 담으면 그 모래알 숫자가 약 8백만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구상에 있는 모든 해변과 사막의 모래를 다 합친다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별은 관측 가능한 것만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해변과 사막의 모래를 다 합친 것보다 10배나 많다고 합니다. 1초에 하나씩 센다면, 1년이 약 3,200만 초니까, 자그마치 2천조 년이 더 걸린다고 합니다. 기절초풍할 숫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 안에만 별이 1천억 개에서 4천억 개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 안에 있는 별을 편의상 2천 억 개라고 가정을 합시다. 2천억 개의 별을 1초에 하나씩 센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약 6,300년 걸립니다. 한 사람이 100년을 산다고 가정을 하면 약 63명이 일생토록 단 1초도 쉬지 않고 우리가 사는 은하계 안에 있는 별을 세야만 가능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가 안드로메다인데 지구로부터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의 속도로 250만 년 걸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주 전체에 이런 은하가 관측 가능한 것만 1,700억 개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관측이 안 된 것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주의 광대함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는 한 증거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믿음만 충만해도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통해서 몇 가지 음성을 듣겠습니다.
1. 하나님은 함께 일하십니다.
본문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אֱלֹהִים(엘로힘)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엘로힘이 26번 나옵니다. 이 ‘엘로힘’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습니다. 히브리어 명사 ‘엘로힘’은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엘로힘’을 다신론적(多神論的) 사상의 반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복수형이 삼위일체 교리를 지지한다고 해석합니다. 엘로힘 복수형이 복수의 신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복수 주어에 단수 동사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가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을 잘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지만 본질상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십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함께 일하셨습니다. 26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서 우리를 하나님과 천사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실제로 성자께서도 창조의 사역에 함께 하셨습니다. 요 1:3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성부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처럼 성자 예수님도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도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천지만물의 재료가 준비 된 상태입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 수면 위에 운행하셨습니다. 암탉이 달걀을 폼어 병아리를 부화시키듯이 성령님이 창조의 원재료들을 그렇게 품으셨다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만이 아니라 구속 사역에서도 함께 일하셨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육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성령님이 함께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 되셨고, 성령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께서는 교회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주님이 이루신 구원을 각 사람에게 적용시키시고 계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으로 믿는 우리를 끌어드리고 계십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하십니다. 먼저는 삼위하나님의 완전한 교제 안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요한복음 17장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요 17:21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과 아버지와 성령님은 하나이셨습니다. 삼위일체로 완벽하게 하나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삼위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이게 엄청난 일입니다.
또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십니다. 고전 3:9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신과 아볼로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입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6일 만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단 1초만에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들이 구원 받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우리 성도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세계 선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교사를 부르시어 선교지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재정적인 후원을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선교사는 사람들을 접촉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며 그들을 성장시키고 그들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고전 1:21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미련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전도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셨고,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셨고,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구원을 각 사람에게 적용하시지만 여기에 더해서 우리의 동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실 때 반드시 사람의 동역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로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을 구원하실 때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방주를 만들지 않으시고 노아가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을 세우실 때도 직접 하시지 않고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이 지저분하기보다 깨끗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친히 빗자루를 들지 않으십니다. 성도들의 수고를 통해서 예배당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이런 원리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창 1:28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내용을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편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부르심에는 내적인 부르심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목회자가 되는 것이든 선교사가 되는 것이든 단기선교가 되었든 어떤 사역에 대한 헌신이 되었든 내적인 세미한 음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장은 “이르시되”의 역사입니다. 11번의 이르시되가 나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열매를 맺는 분입니다. 사 57:19입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 말씀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병든 자들도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귀신들도 말씀으로 쫓으셨습니다. 말씀으로 광풍이 이는 바다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주님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주님은 그가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 만에 그의 무덤 앞에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주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그 사람이 변화되고 기도가 응답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친구들 사이에 고집쟁이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 때문에 가끔 폭발했는데, 제가 폭발하면 감당이 안 됐습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심했는데 은혜를 받은 후에도 가끔 폭발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 시절에는 교회 청년과 한 판 붙은 적이 있습니다. 저를 화나게 만들어서 제가 동네 공원에서 한 판 붙자고 했습니다. 그 청년이 피해서 싸움이 안 됐습니다. 그 교회에서 2층 아저씨가 교회를 핍박하기에 제가 나서서 그 아저씨와 싸우려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싸움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구이동쪽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는 동네 불량배들이 교회 학생들을 괴롭혀서 제가 그 불량배들을 교회 유아실에서 때리기도 했습니다. 신학교 4학년 때는 동기 전도사와 갈등을 하다가 제 발이 그 친구 얼굴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약 1:20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제가 그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은 제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보약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저를 새롭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으면 삶이 변화됩니다. 제가 전에 가지고 있던 성경에는 이런 글귀를 적어뒀습니다. “구약은 한약이고 신약은 양약이니 이것을 먹고 기운을 차리세” 눈에 좋은 약을 먹으면 눈이 좋아집니다. 간에 좋은 약을 먹으면 간이 좋아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약입니다. 영혼구원의 말씀을 먹으면 영혼구원이 일어나고, 질병 치료의 말씀을 먹으면 질병 치료가 일어납니다. 풍성함에 관한 말씀을 먹으면 풍성한 역사가 일어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말씀을 받고 먹으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면 내가 변화되고, 내 문제가 풀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과에서 두 그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6주 동안 실험을 했습니다. 한 그룹의 학생들은 매일 15분씩 말씀묵상을 하고, 다른 한 그룹은 평상시 그대로 활동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들의 혈압과 호흡 등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말씀을 묵상한 학생 1/3이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얼굴색이 좋아졌습니다. 산소 사용량도 다른 사람보다 1/10정도 줄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로 차분하게 숨을 쉬니까 산소를 덜 쓴 것입니다.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반응시간도 1/3이나 더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약의 복용도 1/5로 줄었습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학생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마음의 평화를 누렸고,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일을 할 때도 전보다 훨씬 민첩해졌습니다. 말씀이 주는 유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는 복이 있습니다. 2004년 8월에 초등학교 4학년인 정희재라는 어린이가 지리산에서 사흘간 조난당했다가 살아나왔습니다. 아빠와 아빠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혼자 떨어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사흘간 이 아이는 홀로 깊은 지리산에서 헤매며 다녔습니다. 그 때 이 아이를 인도한 것은 평소에 아빠가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무서울 때 “우리나라 산에는 맹수가 살지 않는다.”는 아빠의 말씀을 기억하며 무서움을 견뎠습니다. 비가 내리자 “산에서 비를 맞고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아빠의 말씀이 생각나 침낭을 뒤집어 쓴 채 밤을 지새웠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어도 물소리 나는 쪽으로 가면 산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있다.”는 아빠의 말씀대로 물길을 따라서 산 아래로 내려가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지리산에서 길을 잃었고, 이틀 밤을 혼자 산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아빠의 말씀을 생각하고 아빠의 말씀대로 실천해서 살았습니다. 이 사건을 신앙에 적용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실 때에도 말씀의 은혜를 받게 하셔서 말씀의 능력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 중에 하나는 정확성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공간 안에 수많은 별들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 별들은 정확한 시간에 자전과 공전을 합니다. 조금도 오차가 없습니다. 만약 별들의 회전에 오차가 있다면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멸망입니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약 149,600,000km입니다. 지구와 태양은 이 거리에서 약간 가까워지거나 약간 멀어집니다. 그래서 4계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거리에 심각한 변동이 생기면 큰일입니다. 지구가 태양과 더 가까워지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타서 죽습니다. 태양과 더 멀어지면 지구의 생명체는 다 얼어서 죽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이 거리를 지켜지게 만드셨습니다.
지구는 지표의 약 70%가 물입니다. 만약 이 비율이 달리지면 지구는 전체가 늪지대가 될 수도 있고, 지구 전체가 사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기의 21%가 산소입니다. 만약 산소가 부족하면 우리는 산소 부족으로 죽습니다. 산소 비율이 몇 %만 늘어나도 불이 나면 불을 끌 수 없어서 지구는 불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만드셔서 우주가 질서정연하게 운행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입니다.
우주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은 천국과 지구뿐입니다. 가스가 몰려다니다가 우연히 크게 모인 것은 태양이 되었고, 작게 모인 것은 지구, 달 같은 것이 되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모래를 억만 년 놓아두면 집이 지어집니까? 쇳덩어리를 천만 년 놓아두면 자동차가 될 수 있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집이 있는데 만든 이가 없이 우연히 생긴 집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광대한 우주와 섬세하고 미세한 생명체가 어떻게 우연히 되었겠습니까?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어떻게 이렇게 질서정연합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 중에 또 하나는 다양성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출발할 때부터 각기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말씀합니다. 창 1:11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하나님께서 풀과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도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 1:21입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바다의 짐승과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하늘을 나는 모든 새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 1:25입니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과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존재하지만 똑같은 별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구상에 80억 명이 살지만 닮은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는 1,500만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그 생명체들은 출발부터 각기 종류가 다른 생명체들입니다. 사람들은 아메바가 오랜 시간동안 진화하여 원숭이가 되었고 원숭이가 오랜 시간동안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이론은 허구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지구상에는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무수한 중간 개체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발명왕 아이작 뉴턴에게 무신론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뉴턴이 작은 태양계 모형을 만들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많은 별들이 비치는 모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무신론자 친구를 초청해서 그 모형을 보여 주었습니다. 뉴턴의 친구가 태양의 모형을 보더니 “야! 정밀하게 잘 만들었군. 이거 누가 만들었나?”라고 물었습니다. 뉴턴은 “하룻밤 자고 났더니 저절로 생겨났어. 만든 사람이 없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친구는 뉴턴의 대답을 듣고 “이 사람아.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만든 사람이 없이 어떻게 이런 정밀한 태양계 모형이 생겨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뉴턴은 “여보게, 이런 작은 것 하나도 저절로 생겨날 수가 없다면 이것보다 더 정밀하고 질서 정연한 태양계와 우주 만물이 어떻게 설계한 분과 만드신 분이 없이 저절로 생겨날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흔히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신앙입니다. 진화론은 수많은 가설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 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신앙하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신앙하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4.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진화를 믿으려면 물질의 자존성과 영원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이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보면 사람은 물질에서 온 우연한 존재입니다. 이런 유물론적인 관점으로는 사람을 존귀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물론자들인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니 공산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중국 문화 혁명 때 모택동은 약 4,900만~7,800만 명을 죽였습니다.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이 죽였습니다. 스탈린은 공산혁명을 일으키면서 약 2,3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지금의 북한 인구 정도를 죽였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정권을 잡고 약 160만 명을 죽였습니다. 송파구인구의 거의 3배를 죽인 것입니다. 그들이 진화론을 믿는 유물론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잔인한 짓을 한 것입니다.
기가 막힌 것은 대한민국에서 살인마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출판되었습니다. 이를 염려한 탈불민들이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법원에서 기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대통령의 회고록 중 1권은 출판을 금지시켰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전두환대통령이 독재하고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김일성만하겠습니까? 저는 전두환대통령에 대해서는 살인마라고 공격하면서 김일성과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건 김일성주체사상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이단의 영에 사로잡힌 것처럼 공산주의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학대당하는 북한주민은 보이지 않고 김일성 3부자만 보이는 것입니다.
진화론적인 관점은 사람을 물질로 보기 때문에 사람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반면에 창조론적인 관점을 가지면 사람의 인격성과 영성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고 믿기 때문에 사람을 존귀하게 봅니다. 창조신앙을 가져야 사람을 가치 있게 보고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신앙을 기초로 형성된 사회가 평화로운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절대로 사람을 물질 취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존귀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존귀한 이유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도 치타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아마 타조도 우사인 볼트 보다 빠를 것입니다. 장미란 선수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합계 326kg을 들어 올렸습니다. 대단한 힘이지만 힘으로 하면 장미란 선수 보다 코끼리가 훨씬 강합니다. 사람은 힘이 좋아서 존귀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무슨 말이든지 한 번 들으면 기억하고 무슨 책이든지 한번 읽으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나이 들면 기억력이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80대 할머니들이 동창회를 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너희들 중에 교가 기억하는 사람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모두가 기억을 못하는데 A라는 할머니가 자기가 기억한다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모든 할머니들이 박수를 치고 A할머니를 칭찬했습니다. “대단하다. 대단해!” A할머니가 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자랑하듯이 교가를 부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신기하네. 한 번 불러 봐요”라고 하자 A할머니가 의기양양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할아버지가 놀라며 말했습니다. “이상하네, 나하고 당신하고 다른 학교를 나왔는데 왜 교가가 똑같지?”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존귀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존귀한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창 1:26,27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하찮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은 거룩함인데 사람은 범죄하여 거룩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습니다. 고후 4:4에 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롬 8:29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믿는 사람들 속에 오셨습니다. 내가 존귀한 것은 나의 인물이나 실력 그리고 배경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존귀한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 말씀으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1. 하나님은 함께 일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이 일체가 되신 것처럼 우리를 그분들의 교제와 사역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2. 하나님은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창조적인 일들을 하십니다.
3.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진화론은 허구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각기 종류대로 만드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물질적인 부분이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