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원, 백색 켄버스에 당당하게 떠있는 몇 개의 도형들, 선과 형으로 마무리 된 마름모꼴의 형태, 분방한 붓터치 그리고 적당한 여백으로 화면을 완결한 그의 작품은 왠지 싱거운 느낌 그럼에도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는 힘은 무엇일까. 가벼운 것 같지만 거대한 힘을 가진 작품이 서승원 작품의 매력이다.
최영욱의 작품의 매력은 은은한 색감과 부드러운 선들의 무게가 많은 작품들 속에서 압도할 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겹겹의 바탕칠 그리고 다양한 균열의 표현은 인간의 인연을 의미하지만 다양한 균열의 표현은 시간과 노동을 요하는 인내가 있어야만 창조되는 작품이다. 한국적인 소재와 동양적인 정신이 담겨있기에 빌게이츠 제단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윤용욱의 작품은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빛이 있음을 의미한다. 빛이 대상의 표면에 반사되고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에 의해서 어떠한 대상의 명암이 나타나는 현상이 그의 작업에 모티브가 되었다. 작업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뿔 (지름이1cm, 길이가1.7cm인 립스틱모양)들은 색과 크기, 형태가 모두 같은 플라스틱 뿔이다. 이를 평면에 나열시킨 후 뿔마다 빛을 받는 각도를 달리하여 빛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형상이 나타나도록 하였다.
서정민의 “개념적 평면”은 누군가의 글과 그림이었던 작품이 종이 뭉치가 된 뒤 절단되어 뭉치토막이라는 오브제가 된 것에서 정의 될 수 있다. 그는 뭉치토막들을 평면에 집합적 형식으로 부착함으로써 다양한 구조의 평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정창균의 작품소재는 살아있는 자연물과 책이다. 꽃과 과일은 동양에서 길상을 의미하며, 책은 늘 사람과 가까이하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창고이다. 그는 현대사회의 혼탁성에 대한 깨끗한 정신을 추구한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울로 사람의 심성과 살아가는 가치를 본래의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황유엽의 작품에는 '소'(牛)가 자주 등장한다. 오랜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특히 한국인에게는 소라고 하는 친근한 동반자, 주인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추종자가 생겼다. 그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몸매, 강인성과 과묵함, 온갖 수모를 감내해 온 질긴 근성과 표정 깊은 슬픈 큰 눈망울,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거치른 마티엘 위에 굵은 터치로 부각되어 나오는 일그러진 현상의 인물과 동물들이 하나의 친화관계를 이루면서 그의 작품은 진득한 삶의 애환을 들어낸다.
곽훈의 화면은 가마니를 깔아놓은 듯 거칠고 흙벽처럼 투박하다. 혹은 대빗으로 썰고 문지른 것 같은 마치 향토적이고 질그릇 같은 정설로 불러일으킨다. 또한 향토적인 이미지들이 주위로 번져나가 혼합된 표현은 한국의 농경사회의 남성적 느낌은 한국역사의 구체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적 연민의 감정으로 노래 부르고 있으며, 그러한 비극성 속에 흐르는 뜨거운 숨결을 기록하고 있는 듯 보인다.
김원(1912~1994) 화백은, 오로지 풍경화만 그린 화가이다. 우리나라 화가 중에서 가장 부지런히 발품을 팔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을 누볐다. 그가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은 설악산 풍경이다. 북한에 살 때는 금강산과 묘향산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단순화시키고 생략하고 통일된 색으로 화면을 채웠다. 거칠고 강하고 굵은 붓터치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풍경화이다.
박동진의 그림에 등장하는 달리는 말들은 긴장감과 박진감을 준다. 그것은 일상에의 탈출인지도 모른다. 화면에 말과 자연을 절묘하게 표현한 그의 초현실적인 구성은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 초점을 늦추지 않으려는 것 같은 끝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그 초점이란 시공간을 초월한 미지의 길을 향해 달리거나, 슬픔과 고독을 승화시키기 위해 시작도 끝도 없이 달려가는 인간 저변에 있는 잠재적 속성을 드러내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서기문 작품의 명제는 동행이다. ‘동행’ 시리즈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미술가와 인물들을 승용차에 함께 앉아있는 구도로 그린 그림으로, 이들 간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우정, 존경과 숭배, 애증과 결별을 담고 있다. 특히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다룬 작품들과 한국의 미술사 혹은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다룬 '동행’ 시리즈는 서기문이 자신의 회화관에 맞춰 앤디워홀의 팝아트가 불러일으킨 상업주의의 창궐에 대한 비판과는 달리, 유머러스하게 미술사를 꼬집은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