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15]작가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을 읽고
이 땅에 ‘빨치산의 딸’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알린 작가 정지아를 아시리라. 지난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출판계에 일약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가. 그녀의 처녀작품이 『빨치산의 딸 1, 2』(필맥, 2005년 1쇄, 2020년 5쇄, 각각 384쪽, 392쪽, 9500원)이다. 이 책은 1990년 실천문학사에서 3권으로 펴냈으나 국가보안법(이적표현물) 위반으로 판금조치를 당했고, 출판사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요 며칠, 참 힘들고 가슴 아프게 두 권을 완독했다. 솔직히 말하면, 읽지 않고 외면하고 싶었다. 때론 너무나 갑갑하고 화가 나 불특정다수를 향하여 끝도 없는 고함(웨장)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天刑’을 지고, 이를 극복해가며 26세의 작가가 살과 뼈를 도려내는 아픔으로 쓴, 실록實錄소설이기 때문이었다.
해방 직후, 전남지역, 특히 구례와 곡성 등의 무지랭이 농민들이 왜 지리산과 백운산, 백아산으로 들어가 이름없는 빨치산이 되었는지, 그야말로 적나라한 기록이 백일하에, 만천하에 드러난다. 바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전쟁 후에도 지리산을 집으로 삼은, 구빨치산이자 신빨치산이었다. 장장 7년, 지하활동을 하고자 위장자수를 한 ‘덕분’에 1965년 작가가 순전히 천우신조로 태어났다. 확실한 것은, 빨치산들은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인간적인 삶을 초월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초인超人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초인으로 만들었으며, 왜 초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시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으나,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초인'이 아닌 짐승이었다. 허나 '생각하는 짐승' 그것도 떼로 몰려다니는 떼짐승.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 김진계의 『조국』, 조정래의 『태백산맥』, 『해방전후사의 인식』, 『한국전쟁의 기원』, 에드가 스노의 『붉은 별』(모택동의 대장정 이야기), 『아리랑』(항일운동가 김산 이야기)도 읽었건만, 이 책만큼 가슴이 뛰고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 기록은 없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을, 그들은 너끈히 해냈다. 1권 <조국이 부르다>는 작가의 아버지, 2권 <지리산의 영웅들>은 어머니의 수기인 듯하다. 작가는 이 기록으로 자기 부모님의 ‘뿌리깊은 한’을 얼마만큼 ‘해방’시켜드렸을까? ‘글쟁이’ 고명딸 하나 정말 잘 낳아놓으셨다. 그 딸이 없었으면, 그리고 그 부모의 기록들이 남겨지지 않았다면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가슴이 얼마나 시렸을까, 생각만 해도 조마조마하다. 북리뷰는커녕 언감생심 독후감조차 쓸 수 없는 까닭을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의 기록’으로 점철돼 있기 때문이다. 민족분단의 구조적 모순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이라는 미명 아래 남한을 3년여 동안 점령한 미국이 또다른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소설에서도 작가의 '프롤로그'가 67쪽이나 되는 건, 도올 김용옥 선생이 각종 고전해설서 등을 펴내며 쓰는 장문의 프롤로그 말고는 보지 못했다. '복간본을 펴내며'와 '프롤로그'만 읽어도 좋겠다. 너무나 진솔하기에 감정이입이 금방 되므로.
그 고질적인 병폐는 오늘,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직시하자. 한미일군사동맹 강화의 배경이 무엇임을 알아야 한다. 진짜 바보 대통령을 들쑤셔 일본 총리와 폭탄주를 왜 먹게 했는지,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삐에로는 웃고 있다. 전주역 앞 도로변에 ‘국민의힘 당원 일동’이 내건 플래카드 내용을 보라. “친일 매국노보다 우리는 간첩이 더 무섭다”이다. 오 마이 갓! 이것을 보고 망연자실, 실소失笑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들은 자신의 당이 ‘토착왜구’‘친일 매국노’당黨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대구 어느 시장 아줌마가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현재의 국짐당)이에요”라던 동영상 인터뷰가 떠올랐다. 아무리 바보라도 알기는 알구나 싶어,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한 친구가 “해방 후 나라 팔아먹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기득권을 유지해온 방식”이라는 댓글을 보내왔다. 아무리 정신줄을 놓았다해도, 국민들은 정말 개돼지로 알지 않는 이상, 이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빨치산 7년여 세월 동안, 후방 지원없는 전선戰線에서 등장하는 실명實名의 수많은 혁명전사(이현상 김지회 등) 그리고 이름없이 숨져간 지리산속 무명無名의 영웅 7만여명, 민족의 이름으로 그들의 영혼 앞에 우리는 사죄해야 마땅할 일이다. 그리고 ‘자유自由’라는 미명 아래 아무 죄없이 학살당한 애꿎은 국민들은 또 무릇 기하이던가. 어찌하여 우리의 현대사는 이렇게 아픈 것인가? 어떤 씻김굿으로도 해원解冤이 될 수 없는 이 비극적 상황의 끝은 어디인가? 언제인가? 작가가 ‘해방일지’라는 소설로 아버지를 보내드렸듯, <어머니의 해방일지>로 어머니도 보내드리길 바라며, 잘 쓰는 후렴구 “아지 모게라(알지 못하겠다)”로 졸문을 마무리한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