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연히 블로그를 봤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쭉 읽었습니다. 펑펑 울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이 감동돼서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초심을 잃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왔던 것입니다. 나도 하남시 가정을 돕고 싶습니다. 방법 알려주세요.”
또 카네기 천사봉사단 회장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오늘 거래처와 술자리가 있거든요. 전부터 물밑작업을 해놨으니 곧 결실을 맺을 겁니다.”
고마운 사람이 참 많습니다.
무료급식을 하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자꾸 만납니다.
만약 이 일을 안 했으면 만날 수나 있었을까요?
평생 대화의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무료급식은 나에게 복이자, 삶의 원동력이며, SNS(사회관계망)가 됩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풍월”이란 단어를 검색해봤습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놂”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이런 천자문을 외우는 것도 모자라 시까지 자작(自作)할 수 있는 개가 있다는 말에 저절로 코웃음이 났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개가 한자(漢字)을 외우고, 시까지 읊을 수 있다는 소릴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옛날에는 부잣집 자제를 서당에 보내 성리학(性理學)을 가르쳤습니다.
귀한 양반집 도령을 혼자 보내지 않고 수하를 두어 따라다니게 했습니다.
종이나 노비를 딸려보내 수발을 들게 했습니다.
유생들이 서당에서 훈장님께 배우는 동안 종들은 마당에 풀썩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이 끝날 때까지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3년쯤 되니 유생을 따라다녔던 종의 입에서 흥얼흥얼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산은 산이오. 바람은 바람이로다.”
이런 식으로 시를 읊고 노는 게 아닙니까?
양반들은 노비를 개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소를 비롯한 가축은 재산으로 취급했지만 노비는 내가 죽여도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아주 하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개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자격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없었던 존재가 바로 김성민이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사람다워진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삶의 희망이 생겼고, 무료급식을 하게 됐으며,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시를 읊습니다.^^
교회 안에서 오랜 시간 사찰로 지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목사, 전도사는 아니었지만 사역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역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남몰래 설움도 많이 겪었고, 눈물도 많이 쏟았습니다.
자연히 눈치 백단이 됐고 아부도 떨 수 있습니다.
개과천선했습니다. 거침없어졌습니다.
과거의 경험들이 나에게 약이 됐습니다.
진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011년, 교회개척을 미련스럽게 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아는 부동산도 없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바보 같았습니다.
같은 시기 다른 목사님도 개척을 했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좋은 자리에 개척을 했습니다.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의 관록과 경륜과 연륜과 식견과 혜안이 느껴졌고,
나는 인생의 혈기나 객기, 무식함과 무모함으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니 배운 게 있습니다.
무식했고 무모했던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기 우직함 집념 투지 강한의지 열정 노력 승부수 성취욕 끝장 최선 꿈 희망 열망 근성 인내 역경 용기 정신력 배짱 자신감 자제력 투혼 투쟁심 전위 불굴 깡다구 강단 뚝심 오뚜기정신 칠전팔기정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욕"을 가지니 못할 게 없더군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김성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