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듭 났다면
신학생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1970년대는, 서울에서 택시를 타려면 합승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왕십리서 동대문으로 가기 위해 손님이 타고 오는 택시를 세우며 "동대문?" 하였더니 타라고 하였다. 뒷자리에 타고 보니 아뿔싸! 옆에 스님이 앉아있었다. 어떨 결에 "스님 반갑습니다. 합승하게 된 것이 참 영광입니다." 했다. 스님은 앞만 보고 앉아 "이것도 인연(因緣)이지요." 하고는 그대로 침묵해 버렸다.
스님은 나보다 20년 이상 연상으로 보였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스님 저는 기독교를 믿으며 앞으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하고 말을 건넸더니 앞 만 똑 바로 보며 "그래요. 종교는 모두가 다 같은 것이니 좋은 일을 많이 하십시오." 하고는 또 침묵해 버렸다. "스님은 불교의 종교 지도자시고 저는 앞으로 기독교 지도자인 목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합승하게 되었으니 참 좋은 인연인 것 같습니다. 스님 참 반갑습니다." 해보았다. 그러자 스님이 "전생에 많은 인연이 있어야 이생에서 옷깃을 한번 스친다고 하는데 아마 많은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하기에 말문을 열었나 하였더니 나를 귀찮다는 듯이 입을 닫아버렸다.
대화술이 부족한 나는 인연이란 말에 잠간 말문이 막혔으나 다시 "스님 우리가 그런 인연이 있었다면 서로 마음 편하게 대화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또 말을 걸었다. 침묵만 하려던 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그래요." 했을 뿐 그대로 법당의 부처님 같았다. "스님 외람 된 질문이지만 성불(成佛) 하셨습니까?" 하고 장난을 걸었다, 점잖은 어조로 “선생님 어찌 성불이 쉽겠습니까? 삼아승기 백대겁이나 노력해야 하니 성불은 참 어려운 거지요” 했다. (삼아승기 백대겁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이다. 백대겁이란 오랜 후에 알았지만 아승기는 대수를 외우고 있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승기는 아주 높은 大數다. 우리나라 대수의 단위는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이, 無量數로 표현한다. 그러니 3 아승기는 어마어마 數다. 불교에서 백대겁을 8000겁이라 하였다. 1 겁은 43억 2천만년이라고 하니 백대겁은 33조 5600억년이 되는 샘이다.) 나는 속으로 이제는 됐다. 하고는 "스님 저는 아직 신학생이지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스님이 되셔서 아직 성불도 못하셨다면 어떻게 중생제도를 하실 수 있습니까?" 하니 "그러게 말입니다."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하고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나의 고약한 심보가 그만 “스님 아직 성불을 못하셨다면 땡 중이시겠네요” 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화를 벌컥 내며 “젊은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 말버릇이 고약하구먼! 신학생이란 사람이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해” 하였다. 그래도 지지 않고 “스님 탈속을 하신 분이 그만한 일에 무슨 화를 내십니까? 아직 성불을 못하셨다니까 자기도 성불을 못하시고서 남에게 성불하라고 가르치는 스님 되셨으니 말이 안 되지요. 성불을 못 하셨으면 당연히 땡 중인데 땡 중이라고 했다고 화를 내십니까?" 하고 반격을 하였다. 스님은 화난 얼굴에 아랫입술을 물고 주먹으로 칠 자세였다. “스님 제 말에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아무리 화가 나도 탈속하신 분이 속세를 사는 젊은 사람에게 주먹으로 싸우셨어야 되겠습니까? 저는 구원을 받아 세상을 구원하려고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성불하기가 삼아승기 백대겁을 노력해야 할 만큼 어려우시면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바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했다. 어떻게 주먹으로 치지는 못하고 더욱 화가 나신 스님은 “운전수 양반 차 좀 세워주시오” 했다. 택시 기사분이 “스님이 좀 참으시죠. 곧 동대문서 젊은 양반 내려드리겠습니다. 젊은 양반 동대문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하며 차를 세웠다. 내리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기사님 성불은 스님도 어렵다고 하시는데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 스님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세요. 오늘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하는데 택시는 떠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젊은 열심으로 스님을 놀려준 통쾌한 일이었지만 이런 공격적인 전도가 스님과 택시 기사님을 예수 믿게 하였을까? 아니다 오히려 반기독교 인을 낳았을 뿐이다. 전도의 문을 막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심어주는 실수였을 뿐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전달 방법이 잘 못되면 아니함만 못하다. 우리의 공격적인 전도 방법보다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는 구도자의 예의와 교양을 갖추어서야 했을 것이다.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완악한 로마 장교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였다. 스님은 물론이고 모든 이교도들에게 공격적인 전도보다 먼저 따뜻한 사랑으로 내 신앙의 진리를 보여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이라면 스님에게 어떻게 하셨을까? 내가 진정 거듭 났다면 성불하지 못한 스님을 예의를 다해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기독교 진리를 보여주어서야 했다. 내가 거듭났다면 예의를 다해 남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야 할 것이다.
첫댓글 살롬!!!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간섭하심과 만져주심을 기대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