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옥 토마스 신부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코린토 4,6ㄴ-15 루카 6,1-5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의 일이다. 마침 금요일이었는데 오후가 되자 온 거리가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가 유다교 신자이고,
그래서 지금도 안식일을 지킨다.
해가 지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다음날 해가 질 때 하루가 끝나는 그들의 전통 관습에 따라
금요일 저녁에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느님께 바쳐진 날이고,
허용된 것이 아니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것이 안식일법이다.
금요일 저녁 호텔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몇 명 탔는데
그들은 우리 일행에게 “6층 좀 눌러주세요”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안식일법에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도 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란다. 당연한 일이다.
안식일법이 만들어질 때는 엘리베이터가 없었으니까.
오늘날에도 그들은 그렇게 철저하게 안식일법을 지키고 있었다.
율법을 지키려는 그들의 자세가 감탄스러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하고 묻는다. 율법을 법조문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하지만 율법을 지키려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세만큼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의정부교구 한만옥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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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코린토 4,6ㄴ-15 루카 6,1-5
루카 복음은 구원의 완성과 그 기쁨을 노래하는 복음입니다. 더 이상의 기다림도,
더 이상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신 주님을 맞이할 넉넉한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애써 가꾸어야 할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신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있으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 스며든 시간적 배경도 끝자락의 완성을 암시합니다.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비는 것은 추수할 때의 행동이지요. 대개 성경 안에서, 추수는 이른바 종말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과도기가 아니라 이제 다 이루어졌음을, 예전의 약속이 이제 다 이루어졌음을
‘추수’라는 이미지가 밝히 드러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도, 옳다 그르다 시시비비를 가릴 이유도,
좀 더 나은 내일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논박할 이유도 없습니다.
완성의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완성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많이 부족해 보이고, 아직 멀었다 싶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모두 부자고 성공하였으며, 그래서 값진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서로 위로하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행여 누가 배고플까, 행여 누가 울고 있을까, 그래서 행여 누구라도 완성의 시간에 누릴 기쁨의
잔치에서 소외될까 고민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입니다.
우리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배고프지 않게 우리를 먹여 주십니다. 그리고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뒷배가 아주 든든한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넉넉하여 나눌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멋입니다.
/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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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1코린토 4,6ㄴ-15 루카 6,1-5
가난한 이가 남의 밭에서 아직 추수하지 않은 곡식을 얼마간 잘라 먹는 것은 율법상 허용된
일입니다(신명 23,26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리사이들은 그것이 ‘안식일에 행한 노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한 명백한 규정이 오경의 율법에는 없으며,
바리사이 자신들이 지키던 구전 율법을 근거로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구전 율법을 집대성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서른아홉 가지 노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안식일에 꽃이나 열매를 잘라서는 안 된다거나 알곡 한 톨도 까부를 수 없다는
세부 규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확과 탈곡에 관한 이런 규정들은 본래 노동을 금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거룩한 빵을 합당한 절차를 통하여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에 이 거룩한 빵을 속인인 다윗과 그의 일행이 허기져 먹은 일이 있었는데(1사무 21,1-7 참조),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는 아무 비난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윗의 주님’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께 사람이 만든 안식일 규정들을 덧씌우고 속박하려 들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아집과 완고함을 짚어 깨우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경직된 사고와 잣대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옥죄고 단죄하는 마음으로는 주님의 길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길’(제1독서 참조)은, 비록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을지언정,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가까이에서 황금빛 밀밭을 자유로이 따라 걷는
그 삶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대구대교구 강수원 베드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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