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이라고 하면 좋은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어린아이 도덕 수준이라면 분명 나쁜 사람입니다. 도적이라면 일단 훔치는 일입니다. 훔친다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는 행위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인데 선한 일이 아니지요. 악하다고 말하기는 심할지 모르나 아무튼 좋은 행위는 아닙니다. 하기야 나라를 위해 적의 정보를 훔치는 일은 결코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 편이냐에 따라 평가는 다릅니다. 뭐라 하든 도적질 자체는 선한 행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있지요. ‘의적’(義賊) 말입니다. 올바른 도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요? 마치 ‘비 오는 달밤’처럼 말입니다.
우리 잘 아는 고전 ‘홍길동전’을 생각해봅니다. 부정축재한 고관대작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줍니다. 나쁜 일입니까, 좋은 일입니까? 여기서 대부분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않고 그의 행위에 대하여 가난한 백성 입자에서는 이 도적이 구원자입니다. 그러나 도적을 맞은 양반에게는 몹쓸 도적일 뿐입니다. 법질서를 훼손한 범죄인입니다. 백성의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법질서를 지키려면 공권력을 동원하여 붙잡아야 합니다. 백성은 누구의 편을 들까요? 이 도적을 숨겨줄까요, 고발할까요? 세상은 법으로만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희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법을 운용하기 나름입니다.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 운용하기 때문입니다. 장발장을 도둑으로 체포하여 감옥에 넣는 것이 법질서입니다. 법은 그렇게 운용됩니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할 줄 아는 판사라면 다르게 판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를 체포하는 경찰이 다르게 대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냉정한 현실이 그것을 용납해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경찰은 자신의 실적을 쌓아야 했을 것이고 판사는 공정한 판결을 우선해야 했을 것입니다. 법이란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피도 눈물도 없는 극약이 될 수도 있고 냉정한 현실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온천수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록 수천 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보석류이지만 그것 도적맞았다고 부자들이 죽을 지경이 되지는 않습니다. 얼마든지 예전처럼 화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사치품이지 생활의 필수품이 아닙니다. 그러니 잃고 나서도 얼마간 화는 날지언정 목숨이 오락가락하지는 않습니다. 한 마디로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돈이 몇 사람에게는 생활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과연 누구에게 필요한 물건이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사람은 필요만 채우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쌈질도 생기고 나아가 전쟁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좀 더 많이, 좀 더 편하게 만들자는 욕심으로 비롯됩니다.
도둑에게도 자존심이 있고 원칙이 있답니다. 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하기야 이야기니까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적이 달성되려면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전쟁과도 같은 일이지요. 실패하면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감옥행입니다. 그 불행을 피하려면 무조건 성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원칙을 찾고 자존심을 지키려 하겠습니까? 아무튼 과업(?)은 성공하였습니다. 약속한 돈을 분배하고 헤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아니랍니다. 더 큰 사업(?)을 추진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탈취한 돈을 자금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파커’는 그만 손 떼겠다고 합니다. 다른 4명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의 몫을 주고 그냥 보냅니까?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살해하려고 합니다. 파커가 쉽게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을 지경이 됩니다. 확인 사살하려던 녀석이 담력 부족으로 일부러 그랬는지 실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기 일보 직전 지나가던 농부의 가족에 의해 구사일생 살아납니다. 그리고 복수혈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의 계획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거대한 액수의 보석을 훔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만한 가치의 보석이 나타날 수 있는 지역이 어디고 어떤 부호가 지닐 가능성이 있는지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지역으로 잠입합니다. 부호를 상대하려니 부호 행세를 합니다. 지역을 대충 간파하는 부동산 소개업자를 찾아냅니다. ‘레슬리’라는 똘똘하고 야심찬 중년여성과 연결됩니다.
검색해보니 가짜이고, 가짜이지만 범상치 않습니다. 배짱도 있고 힘과 실력도 있습니다. 더구나 큰 부상을 입고도 복수심에 활력을 재생합니다. 그래서 야심만큼이나 위험도 감수하며 뒤쫓습니다. 도적놈의 도적질한 것을 빼앗자는 계획이구나, 알아챕니다. 그러면서 복수를 함께 하려는 것입니다. 대단하다 싶지요. 결국 모두 이루어냅니다. 실력파 도둑놈들에게 처절히 복수하고 그들이 도적질한 것을 빼앗아 옵니다. 시간이 흘러 잠잠해지고 약속한 배당금을 레슬리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준 농가에도 답례를 합니다. 과연 의적입니까? 영화 ‘파커’(Parker)를 보았습니다. 2013년 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