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회 빈첸시오 신부
연중 제23주일
이사야 35,4-7ㄴ 야고보 2,1-5 마르코 7,31-37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것이 정상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통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잘되리라 착각하며 산다. 소통은 서로 꾸준한
믿음의 신뢰와 타협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소중한 결과물이다. 소통에 대한 우화가 있다.
소와 사자는 서로 사랑을 하여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소와 사자를 아는 동물들은
둘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며 결혼을 반대하였다. 주변 동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소와 사자는 신혼의 달콤함을 갖고 살았다. 소는 자기가 좋아하는 풀 가운데 가장 맛있게 보이는
마른 풀을 뜯어다가 사자에게 주었다. 사자는 풀을 먹기 싫었지만, 소가 좋아하는 것이고
소가 갖다준 것이기에 매일 먹었다. 그리고 사자도 소를 위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를
잡아다가 소에게 주었다. 소도 사자가 좋아하는 것이니 먹기 싫었지만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와 사자의 집에는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소는 사자에게 왜 자기가 좋아하는
풀을 먹지 않느냐고 불만을, 사자도 소에게 왜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불만을 말했다. 이렇게 서로 투덜거리더니 결혼 초에는 잘 먹었던 것을 이제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주는 것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둘은 매일 싸우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소와 사자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서로 최선을 다했다. 소는 풀을 열심히 뜯어다가 사자에게, 사자도 고기를 열심히 잡아다가
소에게 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소와 사자는 한 가지가 빠졌다.
살면서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보았기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소는 풀을 먹어야 살고, 사자는 고기를 먹어야 산다는 것을 몰랐다. 서로의 소통이 없었다.
소와 사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나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투덜거리게 된다. 남편은 아내를 향해, 아내는 남편을 향해
서로 자기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상대를 인정해 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청각장애인을 치유하실 때 그에게
구체적 행동을 취하신 것은 장애인으로서의 아픈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에게 변화의 힘을 준 것이다. 가족 간의 아픔과 상처도 서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내가 상대방을 인정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소통의 첫 출발이다.
부부간에 서로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판단을 중지해야만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할 때 나 자신의 판단이 들어가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판단을 중지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에파타”로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듯,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 놓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겠다.
이것이 소통이 잘되는 방법을 찾는 길이다.
인천교구 김일회 빈첸시오 신부
2024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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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기 우르시노 신부
연중 제23주일
이사야 35,4-7ㄴ 야고보 2,1-5 마르코 7,31-37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합시다!
아기들이 말하는 것을 배우는 방법은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와 말투 패턴을 따라 하고,
자주 듣는 단어와 문구를 반복하는 법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즉 “엄마” 또는 “아빠”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듣는 아기는 결국 그 단어를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아이 때부터 산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면 아무리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동물들의 소리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만나시고, “에파타” “열려라!”(마르 7,34)하시며
막힌 그의 귀를 열리게 해 주시고, 묶인 그의 혀를 풀리게 해 주십니다. 이 치유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귀가 열리고 그다음 말을 하게 됩니다.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귀가 먼저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치유하신 순서는 귀가 먼저이고 그 다음 혀입니다.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귀가 입보다 먼저이고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먼저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듣지 못하면 제대로 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귀를 치유하시고 그 다음으로 혀를 치유하십니다.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마르 7,33).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귀먹은 사람입니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 더듬는 사람입니다.
바로 귀먹고 말 더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에파타”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이는 주님을 통해서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에 나오듯이,
구원의 하느님이 오실 때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이사 35,5)는 말씀이 실현되는 순간!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믿음을 키워 올바른 말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합시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주님 말씀을 가로막는 것들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음으로써
믿음을 키워 하느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귀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입으로는 긍정적이고 좋은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전주교구 김남기 우르시노 신부
2024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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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주 베드로 신부
사랑해(海)
연중 제23주일
이사야 35,4-7ㄴ 야고보 2,1-5 마르코 7,31-37
어느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 시간에 신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신자들이 한참 고민하자, 신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습니다. “그 바다는 바로 ‘썰렁해(海)’입니다.”
신부님께서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일까요?”
신자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답을 찾으려 애쓰자 신부님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바다는 바로 ‘사랑해(海)’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두의 마음이 항상 따뜻한 사랑의 바다 같기를 바란다며 강론을 마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한 자매님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남편이 고민하며 답을 하지 못하자, 자매님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이럴 때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요.”라고 했지요. 남편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만 “고마해”라고 외쳤답니다.
자매님이 진정으로 듣고 싶었던 말은 “사랑해”였는데 말이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 말을 잘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식이,
부부는 서로가, 친구나 동료들은 각자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말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지위나 재물 같은 외적인 요소를
활용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사람들 간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상대방의 말을 더 듣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마르 7,32)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신체적인 치유를 넘어,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귀먹음’과
‘말 더듬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치유를 받아야 할
귀먹은 이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 하거나, 자기도취에 빠져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어 모든 이의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이 기뻐할 일을 하며,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삶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말을 더욱 잘 듣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섬기며 모든 이의 종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은,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6)는
제1독서의 말씀처럼 나날이 새로워지는 삶이며 영적 세계에 눈을 뜨는 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를 섬기고, 기쁨을 나누며, 마음을 열어
서로 이해할 때, 그때에 비로소 우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고마해’가 아니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교구 박종주 베드로 신부
2024년 9월 8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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