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근교의 북한산이나 관악산을 올라보면 다양한 산세와 절경에 빠져 축복받은 서울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절로 생긴다. 거의 매주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지만 가끔은 ... 아마 한달에 한두번 정도이지 싶은데 서울을 벗어나서 조금 더 상쾌하고 조금 더 거칠음이 느껴지는 낯설은 산행이 그리워 진다. 지난 일요일은 (12월4일)오랜만에 H, J 선배님을 따라 경기도 포천군과 가평군 경계에 위치한 한북정맥의 한 봉우리인 강씨봉을(830M) 찾았다. 전날 내린 적지 않은 양의 눈으로 인해 설레는 맘이 더욱 커지고 동시에 갑자기 영하의 날씨로 떨어진 기온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눈덮힌 하얀 산에 들어 차가운 돌이 된들 어떻하리... 내가 좋아 찾은 산속에 들어 얼어 붙은 자연과 하나된들 어떻하리... 남들이 들으면 좀 섬찍한 소리지만 그 순감 만큼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리라" 는 생각으로 아침 6시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도봉산 전철역 앞에서 8시에 일행을 만나 조촐하게 아침을 먹고 미끄러운 지방도로를 비틀거리며 2시간여 운전을 하니 강씨봉으로 들어서는 일동 제일유황온천이 보인다. 오랜만에 만난 두분과 "황우석" 교수와 "PD 수첩" 사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2005년 송년 산행은 어디로 갈 것인지? 등등 지난 시간동안 즐거운 기억들을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10시 30분에 온천 주차장을 출발하여 도로 양 옆으로 간간히 마을이 보이는 시골길을 1시간 걸어들어가니 강씨봉 아래 등산로 초입인 청우농원이 나타난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어쩌면 무료해 보일 수 있는 시골 마을의 풍경이다. 서울에서는 정부의 "쌀 시장 개방"으로 시위가 반복 되고 있지만 추수가 끝난 시골 풍경은 겨울잠에 들어간 동물처럼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청우농원에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인 후 11시 45분 부터 산행 시작이다. 오른편에 작은 개울을 끼고 시작되는 초입 등산로가 비교적 편안해 보인다. 오랜 시간 비가 오지 않아 바짝 마른 개울과 이제 떨어질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그 위에서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그로인해 차가움을 위로하는 밝은 햇살이 내리 쬐이고 있다.
약 5 정도 걸어가니 좌우로 완만한 계곡길이 있고 가운데 능선으로 오르는 좁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아마도 이 좁은 능선길이 조금 더 빠를 것이고 오늘 처럼 맑은 날에는 능선으로 오르며 바라보는 조망의 즐거움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 그 길로 들어선다. 능선길은 가파른 오르막이 쉼없이 계속된다. 여름내 푸르름을 뽐내던.. 이제는 지치고 힘들어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낙엽들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그 오르막이 쉽없이 계속된다. 눈과 낙옆이 뒤섞인 그 오르막의 미끄러움을 상상해 보아라!! 잠시만 정신을 다른곳에 두어도 곡ㄹ프에서의 헛 스윙처럼 헛 발질을 하게된다. 그러나 계속되는 그 발걸음 아래서 밀리고 부딪히는 그 낙엽들은 계절이 바뀌면 푸르름을 돋아나게하는 거름이 될 것이고 얼어붙은 대지도 푸르름으로 뒤덮힐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 언덕을 오를때는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 한방울이 조금씩 베어나오지만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길에 잠시라도 쉴라치면 체온이 곧바로 떨어지고 잠깐 사이 손발에 냉기가 파고든다.
1시간 30분 정도 그렇게 계속 오르다 보니 오느새 한북정맥 능선의 768봉에 도달한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봉우리가 아마도 귀목봉일 것이고 그 아래쪽으로 운악산 정상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저 아래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작은 도시가 내려다 보인다. 시린손을 꺼내 몇장의 사진을 찍고 다시 발걸음을 강씨봉쪽으로 옮긴다. 이 길이 바로 한북정맥 능선 길이다. 눈으로 보이는 능선끝 왼편에 홀로 우뚝 솟아있는 것이 아마도 국망봉일 것이고 그보다 더 오른편에 웅장함을 자랑하며 그림같이 펼쳐진 눈덮힌 사면이 경기 제1봉인 화악산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오른쪽에는 명지 1봉과 2봉이 굳굳하게 버티며 "나 여기 있소" "어서 이리 오시오" 라고 외치며 서있는 듯하다. 뒤를 돌아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 끝자락에 웅장한 모습의 운악산이 바람을 막아주며 서있는 듯하다.
오후 2시 20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2시간 30분 만에 강씨봉 정산에 도착했다. 중간에 가짜 "강씨봉" 정상석이 있다. 관계기관의 업무착오 인지 아니면 다른 깊은뜻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근처가 포천군과 가평군의 경계여서 그런지 모르겠다. 한북정맥의 능선을 걷는 동안은 바람이 너무 차서 얼굴이 마비될 정도였는데 강씨봉 정상은... 사방으로 막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람 한조각 느껴지지 않는다. 가까운 곳에서 바람 소리만 거세게 들릴 뿐이다. 사방 천지 막힘 없는 그 강씨봉 정상에서 간단히 준비한 점심을 먹으며 한번은 화악산을 바라보고 한술 뜨고 또 한번은 운악산을 바라보고 다음에는 소주 한잔에 명지산을 바라보니 세상 이 보다 더 큰 황홀함을 어디서 느끼겠는가? 모든 삶에 나름대로의 굴곡이 있다. 계속되는 능선길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듯이 우리들 삶에도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는것이다. 산에서는 정상이라는(항상 그런거 아니고 큰 의미가 있는거 아니지만) 목표를 향해 굴곡을 반복하며 어찌하던 조금씩 올라가지만 우리 삶의 반복되는 굴곡은 부와 명예, 성공 그런거 아니고 그저 나이 들어가는 것, 인생의 종착역으로 다가서며 조금씩 알아가고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하산 시작이다. 하산 길은 채석장 방향이다 . 국망봉을 향해서 걷다가 왼편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길이다. 약 20분 정도 급경사가 계속되고 이후 약 1시간 정도면 편편한 임로가 나온다. 마을까지 내려와 국도를 따라 멀리 노을이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산행의 아쉬움과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출발지에 도착하니 4시 50분이다. 또 한번의 산행이 끝났다. 예상보다 날이 추웠고 길도 미끄러웠지만 나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오래지않아 이곳 한북 정맥을 다시 찾으리라는... 그래서 끝없이 길게 보이는 그 능선길을 하염없이 걷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돌아간다. 그날은 시간이 부족하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하산후 바로 돌아왔지만 강씨봉 입구의 제일 유황 온천이 그 지역 유일한 진짜 온천이라하고 또 주변에 유명한 이동 갈비집도 많다. 하산 후 이동갈비와... 설명이 필요없는 포천 막걸리 한잔하고 온천에서 몸을 녹이며 산행의 피로를 풀어보면 또 다른 천국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