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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갈계골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갈계골
베르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Nabucco 중에서) / 교회음악이야기 808번 /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GKNE/808
교회이야기 864번 / 500년 가까이 늘 말없이 변함없이 갈계골의 모든 삶의 내력들을 지켜봐 오고 있는 동구나무다.
올들어 두번째로 눈이 오던 날도 동구나무는 말없이 하염없이 눈길을 맞고만 있다. 춥고 무거웠을텐데
나도 이 동구나무이고 싶은 시간이다. 이정도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말이 500년이지.... 살아보라. / 101208 수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9deQ/864
이제서야
하루 일과를 마쳐가는 시간이다.
지금 시간 12월 14일(화) 이른 1시 47분이다.
오늘 충북 청원군 덕촌교회에서 진행된 농목총회와
내일, 아니 오늘 대학원에서 진행될 농목세미나가 궁금한 마음이 갑자기 몰려온다.
분명코 덕촌에서 총회를 마친 뒤 모두가 서울로 상경하고 지금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깊은 토론을 진행할 것이란 생각에 전화를 했다.
막역한 후배인 안재학목사에게 핸드폰을 울려봤다.
예상대로 토론 중이다.
허리통증이 조금 덜하기도하고
내일 대학원 모임엔 의미성이 있기에
꼭 갔으면 하는 마음이 불일듯이 일어난다.
후배는 여전히
몸을 먼저 챙기라고 한다.
올 수 있으면 오면 좋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어제, 아니 주일 저녁에
재학목사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봤느냐고 한다.
그때서야 후배의 문자에 가슴찡하며 박장대소했던 기억에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확인을 했다.
오늘 CBS 방송때문에 정신없이 왔다갔다하고
방송 후부터는 전화쇄도에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 확인을 전혀 못했다.
방금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몇가지 의미있는 문자들이 와 있다.
내 삶의 단편이기에
이곳에 본인들 양해없이
공개해서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래에 공개를 해 둔다.
목적은 단 한가지다.
서로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
기장농목카페/ 국제연대활동방 70번 / 이번 11월 22일(월)-26일(금) 4박 5일간 스리랑카에서 제2차 아시아기독교생명농업
포럼이 개최되었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10개국에서 35명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5명이
참석했다. 그 중 안목사는 기장농목의 대표로 파견되어 발제를 했다. 멋있는 후배다.http://cafe.daum.net/prokfm/HtSS/70
주변교회이야기 239번 / 안재학목사가 부임해서 이듬해 곧바로 만든 말목재 사랑방 / 운봉제일교회에 시무하시는 한남호목사님이
기초를 다져주시고 만들어준 작품이다. 갈계교회가 청국장을 하기에 이런 집을 반드시 지어야 한다고 늘 한목사님은 강조한다.
내가 왜 모르리요. 하지만 돈보다는 터가 빈약하기에 아직 이 소망을 현실적으로 일궈가지 못해 아쉽다. 이권사님터가 매입되면
반드시 할 것이다.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FaKR/239
---------- 아 래 ----------
문자1.안재학목사
형님, 내일 함께
못간다는 소식들었습니다.
허리에 통증이 온다는 글도 읽었네요.
형!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하세요.
체력이 나정도는 되야 그래도 무리없습니다.
내일 병원 꼭 가 보시고
하늘음성도 좋지만 장수하셔야
그 뜻을 이루지요.
잘다녀오겠습니다.
12/12 주일, 늦은 9시 48분/ 안재학목사
각주
재학목사는 목사가 되려고 건대 철학과를 왔다.
IVF에 들어왔기에 5학년이였던 내가 당시 92학번을 지도하게 되어
재학목사 리더로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렇게
한길을 함께 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나에게 가장 깊이
자존심 상할 정도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때그때 힘들고 기분이 상하지만 그럼에도
후배의 조언을 깊이 새기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석천교회에서 나보다 훨씬 규모가 크게
보란듯이 농촌현장을 일궈가고 있는 귀한 후배다.
나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어까지 자유자재라
나에게 잔잔한 컴플렉스를 안겨주는 후배기도하다.
최근엔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기구인 아시아교회협의회 차원에서 진행된
스리랑카 생명농업 포럼에 10개국 35명이 참석한 대회에
국내 5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 교단 대표로 참석도 하고
발제까지 했다. 발제 영문원본은 농목카페에 전문이 실려져 있다.
늘 카페도 둘러보기에
내가 한줄메모장에 쓴 글도 보고
허리통증으로 농목총회와 세미나에 가기 힘들다는
상황을 총무님과 정책실장님께만 말씀드렸는데
두 사람 중 한 분과도 통화를
한 이후 보낸 문자같다.
엄밀히보면 이번 CBS 방송은
재학목사때문에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청출어람을 경험케하는 후배가 더욱 멋있게 보이는 시간이다.
기장농목카페 / 생활나눔방 462번/ 기장 젊은 목회자 모임(죽림교회) / 100124 주일 늦은 10시 전북동노회 전주외곽
한일장신대 근처에 있는 죽림교회에서 기장 젊은 목회자 모임이 김경재교수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서울,
경기, 충청도, 광주, 전주, 제주도에서 먼길마다치 않고 달려온 교수님의 후학들이다. 앞으로 이들이 한국교계를
어떻게 이끌어갈 지 보라. 이 흙집도 교수님 바로 오른쪽 옆에 있는 운봉제일교회 한남호목사님의 작품이다.
http://cafe.daum.net/prokfm/6Dw2/462
문자2. 김은호목사
오늘 모임 잊지 않으셨죠.
수도권팀은 좀 늦습니다. ㅋㅋㅋ
김은호목사, 12/13, 월, 9시 33분
각주
오늘 충북 청원군 덕촌교회에서 진행되는
기장농목총회 전 이른 11시부터 대학원 우리 신학회팀들이
미리 모여 은퇴하신 노교수님인 김경재교수님 기념문집에 대한
논의를 하려고 했다.
김경재교수님이 보여주신 우리신학회에 대한 관심도 있고
노교수님의 삶의 진정성을 후대에게도 제대로 전달해주고 싶은
교수님의 후학들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서
선배 노교수님의 삶을 오롯하게 재조명하고 싶어서다.
지난 우리 신학회 옛님맞이(홈커밍데이) 행사 뒷풀이 속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구체적으로 이날 사전 모임을 통해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모임을 기획했다.
하지만 내가 허리통증으로 가지 못하게 되어 못내 아쉽다.
김경재교수님은 대학원 내 논문지도교수님이기도 하셨다.
이 시대 이런 노교수님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이런 분의 삶은 후학들에게 후진들에게 열심히 알려내야 한다.
그게 한국신학계가 살 길이라 나는 생각한다.
대학원 시절 함께 했던
우리신학회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이 일을 만들어 나갈 결심을 하고 판을 짜고 있음이
가슴 뿌듯함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논의결과가 궁금해진다.
주변교회이야기 33번 / 여태권목사님, 오마이뉴스 기사 /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FaKR/33
아영9교회이야기 124번 / 여목사 목사 안수식 때 가족들 / 2009년 3월 전북농노회 정기노회에서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ArLY/124
기장농목카페 / 교회와 현장이야기 345번 / 소죽 삶으시는 여목사님과 사모님 / 2010.4.18. 목
http://cafe.daum.net/prokfm/6XK7/345
문자3. 여상범목사
부흥회 회계보고 3,325,000원
지출 및 상세한 내역은 모임시 보고드리겠습니다.
11시 01분, 여상범목사
각주
연합회 회계를 맡고 있는
여상범목사에게도 문자가 와 있다.
이번 부흥회 결산보고를 문자로 보내줬다.
여상범목사, 아버님이 여태권목사님이다.
농목에서 주줏돌인 분이다.
시골목회의 산증인이기도 한 이 시대 귀한 분이다.
어려서부터 아버님의 삶을 봐 왔기에 이곳 지리산자락에 부임했지만
뭘 하기보다는 관망하고 있는 중인 듯한 느낌을 많이 받고 있어
늘 아쉬운 생각으로 후배목사를 바라보고만 있는 중이다.
마음의 결심을 하게되면
여목사를 통해서도 많은 일들이
분명코 일어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번 경로대학에서 처음으로 본인의 달란트인
풍물지도를 하게 되어 있다.
처음이라 미미할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풍물을 통해 새로운 길들이
지역사회와 본인에게 열릴 것을 기도하며 관망하고 있다.
여목사가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받게 될 지 기대된다.
더욱이 한 지역에 있기에 늘 가까이서
볼 수 있게되어 감사하다.
이 정도 결산이면 평균작은 된 셈이다.
서재일목사님이 유별나게 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 결산이 나왔다는 것은 목사님의 능력이요
우리 지역 교우들의 힘이라고 본다.
헌금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한다.
하지만 적어도 집사이상의 직분을 받은
제직자라면 연합회가 쓰게되는 돈의 씀씀이까지를 생각해서
헌금을 하는 훈련의 과정은 필히 거쳐가야 한다고 본다.
초신자들처럼 헌금해서는 안된다.
부흥회 헌금이 절대 개인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부흥회 모든 헌금은 경로대학과 장학사업으로 사용된다.
하기에 그 씀씀이 까지를 고려해서 각 교회 제직자들이 헌금을 하게 해야한다.
그렇게 할 때 실제적으로 지역교회가 지역을 위해서 할 말이 있는 법이다.
아직 이 부분까지 가려면 멀었다는 느낌이 든다. 연합사업이 잘 될수록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함을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작년 8월 평택교회 청년들이 와서 교회외벽과 벽화를 그려주던 그 기간
월산교회에서 여상범목사 담임목사 취임식이 있었다. 내가 시찰서기기에
성경을 읽어야했다. 그럼에도 현장에 올인하다보니 깜빡 잊고 가지 못했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나중에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럴 수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던 경험이 있다.
여상범목사는 목회를 잘 할 것이다.
아버님인 여목사님의 삶의 일대기는
수필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한다.
열악한 텃밭을 일궈낸 이 시대의 참된 사도로 나는 생각한다.
마을이야기 732번 / 박윤자집사님 어머님인 수원댁님네 김장담던날, 박피디 공식 첫 취재일정 첫날 / 101116 화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B5Rd/732
문자4. 박윤자집사
오늘 방송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대됩니다.
박윤자집사. 12/13, 월, 11시 14분
각주
이번 취재일정 기간이 묘하게도 김장철이 겹치게 되었다.
늘 마을 대소사를 찾아가기에 김장철 분위기를 감잡고 있다.
박피디랑 일정을 조율하면서 최권사님댁과 수원댁님네와
내촌댁님네서 김장시간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분들 가정에서 김장을 할 때 분위기가 좋기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나와 교회의 일에 늘 협조적이기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을 통해서 이뤄짐을 실감하는 현장이기도하다.
그 중에서도 수원댁님네서 가장 많은 김장을 하기에
최권사님은 교우기에 빠져도 되겠고 수원댁님네랑 내촌댁님네서
김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화요일이
수원댁님네고 다음날이 내촌댁님네로 일정이 잡혔다.
감사했다.
박피디랑 연락해서
일부러 이날 일정때문에
하루 앞당겨 갈계로 와 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박윤자집사님께도 연락을 했었다.
작년 김장담을 때 분위기가 참 좋았다.
모든 사위들까지 와서는
숯불구이도하고 술한잔씩 대접도하고
그런데 이번엔 사정들때문에 집사님과
여동생들만 온다는게 아닌가?
아쉬웠지만 할 수 없다.
오늘 방송을 보니 박집사님이 많이 나왔다.
집사님이 서울로 가신 뒤 교회목사님께까지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보려고 준비했다니 반갑다.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내일 당장 전화해 봐야겠다.
내 짐작으로는 발이 넓기에 교우들과 함께 봤을 것 같다.
아님 목사님까지 함께 봤을 수도 있겠다.
늘 교회를 위해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애써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쉽지 않을텐데.....
교회사진 889번 / 내촌댁님네 김장담던 날 마을분들이 담은 김치를 주자 촬영에도 불구하고 넙죽 받아 드신다.
박피디의 순수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였다. 박피디가 이 시대의 정일성촬영감독이기를 바란다. 101117 수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9deh/889
문자5. 박유진 PD
참 내일 2부에
감따고 감식초 포장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박집사님이나 유권사님 출연예정....
비교인 마을분들은 주로 오늘 나오시고요.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홍보해주시니 긴장 두뱁니다. ㅋ
박유진 12/13, 월, 11시 52분
각주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주의 천사를 보내주셨을까?
아니다. 내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주의천사가 아니겠는가?
CBS 방송에 2부작으로 갈계현장과 나의 목회하는 일상의 모습이 방송되다니
이렇게 감사하고 놀라울 때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더욱 5년 5개월의
갈계여정을 돌아보게되는 귀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뒤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의 길을 인도하심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하다.
박피디의 삶의 내력이
사회성이 강하다보니 10년 넘는 터울임에도
쉽게 시간적인 간극을 뛰어넘어 많은 깊은 대화도
촬영 중에 하면서 갈계현장의 내 삶의 모습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들도
선물로 주어지게 되어 감사했다.
하필이면 지금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분을 만나게 해 주실까?
어렵고 척박한 갈계현장을 5년 5개월간
지키며 일궈가느라 수고했다고, 앞으로 이곳에서
더 많은 일을 감당해야하기에 지치지 말라고 나에게
보내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나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 부분은 순전히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다.
나의 이 느낌
이 신앙고백이 맞을 것 같은 느낌이
시간이 갈수록 더 진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경험하는 시간이기도하다.
박피디에게 뭐라 감사를 표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은총이요, 선물이다.
그저 묵묵히 지금껏 해 왔듯이 변함없이 이 현장을
지켜가고 일궈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생활이야기 231번 / 내년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예행연습도 할겸 힘겨운 중에도 지리산자락을 지켜가는 사람들도
만날겸해서 선배님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충청도 예산 깊은골에서 예동교회라는 이 시대 새로운 공동체를
건강하게 이끌어 가고 있는 귀한 선배다. 늘 말없이 사람들에게 많은 힘과 자기발견을 일으켜 주고 있는 선배다.
첫번째 휴식처인 바래봉 물줄기가 모인 옥계저수지 앞에서 쉬어갈 때 신발끈을 묶으며 마음을 다지고 있다.
내가 늘 좋아하는 백두대간 주능선인 고남산을 배경으로 담아봤다. 멋있는 선배, 나도 선배를 따르고 싶다./ 101206 월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GLml/231
문자6. 윤병민목사
<총명> <열정> <정성>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제일은 <정성>이라.
1/18. 늦은 8시 30분 윤병민목사
각주
이 문자메시지는 시기가 한참 지났다.
그럼에도 핸드폰에 온 문자를 정리할 시간이 이때 외엔 없을 것 같다.
선배님이 1월에 보낸 이 문자를 늘 의미심장하게 생각하기에
핸드폰에서 삭제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자가 왔던 상황이 있었다.
그때도 무슨 모임 뒤에 깊은 토론시간이 있었다.
그 토론을 마친 뒤에 나에게 온 문자다.
그때 많은 힘이 되었던 문자였다.
그때 구체적인 상황을 잊어서 아쉽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비유적으로 활용한 문자다.
나의 그때 스타일이 <정성>이 대단함을 비유적으로 빗대어
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보내주신
문자였음은 내가 기억하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그때 많은 힘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명성교회 다닐 시절
여름이나 겨울에 수련회를 가면
날밤을 새서라도 그때 온 대학부 후배들에게
편지를 하나하나 적어 쪽지를 건내줬던
나의 지난 삶의 세월들이 있다.
하지만 운동이란 개념이 나에게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이 삶의 흔적을 복원시키지 못하고 있어
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문득 선배님의 짧은 문자를 정리하려니
그 시절이 많이 추억된다.
교회이야기 864번 / 올들어 두번째로 눈이 오던 날 눈쌓인 교회 종탑 / http://cafe.daum.net/galgeygolstory/9deQ/864
음악에 대해서만 한마디하고 글을 마치련다.
베르디의 이 음악은 교회를 다닌 대학시절부터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신앙이 없었던 시절엔 별의미가 없었다.
특별히 대학원시절에 우연한 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대학원시절 선배지만
나이가 한 살 어려 나에게 늘 존칭을 사용했던 한 후배가 있었다.
지금은 대구로 내려와 목회를 하고 있다.
그 후배는 연세대 신학과를 나오고
대학원을 나보다 1년 빨리 들어왔다.
생활관에서 우연히 음악을 듣게되는 시간이 있었다.
후배의 방이였던 것 같다. 같은 학회라 늘 자주갔던 방이다.
그런데 후배는 늘 음악을 즐겨듣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음악들에 늘 심취할 뿐만 아니라
그 음악의 배경들을 모조리 알기도하고
선율까지도 알고 있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었다.
어느날 내가 후배의 생활방을 갔을 때도
후배는 이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귀에 익숙한 것이라
좋다는 느낌으로 관심을 가지고 물었더니 후배는 음악을 듣다가
베르디의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예요"라면서 음악의 배경사를
막힘없이 안내해 주는게 아닌가?
더 관심을 가지자
아예 그 테이프를 나에게
선물로 주는게 아닌가?
아까울텐데, 자기 집에 또 있다면서....
내가 그 상황이였다면 절대 주지 않았을텐데...
그 사건 이후 나는
베르디의 이 음악을 잊을 수가 없다.
이집트의 400년 넘는 노예시절과 40년의 광야시절의 애닯은
히브리인들의 삶의 애환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음악 자체의 역사와 의미도 있지만 뭣보다 대학원시절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갔던
그 후배의 모습이 있기에
더욱 이 음악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배는 당시 세계신학계의 주류들의 신학사상
세계사회학계의 주류들의 이론들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학회모임에서 논하던 모습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이 거침없이 꿰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는
이렇게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짐에 더욱 놀랐던
기억은 내 일생에서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언제 봤는지는 모르지만
2차대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 기억난다.
독일이 주무대였던 것 같다.
독일 점령지에서 일어났던 사건인 듯하다.
점령지에 와서 포로들을 수감했던 곳에서 저녁에
독일장교들이 모여 음악회가 진행되었다.
그때 수감자들이 그날
음악회 순서를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연합군에 속했던 포로가 되었던 수감자들이
그 음악의 높낮이를 이용해서 포로지에서 탈출하려고
계획을 하고 결국은 성공한 대목이다.
그 영화제목을 알면
더 깊이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텐데....
그 대목을 기억할 때면 언제나 유럽인들의 수준이
다름을 늘 생각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지금도
더욱이 이명박 현 행정부를 보내면서
국내 수준은 바닥을 긴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김대중 노무현시절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그 음악을 알고 있으며
그 음악의 높낮이까지 알고 그때를 맞춰
수용소를 폭파해서 장교들이 있는 곳엔 폭음이
음악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탈출할 계획을 했겠는가?
어떻게 그런 대목으로 영화 한 장면을 구상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판소리를 얼마나 알던가?
춘향가 한 대목도 제대로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 그 양반들은 자신의 문화 속에서 발달된
음악들을 잘 알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여줬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말을 하려면 한도끝도 없겠다.
그만하자.
현실 국내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
이번 국회 예산안 날치기통과 내용들이
지금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지 않는가?
공영방송에서 전혀 알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재정이 한나라당 당비정도로 생각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천박한 행정부를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우리가 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 당해봐야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히브리인들이 400년을 넘게
이집트의 폭압 속에서도 깨닫지 못했듯이 말이다.
처절하게 당하더라도 제발 제 정신으로
일어섰음 좋겠다.
제발 제대로 시대를 읽고
사람을 가려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현 행정부 같은 님들을 뽑을 것인가?
조금만 이미지 조작을 하면 금새 돌변하는게
현실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천안함은 말할 것도 없고
연평도 사건도 그 단적인 한 사건이다.
전투기 폭격한다고 제발 미친 짓하지 말라.
평양에 전투기 폭격해보라. 누가 더 손해볼 것이 안보이는가?
그런 작자가 국방부 장관이라니 기막힌 현실이다.
그 사람을 우리가 뽑았음을 분명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노무현의 죽음
우리가 아니 내가 한짓들이다.
제발 남핑계대지 마라!!!
제발 다음 대선과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원선거에서는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욱 냉정하게 사람을
지도자를 뽑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지리산 자락 깊은 골에서
목회하는 시골목사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왜 그렇게 모른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또 갑자기 속이 뒤집어 지려한다.
제발 그만두라!!!
Please. Stop!!!
이건 아니다.
목회.
정치얘기말라.
정치가 뭔데, 목회가 뭔데.....
제발, 정신들 차렸으면 좋겠다.
이 대목에서 이번 서재일목사님의 고백 한 대목이 생각난다.
척박했던 원주영강교회를 일궈세워가는 초기과정의 경험담이였다.
대학원생과 유치원생의 대화인데 대학원생인 내가 참아야지라는 고백이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아픈 상처로 인해 대표기도를 교우들에게 시키지 않는단다.
가슴 미어지는 고백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제발 뭘 알고 말했으면 좋겠다.
이번 4대강 순례기도 낙동강 구간을 갔을 때
이틀째 이 후배를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여전히 변함없이 주어진 현장에서 열심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그때 사진을 아직 정리하지 못해서 그 후배 모습을
이곳에 공개할 수 없어 아쉽다.
그 후배랑 하루를 보내면서
나눴던 대화들 중에서도 내가 귀담아 들었던
말들이 많이 있다.
메모한 쪽지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내 주변에 이렇게 진실되게 살아가는
지인들이 많음에 더욱
감사한 시간들이다.
더욱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갈계현장을
장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변함없이 일궈가고 싶다.
주의 은총이
늘 함께 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 숨! 채! 이! 오!!!
글을 마치니
이른 5시 38분이 지나고 있다.
이 글을 정리하는데만 4시간이 걸린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