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來日이다.】
오늘 하루를 사는 게 힘이 들 때 이 말을 떠올립니다.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져 개미보다 더 작아진 나를 이끌고
距離(거리)를 헤맬 때 문득 이 말을 떠올립니다.
깊은 밤, 하루 종일 밥 세끼를 먹은 일 외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지 못했다고 여겨질 때 이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부끄럽습니다.
내가 이렇게 不誠實(불성실)하게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懇切(간절)한 來日'이라는 생각을 하면
오직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내가 오늘을 산다고 해서 오늘이 나의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늘을 산다고 해서 오늘 하루를
確實(확실)히 所有(소유)한 것 같지만 그건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共有(공유)한 채 한 조각 빵처럼
서로 나누고 쪼개어 分配(분배)받은 것이며, 어제 죽은 이들이
그나마 채 먹지도 못하고 내게 알뜰히 남겨주고 간 것입니다.
이 얼마나 所重(소중)하고 貴(귀)한 오늘입니까.
어제 죽은 이가 내게 주고 간 이 하루를 感謝(감사)하게 생각하고
瞬間(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오늘 하루 속에 나의 인생 전부가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이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미워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간절히 祈禱(기도)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들의 기도를 잘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이들은 엄마의 오늘을,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이들은 아빠의 오늘을, 남편과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은
그 男便(남편)과 아들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오늘이라고 해서 나의 것이 아닙니다.
어제 죽은 이들의 高貴(고귀)한 膳物(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또 나누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來日(내일)입니다.
누구의 詩(시)인지 모르지만 이 말을 다시 한번 조용히 읽어봅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입니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힙니다.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이며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웁니다.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는 넘침을 배웁니다.
스스로 信賴(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의 좋은 생각이
우리 삶을 支撐(지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정호승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