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이라는 것
5월 12일 일요일.
아침 일찍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를 데리고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고 삼 입시생인데
오락실을 드나드는 데
취미를 붙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머니의 하소연에
얼굴을 들 낯이 없었던지
그 아이는 고개가 땅에
붙을 만큼 떨어뜨리고
있는 아이를 보더니
양 선생님은
내쪽으로 얼굴을 돌려
한번 빙긋 웃어보였습니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자꾸
오락실 쪽으로 쏠린다며
계면쩍어했습니다.
"안경도 쓰셨는데
전자파 때문에 상하는
눈을 생각해서라도
오락실은 좀
삼가시면 좋겠는데요.
양 선생님은
농담처럼 한 마디 하시고,
애마의 목을 자른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습관을 고치려면
그 정도의 각오와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함께.
아이와 어머니를 보내고 난 후
양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강 기자! 습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아요?
그걸 떨어내자면
보통 노력으로는 어려워요.
거머리보다
더 지독하다니까요''
양 선생님의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려나왔습니다.
하동에
어떤 중년의 남자가
아들 둘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큰아이가
공부는 아예 접어둔 채
이리저리 방황하기만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사님, 직업이 됩니까?" _
''내놓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만,
보살님께 뭐
둘러댈 일이 있겠습니까.
이미 다 아시고 물으실 테지요.
개를.. 도살합니다."
"저런, 처사님,
어찌 개를 잡으십니까.
처사님은 전생에
스님이셨던 분인데
어찌
파는 일도 아니고
잡는 일을 직접.."
그이는 불심이
돈독한 불자였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가장은 못 되었습니다.
직장은 아예 걷어치우고
넉넉치 못한 살림을 쪼개서라도
경전이나 불서를 찍어
사찰마다 나눠주는
보람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살림이 어려운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마음 속에 심을 수 있다면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였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도
그이는 출가를 하고 싶은
소망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것 역시
그이의 전생이
출가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이는 우연히
큰아들의 일기장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집은 늘
산 밑에 있어야 되는 것이며,
왜 우리집은 밀가루가
쌀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이는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일기장을 보고 난 후
그이는 출가하겠다는
생각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불경을
보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집안 살림을 일으키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장의 끼닛거리를 걱정하게
될 정도로 살림이 어려워지자
그이는 그토록 아끼던
개를 팔러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도살장에 가게 되었는데
굉장한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이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개의 목을
내려치던 끔찍한 장면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적잖이 고민했습니다.
살생을 금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못할 짓이었지만
애써 아들의 일기장을 떠
올리며 마음의 작정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개를 제 손으로
죽이고나서 한 달 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그 끔찍한 모습이
눈앞에 어른대서요
부처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 손으로 개를 죽였습니다.
숱하게 참회도 했 습니다.
그런데 삼년이 지난 지금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당연히 죽이게 되는 겁니다.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못 죽이느냐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예요.
돈은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습니다.
산 밑의 집에서
밀가루를 밥 삼아 먹을 때는
아이들이 착하고 공부도
잘 했는데 요즘은 아닙니다.
돈이 쌓이고,
밀가루가 쌀이 되고,
산 밑의 집이
저택이 되는 사이
아이들은 이미
삐뚜루 가고 있었습니다."
양 선생님은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번 되는 식으로
몸에 붙은 습관이
곧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고 하셨습 니다.
같은 생애에서 뿐만 아니라
전생과 현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양 선생님은
전생의 습이
현세에까지 연결되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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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형이는 초등학생입니다.
병원에서 신장이
나쁘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하여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어머니, 아버지가
양 선생님을 찾아
거창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양 선생님은
이 야기를 듣자마자
철형이는 건강하니까
병원에서
퇴원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두 분 아드님은
전생에 수행자였습니다.
그 아이는 절에 가면
아주 좋아할 것이고
법당에서 절도 잘할 겁니다.
병원에서는
신장병이라고 했다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전생에
수행을 했던 습 때문에
육신이 조금
고통을 받는 것 뿐입니다.
저한테 한 번 데리고 오세요''
양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자
양 선생님을 한 번 본 적도 없는
아이가 깨끗하게 하고 가야 한다며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는 등
야단이더라고 합니다.
거창에 온 철영이는
한 쪽 손목에 단주를 찬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철형이, 어디 아퍼?''
''안 아파요"
''보살님이 보기에도
하나도 안 아픈 것 같구나"
"보살님! 전 안 아파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뿐이에요."
''너, 단주 같은 거 하면 좋으니?"
''좋아요? "
''절에 가면 좋더냐?"
''편안해요"
''보살님 보니까 좋으냐?"
''예''
"왜 좋으니?"
''몰라요. 그냥 좋아요''
철형이는 전생부터 수행을 통해
자신을 많이 닦은 아이였습니다
대개 수행이라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기 마련이어서
그 습이 남아 다음 생에서도
다른 편안한 길이 있어도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철형이 또래의 민수는 어려서부터
피부가 가려워
긁어대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려운지
참지를 못하고 긁어대니
살갗이 붓고,피가 쏟아져
딱지가 덕지 덕지
앉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지경이 되어도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아도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있습니다.
민수가
어머니와 함께 왔을 때
양 선생님은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민수는 전생에 외국에서
수행을 하던 아입니다.
가시덤불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참선만 하던 수행자였어요.
민수를 가졌을 때 음식을
거의 못 드시다시피 했지요?"
''예. 음료수밖에 못 마실
정도로 입덧이 심했어요."
''그게 입덧이
심해서가 아니고요.
민수가 먹는 것조차
거의 끊다시피 하며
워낙 철저하게 수행하던
수행자였기 때문에
그런 아이를 가지게 되니까
음식을 못 드신 겁니다."
''정말 그런 모양입니다."
"민수는 금새 낫기 힘듭니다.
몸을 혹사해 가면서
철저하게 수행을 했기 때문에
그 습이 쉽게
떨어지지를 않아요.
민수, 보살님 몇 번 더 만나자."
마찬가지로 전생의 삶이
수행자였던 한 아이는
네 살이 되도록
말문을 열지 않고,
엄마 아닌 다른 여자가
안을라치면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댔습니다.
그 아이는 묵언 수련을
많이 했던 스님으로
여자를 멀리하라는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던 습 때문에
다음 생에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의
수행자였다는 그 아이는
양 선생님을 만난 후
말문을 열기 시작하 면서
"에이, 비, 씨, 디.." 를
먼저 말하더라고 합니다.
나는 내가
익숙한 일이 무엇이 있는지
한참 동안 짚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