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대한민국은 보석(寶石) 같은 나라!👍
한국인은 원래 선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白衣民族)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농부들은 동물의 끼니까지 살뜰히 챙겼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 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미덕(美德)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 때문이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먼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첫댓글 짚신에 밟혀 죽을 벌레까지 신경을 써서 오합혜와 십합혜를 가지고 다니시다니,
개인주의가 많이 생긴 요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