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먹은 김치찌개가 참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동창 단톡방에 누군가의 승진 소식이 올라옵니다. 축하 이모티콘을 하나 누르고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이상하게도 그 찌개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 형편은 한 시간 전과 똑같은데, 내 처지가 갑자기 가난해졌습니다.
우리는 많이 가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영국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그 뿌리를 ‘지위’에서 찾습니다. 이 책의 원제가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드 보통이 말하는 지위란 좁게는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직업적·법적 위치입니다. 넓게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의 가치와 중요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지위에는 절대적인 눈금이 없습니다.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는 남과 견주어 볼 때에야 비로소 드러납니다. 지위는 본래 비교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지위 불안은 곧 비교의 불안입니다. 우리가 불안한 것은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덜 가진 것 같아서입니다. 한 시간 전과 형편은 똑같은데 찌개 맛이 사라진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하고나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곧 ‘준거 집단’과 비교합니다. 옛날 농부는 임금과 자신을 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근대의 약속이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러자 비교의 상대도 끝없이 늘어났습니다. 여기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기 탓이 됩니다. 드 보통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난이 무능의 표시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냥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위를 잃는 일은 돈만 잃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의 값까지 잃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높은 지위는 내가 사랑받고 존중받는다는 증거처럼 보입니다.‘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닙니다. 지위가 떨어져 아무도 나를 귀히 여기지 않게 되는 것, 곧 버림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불안의 진짜 얼굴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 400m 준결승전에서 영국의 데릭 레드먼드는 경기 도중 햄스트링이 끊어졌습니다. 혼자 트랙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관중석에 있던 아버지가 경비원들을 뚫고 트랙으로 내려와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아버지는 메달을 딸 아들에게 온 것이 아니라 쓰러진 아들에게 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부축하며 결승선을 향해 같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지위’를 보지만, 하나님은 ‘존재’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쓰러진 자리에서 울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3장 4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43:4a)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늘 불안이 넘치지만,
메달 없는 자녀를 향해 관중석에서 뛰어 내려오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 성도들은 오늘도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