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이 받은 모란꽃에 나비가 없는 진짜 이유(2)
또 산속 개울가에서 스님 한 사람과 선비 두 사람이 웃으며 서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를 여산삼소도(廬山三笑圖) 또는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 또는 줄여서 보통 삼소도(三笑圖)라 한다. 이는 혜원(慧遠)이라는 스님과 유학자인 도연명(陶淵明) 그리고 도교 신봉자인 육수정(陸修靜) 사이에 얽힌 일화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혜원 법사가 여산의 동림사에 있었는데, 이들 두 사람이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 도(道)에 대한 담론에 몰두하여 혜원이 평소 손님을 전송할 때 절대로 넘지 않던 호계를 그만 지나버려, 세 사람이 모두 웃었다는 이야기다. 수십 년간 계율처럼 지켰던 선을 넘어버렸는데, 그것도 그냥 안 것이 아니라 범의 울음소리에 놀라 그 사실을 알았다. 진리에 대한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져서 금지선인 호계를 지나친 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 웃음의 의미는 아마도 유불선이 각기 가는 길이 다를 뿐, 닿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지는 같다는 것을, 깊은 사색 끝에 깨닫고 웃는 웃음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염화미소가 아닐까? 어떻든 삼소도는 일화가 그 배경이 된 그림이다.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삼여도도 일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것을 삼어도(三魚圖)라 하지 않고 삼여도(三餘圖)라 하는 것은 ‘물고기 어(魚)’ 자와 ‘남을 여(餘)’ 자의 음이 [yú]로 같기 때문에 그렇게 바꿔 부른다. 삼여는 공부하기에 좋은 세 가지 때 곧 겨울, 밤, 궂은날을 가리키는데, 삼여도는 이 세 가지의 의미를 함축한 면학(勉學)을 뜻하는 그림이다.
이것은 삼국지 위지(魏志) 왕숙전(王肅傳)의 동우(董遇)에 얽힌 고사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어떤 농부가 학문 높은 선비인 동우를 찾아와서 배우기를 청하자, 그는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며 받아주지 않았다.[讀書百遍意自見] 이에 농부는 농사일이 바빠서 도저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우는 농사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세 가지 여가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겨울은 1년의 여가이고, 밤은 낮의 여가이며,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의 여가이니, 어찌 시간이 없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冬者歲之餘 夜日之餘] 그 세 가지는 다 농사짓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여유만 이용해도 충분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에 연유하여 ‘삼여(三餘)’라는 말이 생겨났고,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세 마리의 물고기로 그려 그 뜻을 살린 것이다.
한 선비가 당나귀를 타고 다리 위를 건너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뒤따르는 시동이 함께 등장하기도 하는데, 주로 풍설(風雪)이 분분한 겨울 경치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그림을 파교려상도(灞橋驢上圖)라 한다. 한자음을 다르게 읽어 패교노상도, 또는 패교기려도(灞橋騎驢圖)라 일컫기도 한다. 파교는 섬서성 남전현에서 발원하여 위수로 흘러드는 파수(灞水)에 놓인 다리 이름이다. 한(漢)나라 사람들이 이별할 때 이 다리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주면서 송별의 뜻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곳은 시에 얽힌 또 다른 일화가 전한다. 당나라 때 어떤 사람이 시인 정계선에게 묻기를, 요즈음 지은 시 중에 좋은 작품이 있느냐고 하니, ‘시상은 풍설이 몰아치는 날 파교에서 당나귀 등을 타야 옳게 떠오르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 말을 높이 산 후세의 선비들이 그것을 화제로 하여 그린 그림이 바로 파교려상도다.
그러면 일반적인 소재가 품고 있는 그림들을 살펴본다.
게와 갈대가 그려진 것은 과거에 장원급제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게는 갑각류로 등이 딱딱한 갑(甲)으로 싸여 있어서 우두머리 곧 장원을 의미하고, 갈대를 나타내는 ‘갈대 로(蘆)’ 자는 장원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리는 음식 이름인 려(臚) 자와 음이 같은 [lu²]이기 때문이다.
갈대와 기러기를 함께 그린 것을 노안도(蘆雁圖)라 하는데, 늘그막에 편안히 지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갈대 로(蘆)’ 자가 ‘늙을 로(老)’ 자와 음이 같고, ‘기러기 안(雁)’ 자는 ‘편안 안(安)’ 자와 음이 같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향나무와 (흰)사슴을 그린 백록도(柏鹿圖, 白鹿圖)는 백록(柏鹿, 白鹿)이 백록(百祿)과 통하므로, 많은 녹을 받는 벼슬길에 오르라는 뜻이고, 까치와 버드나무를 그린 것은 ‘버들 류(柳)’ 자가 ‘머무를 류(留)’ 자와 음이 같아서 까치가 전하는 기쁨이 오래 머물라는 뜻이다.
백로 한 마리를 연밥과 함께 그린 것을 일로연과도(一鷺蓮果圖)라 한다. 이는 일로연과(一路連科)란 말과 음이 같아서, 과거에 계속 합격하라는 뜻이다. 한 마리 백로 즉 일로(一鷺)는 하나의 길을 뜻하는 일로(一路)와 음이 같고, 연밥 즉 연과(蓮果)는 잇달아 과거에 합격하라는 연과(連科)와 음이 같음에 바탕을 둔 것이다.
부용(芙蓉)을 그린 그림은 용(蓉) 자의 음과 영(榮) 자의 음이 [róng]으로 같아서 영화롭게 되라는 뜻이다.
모란, 목련, 해당화를 함께 그린 것은 모란의 딴 이름인 부귀화와, 목련의 딴 이름 옥란화(玉蘭花), 해당화(海棠花)의 당(棠) 자와 같은 음인 ‘집 당(堂)’ 자를 연결지어, 부귀하고 훌륭한 집인 부귀옥당(富貴玉堂)이 되라는 뜻이다.
또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린 것을 모질도(耄耋圖)라 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고양이 묘(猫)’ 자와 ‘늙은이 모(耄)’ 자의 음이 [māo]로 같고, ‘나비 접(蝶)’ 자와 ‘늙은이 질(耋)’ 자의 음이 [díe]로 같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여기서 모는 70세를, 질은 80세를 가리키는 글자다.
삼국사기에는, 당 태종이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공주 시절에 모란꽃을 보내왔는데, 거기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이 꽃은 아름답긴 하지만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심어보니 실제로 향기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유사에는, 당나라 임금이 이 그림을 보낸 것은 내가 짝이 없다는 것을 희롱하기 위함이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맞지 않은 이야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그림을 잘못 읽은 데서 빚어진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고 나비[耋]는 80세를 뜻한다. 그러므로 모란에 나비를 그리면 80세까지만 부귀를 누리라는 의미가 되어 영원성을 제한받게 된다. 그래서 모란과 나비는 함께 그리지 않는다. 당시에 선덕여왕과 신료들은 그러한 독화법을 몰랐던 것이다. 또 이 일화를 두고 선덕여왕이 영민했다고 칭송한 것이나, 모란이 향기가 있는 꽃임에도 향기가 없다고 한 것 등은 다 사실에 어긋난 이야기다.
사학자 문일평은 이 이야기를 바탕삼아, 그의 화하만필(花下漫筆)이란 책에서 이르기를, 후세 화가들이 모란에 나비를 그려 넣지 않은 까닭은 그런 선덕여왕을 기리고, 중국 화풍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반기를 든 것이라 하였는데 이것도 좀 지나친 언설이라 하겠다.
그런데 모란꽃에 나비를 그린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반드시 고양이를 함께 넣어 그린다. 모란꽃은 부귀, 고양이는 모(耄 70세), 나비는 질(耋 80세)이 되어 부귀모질(富貴耄耋) 곧 부귀를 누리며 장수한다는 뜻을 갖게 된다.
연꽃과 원앙새를 같이 그린 그림은 원앙과 같이 금실이 좋아서 해마다 귀한 아들을 낳으라는 의미다. 이때의 ‘연꽃 련(蓮)’ 자는 ‘이을 련(連)’ 자와 음이 같아서 ‘이어서 해마다’의 뜻 이다.
연뿌리 그림은 우단사련(藕斷絲連)이란 성어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연뿌리[藕]는 끊겨도[斷] 거기서 나오는 실[絲]은 이어져[連] 있다는 뜻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관계가 단절되었으나, 실제로는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으로, 남녀 간의 정이나 형제간의 우애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다.
버드나무 아래 오리 두 마리가 헤엄치는 그림은 연달아 과거에 급제하라는 뜻이다. 오리를 뜻하는 ‘오리 압(鴨)’ 자의 왼쪽에 들어 있는 갑(甲) 자가 으뜸을 의미하고, 두 마리는 초시와 전시(殿試 대과의 최종 시험)에 연달아 급제하라는 것이다. 버드나무를 나타내는 ‘버들 류(柳)’ 자는 머물다는 뜻의 ‘머무를 류(留)’ 자와 음이 같아서, 그런 행운이 오래도록 머물라는 뜻이다. 또 물고기 두 마리를 그릴 때 한 마리는 작고 다른 한 마리는 크게 그리는 것도 소과와 대과에 다 합격하라는 뜻이다.
쏘가리는 그것을 가리키는 ‘쏘가리 궐(鱖)’ 자의 음인 ‘궐’이 ‘대궐 궐(闕)’ 자와 소리가 같으므로, 대궐에 들어가 벼슬하라는 뜻이다. 이것을 오리와 함께 그리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장원 급제하여 대궐에 들어가라는 뜻이다. 그런데 쏘가리를 두 마리 그리면 모반을 뜻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궐이 둘이란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목련과 바위가 함께 그려진 것은 목련의 다른 이름이 목필화(木筆花)인데, ‘필’이 ‘반드시 필(必)’ 자와 음이 같고 바위는 장수를 뜻하므로, ‘반드시 오래 살라’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밤과 대추를 함께 그림 것은 자식을 빨리 낳으라는 의미다. 원래 대추는 남자를 뜻하고 밤은 쪽이 나 있으므로 여자를 상징한다. 그런데 ‘대추 조(棗)’ 자는 ‘일찍 조(早)’ 자와 음이 같고, ‘밤 률(栗)’ 자는 ‘설 립(立)’ 자와 음이 [lì]로 같은데, 여기에다 열매를 뜻하는 자(子)를 합하면 조립자(早立子)가 되기 때문에 그런 뜻이 생긴 것이다.
닭과 맨드라미를 그린 것은 벼슬하라는 축원을 담은 것이다. 닭의 ‘볏’을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이 ‘벼슬’이고, 맨드라미의 딴 이름이 ‘닭벼슬’인 데서 온 것이다. 지금도 방언에서 널리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소재를 그릴 때는 나란히 그리지 않고 반드시 위아래로 그린다. 그것은 지금의 벼슬에서 위의 벼슬로 승진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민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책걸이 그림은 주로 병풍을 만들어 감상했다. 일반적으로 책걸이란 말은 책씻이라고도 하는데, 책 한 권을 다 배우고 나면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음식을 벌여 놓고, 선생과 학동들이 함께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책걸이 그림은 이런 행사와는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책을 숭상한다는 의미의 상서(尙書)란 말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 상서는 육부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벼슬 이름이다. 그래서 이 책걸이도는 6부의 으뜸 곧 6판서가 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외 몇 가지 소재들의 의미를 간략히 덧붙이면 아래와 같다.
매화 : ‘매화 매(梅)’ 자와 ‘눈썹 미(眉)’ 자의 음이 [mèi]로 같아서 미수(眉壽), 즉 눈썹이 희도록 살라는 축수(祝壽)의 뜻.
소나무 :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의 뜻. 또 송(松)은 송(頌)과 음이 같아 칭송의 뜻을 지녀, 신년 축하 등의 의미를 담음.
대나무 : 곧은 절개. 또 죽(竹)과 축(祝)의 음이 같은 [zhú]이므로 축하를 뜻함.
난초 : 난을 난손(蘭蓀)이라고도 하는데, 손(蓀) 자가 손(孫)과 통하여 자손번창 을 뜻함.
여뀌 : ‘여뀌 료(蓼)’ 자가 ‘마칠 료(了)’ 자와 음이 같아 학업을 마친다는 뜻을 지님.
덩굴 : 덩굴을 한자로 만대(蔓帶)라 하는데, 음이 만대(萬代)와 같아 (자손)만대 란 뜻을 나타냄
메추리 : ‘세가락메추라기 안(鷃)’ 자가 ‘편안 안(安)’ 자와 음이 같아 편안함을 뜻함.
참새 : ‘참새 작(雀)’ 자가 ‘까치 작(鵲)’ 자와 음이 같아 기쁜 소식을 뜻함.
이와 같이 우리 그림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켰다. 그 속에서 효와 우애와 소망, 그리고 처세의 정신을 담아 옆에 두고, 항상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경계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