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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가슴에 비전을 심자
출 2: 1-15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사람에게는 세 시기가 있다고 합니다.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살면서 삶의 성숙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 시기의 삶에 대해 흥미있게 말했습니다.
"소년기에 우리는 부모를 위해살고, 청년기에는 자신을 위해 살다가, 장년기에는 자식을 위해 산다"고 했습니다.
장년이 된 우리는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막상 "자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부딪치면 철학의 빈곤을 느낍니다. 흔히 “자녀를 낳기는 쉬워도 사람답게 키우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도 큰 소리칠 수 없는 것이 자녀 교육입니다. 자녀교육은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부모가 온갖 정성을 다해서 철저하게 자녀를 교육시켰지만 실패하는 가정이 많은가 하면 형편이 어려워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렇게 큰 관심과 정성을 쏟지 못하였는데도 자녀들이 잘 되는 가정이 많은 것을 또한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에게 있어서 자녀들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자녀문제로 세상이 떠덜석했을 때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했던 사람인 김대중 대통령도 지금 자녀문제로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도 자녀들의 문제로 실패를 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중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사무엘은 시종일관 백성들에게 흠을 보이지 않았던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상 12:3절을 보십시오, 그는 공식적으로 퇴임식을 하는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귀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입니까?
이 말을 듣은 백성들이 이야기 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않았고, 압제하지 않았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둔 아들들이라면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살아야 하고 백성들을 올바르게 지도했어야 마땅한데 사무엘의 두 아들이 사사가 되었을 때 사무엘상8:1에 보면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도 자녀교육의 문제만큼은 실패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를 통하여 교육받을 수 있었던 기간은 매우 짧은데 어떻게 민족을 위한 사명의식을 갖고 하나님 앞에 위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4:10 말씀에 보면 모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이 말씀에서 두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는 후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이 알아 주시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알아 주시던 사람, 이 보다 더 영광스러운 표현이 어디 있습니까?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선언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알아 주시던 사람, 그가 모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쓰임받았던 사람입니다. 모세가 그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러나 그 배후에 부모의 역할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모세의 부모가 어떻게 양육하였기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같이 보면서 몇 가지 교훈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위해서는 어떻게 우리들이 양육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1. 자녀의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1-2)
A.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통하여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 시대적인 상황은 애굽의 왕이 히브리 산파들을 시켜서 남자가 태어나면 하수에 던지고 여자거든 살려두라는 명이 내려져서 아이를 낳기가 두려운 상황이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태어났을 당시 이 가정에는 이미 미리암과 아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모세는 그 가정에 기쁨을 주기보다는 큰 근심과 부담과 슬픔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이 때 모세의 부모가 어떤 결심을 하였습니까?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남자를 낳으면 하수에 던지라는 애굽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사람은 집안 전체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살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달을 숨겨 양육하였습니다. 히브리서11:23절에서는 이것이 바로 모세의 부모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무엇을 보고 믿음을 가졌습니까?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숨겼다고 나옵니다.
히브리서 11:23절에서는 “그 아이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숨겼다고 나옵니다. 사도행전 7:20절에서 “모세가 아름다웠다”라고 말한 그 아름다움이 평범한 아름다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달을 길리우더니”
이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모가 준수하다 사람이 보기에 잘났다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운]이란 단어는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단어로 쓰여지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아이”라는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이를 보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아이] [하나님이 쓰실 아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아이]라는 것을 부모는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아직 피덩어리에 불과하였지만 모세의 부모는 이 아이가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아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세의 부모가 어떻게 그런 확신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물론 그 자세한 과정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귀한 아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믿음으로 볼 때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즉, 가족 전체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그 아이를 믿음으로 길러야 한다고 결단하여 석달을 숨겼던 것입니다.
B. 오늘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이들을 볼 때 그 가능성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될 때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이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그 부모의 배경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또 자기가 가진 지능의 지수가 높든 낮든 차별없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공통으로 부여 받는 선물 하나가 있습니다. 그 선물이 뭐냐하면 가능성이라는 선물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이 가능성을 보아야 합니다. 이 아이가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가능성을 보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믿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아이를 보는 눈과 믿음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보는 눈은 달라야 합니다.
에디슨은 학교에서 학습불가능한 자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이 아이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가능성이 개발되어 오늘날 인류에 많은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명한 위대한 조각가 장인 미켈란젤로가 어느날 성당의 뒤뜰에서 굴러다니고 있든 돌덩이 하나를 보았습니다. 가만히 그 돌덩이를 쏘아보다가 버림받은 돌, 수풀사이에 팽개쳐진 돌덩이를 보다가 갑자기 미켈란젤로의 입술에서 이런 외침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저거야, 다비드(David)야, 다비드가 나온다.” 그는 그 거친 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돌이 장인의 손에 의해서 다듬어지는 그날 그 속에서 만들어질 위대한 다윗상, 다비드상을 보고있었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질 위대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 속에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깨워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는 위대한 생애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볼 때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를 처음 만나는 그날 요한복음 1:42절에서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는 그 때도 반석과 같은 역할을 할 베드로의 가능성을 보고 내 양을 먹이라는 임무를 주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사기 6:12절에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 몰래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찾아와 “큰 용사”라고 불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보실 때 가능성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태복음 19:26).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예레미야 32:7).
"하나님께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없다"(Nothing is too hard for God).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인생 막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소개해줍니다(창세기 17:1).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1940년대에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라는 영국의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나섰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내려오는 길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약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그는 다른 산악인 두 명과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실패는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경험입니다.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큰 과제는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 승리의 미래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뿐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도 역사선상에 빛나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전과 꿈만 분명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빛나는 인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당신의 가능성에 대한 태도 선택입니다.
유대인은 아이를 우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솟아납니다. 그러나 퍼내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면 그 물은 썩거나 말라버립니다. 유대인 어린아이가 미국인 학교에 가면 금방 그 반에서 선두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유대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열배나 스무 배 더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능성을 보고 믿음으로 양육하는 부모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댓가를 요구합니다. 어떤 댓가를 지불한다할찌라도 믿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된다면 가능성이 하나님앞에 위대하게 쓰임받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2.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라(3-10)
모세의 부모는 최선을 다한 후에 나머지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3∼10절).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살리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였습니다. 2-3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동안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믿음으로 최선을 다한 후에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조치를 취합니까?
갈 상자를 가져와서 나무진을 바르고 역청을 발라서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였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미리암을 시켜서 어떻게 되는 것을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할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한 후에 이 아이를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 맡길 일을 제대로 잘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구해야 될 것이 있고 궁리하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다 한 다음에 최종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요한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산나 웨슬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하라 그런 뒤에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이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이루시도록 하나님을 신뢰하라. ”
위대한 믿음의 여인이였던 수산나 웨슬리는 19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중 유명한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스리]와 [찰스 웨슬리]가 있다. 찰스는 8000곡이나 넘는 찬송가를 지었다.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찰스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믿음과 모본의 빚을 많이 지었다”
수산나 웨슬리는 그 많은 아이를 키우는데 21가지의 원리를 그녀는 고수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한 살이 되면 어떤 아이들은 그전부터 회초리의 무서움을 알아야 하며 악을 쓰며 울지 못하도록 배워야 한다. 이로써 아이는 그렇지 않았으면 불가피했을 많은 징계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된다.” 수산나 웨슬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회초리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아이들을 맡겼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잠22:6 “마땋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었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아들을 맡겼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에 이 여인을 포함시켰습니다. 모세가 그의 삶 속 깊이 새겨진 귀중한 교훈들은 대부분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섭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를 갈대 바구니에 넣었던 캄캄했던 그날 아침, 이 여인에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절박하고 처절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온전히 맡기면서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었습니다.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바라던 것 이상으로 그녀의 믿음에 보상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와서 갈대상자를 발견하여 열어보니 히브리 사람의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공주가 목욕할 때가 없어서 하필이면 여기까지 내려왔겠습니까? 그 당시 애굽의 궁중 안에는 훌륭한 목욕시설이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증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님이 나일강에서 목욕하고 싶어서 때를 맞추어서 이곳에 등장했습니다. 갈대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열고 아이를 보니 마침 아이가 울었습니다. 저는 이것도 기적이라고 봅니다. 그 때 그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모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게 하는데 그 유모가 누구입니까? 모세의 어머니입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9절 보십시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이렇게 해서 남자가 태어나면 죽임을 당할 살벌한 상황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믿음으로 양육하고자 결단하고 최선을 다한 후에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니 오히려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또 바로의 공주에게 양육비까지 받으면서 당당하게 아이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며 통치하심을 믿습니까?
내가 아이들의 주인이 아니라 참된 주인되신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섭리에 맡끼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말씀대로 애들을 키우고 주님 손에 내어 맡겨도 한동안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들이 한 때 말썽을 부려도 믿음으로 키웠다면 결국은 바르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눈물로 키운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자녀 가운데 속 썩이는 아이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인내하기 바랍니다.
어느날 이탈이아의 조그만 교회당 안에 예배 시간도 아닌데 어느 부인 한 명이 와서 흐느껴 울기 시작합니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차라리 통곡이었습니다. 너무나 서럽게 우는 이 부인을 보고 안되게 생각한 한 나이 많은 감독이 그 곁에 다가가서 부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부인, 왜 우십니까?”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들이 타락했습니다. 내 아들이 방종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이 이단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노 감독은 손수건을 꺼내 그 부인의 눈물을 씻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눈물로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결단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 기도하고 있었던 어머니는 바로 그 유명한 모니카였습니다. 이 기도 때문에 돌아왔던 아들은 기독교 역사에 가장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던 성 어거스틴입니다.
나의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맡길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하게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쓰임받는 훌륭한 사람으로 양육하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최선을 다해 믿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맡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3. 사명감을 갖도록 하라. (11-15)
모세의 부모는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들을 찾았고, 자기의 친아들을 키우면서 품삯까지 받았습니다. 젖을 떼기까지 친어머니가 젖을 먹이고 양육하였습니다. 젖을 다 떼려면 짧게는 3-4년 걸립니다. 어떤 학자들은 아마도 이집트 아이들의 공식적인 교육이 시작될 때 데려왔을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빠르면 3년에서 길게는 일곱 살까지 모세는 어머니에게 양육을 받았습니다.
이때 무엇을 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23절에보십시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모세가 40이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감을 갖게 된 것은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을까요?
짧은 기간이지만 어머니가 젖을 먹이는 그 시간에 모세의 가슴에 비전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젖을 먹이면서 어린 모세의 마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최선을 다해 교육시켰을 것입니다.
철저히 유대인 교육을 시켰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랑으로 그 애를 품에 안고 '너는 하나님이 특별히 쓰실 아이다.’ ‘너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유대인이다'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했을 것입니다.
현대 의학자들에 의하면 어머니가 품에 안고 속삭여 주는 그 말을 애들이 마음으로 느끼고 듣는다고 합니다. 이때 들은 그 말이 그 아이의 인격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젖을 먹일 때, 그리고 자녀들에게 자주 믿음의 말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특별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너를 특별히 쓰실 사람이다.'
믿음으로 가능성을 바라보고 사랑으로 양육하면 결국은 하나님 앞에 귀한 자녀가 되리라 믿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믿음의 교육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자녀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결국은 믿음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훌륭한 모세 뒤에는 모세의 가슴에 꿈을 심어주었고 믿음으로 양육하였던 부모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란 후 '오늘의 나는 부모님의 교육 덕분이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부모들이 되기 바랍니다.
자녀들의 가슴속에 비전을 심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손을 써야 합니다. 부모 여러분, 빨리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죄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
자녀가 십대가 되기전에 적극적으로 가치관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영국의 통계를 보면 14세 이전에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전체 신자들 중의 74%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세에서 17세 사이에 구원받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또 [프랑소스 심프슨]의 자료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데이터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제대로 못했을 때 자녀가 교회를 이탈하는 비율이 심대에 가장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자료를 보아도 어릴 때부터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할 뿐아니라 사명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폴리캅이라고 하는 위대한 순교자는 9세 때 성령의 영감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지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조나단 에드워드는 7세 때, 모라비안이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가지고 기독교 사회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던 진센도르프도 4세 때 성령의 영감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연필을 들고 글을 배울 때에 “사랑하는 주님, 주님의 나의 것이요, 나는 주님의 거입니다.”라는 뛰어난 문장을 쓸 수 있을 만큼 영감을 받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유명한 주석가인 메튜헨리는 11세 때 침례교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로버트 홀은 12세 때 세기적인 설교자였던 스펄전도 12세 때 성령의 영감을 받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가슴속에 사명을 심어주는 방법은 말보다도 행동입니다.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합니다. 부모가 마치 돈을 위해서 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든지, 아무 목적의식없이 그날 그날 지쳐서 겨우 살아가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눈에 비친다면 자식이 부모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그 자녀가 나중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슨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자녀를 소명받은 자녀로 키웁시다.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예수 믿는 우리들 가정에서 나오게 합시다.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줄 아는 강한 힘을 가진 자녀들이야말로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강한 정신력과 믿음을 가진 자녀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리를 잡을 때 우리의 앞날에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가 말씀으로 훈련받는 환경에서 자라게 합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영적 환경에서 자라게 합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을 위해 큰 소명을 가지고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양육합시다. 우리 자손의 미래는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탁월한 지도자 John Maxwell 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이렇게 간단하게 대비시켜 정의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있고 비전"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에 자극을 받아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보다 큰 꿈을 품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지금만 보는"사람들입니다. 오늘에 의해서만 자극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에 급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 당장 필요한 것에만 심취되어 살아갈 뿐입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을 능가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보다 더 큰 비전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기도해서 그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그 비전을 기필코 이루어 나갑니다.
"위대한 꿈은 위대한 사고를 낳고, 위대한 사고는 위대한 신념을 낳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내가 어떻게 양육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자녀들의 삶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께 쓰임받는 축복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모세의 부모처럼 양육하기로 결단 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아이의 가능성을 보고 믿음으로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자녀들의 가슴에 사명을 심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