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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친구의 오두막 집
최 순 태
나의 친구 중 재명이 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우리 마을 시막골 이라는 골짜기 산중턱에 살았다. 내가 살던 배천 마을은 53호가 모여 사는 조그만 동네였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우리 마을 옆 동네인 문산 마을에 살다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온 재명이네는 가난한 살림에 집을 마련하지 못하여 산 아래에 초가로 아담한 집을 지어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사는 가난한 가정이었다.
그 당시 그 집 주위에는 들짐승과 날짐승이 많아 이른바 무수한 동물과 동거생활을 하는 것과 흡사 하였다. 사방에 풀과 나무들이 가득하고 벌들이 처마나 담에 집을 짓는 등 사람과 공생관계를 이어나갔다. 요즈음 도시 사람들이 선호하는 별장이 이러한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인가와 홀로 떨어져 사람들과 왕래도 빈번하지 않아 많은 외로움을 느꼈으며, 이따금 우편물을 배달하러 오는 집배원 아저씨나 자기 소유의 전답이 있는 동민들과 만날 뿐 사람을 보기가 어려웠다. 집 앞을 지나는 친구들을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반갑게 대하였다.
내가 “재명아! 밤에 동네에서 우리 같이 놀자”라고 말하면 “그래 밤에 만나”라고 대답하고 친구는 손전등을 들고 산에서 단숨에 내려와 밤새 놀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농촌의 소들은 농사철이 되면 논갈이, 써레질 등으로 매우 바쁘다. 바쁜 일이 끝나고 한가해지면 동네 아이들은 소를 몰고 인근 산으로 가서 싱싱한 풀을 뜯게하고 친구들과 모여 공차기, 술래잡기 등 온갖 놀이를 하며 놀았다.
때로는 소가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 잘 키워놓은 채소를 먹는 바람에 주인에게 혼이 나기도 했으나, 자연에서 동무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도시의 아이들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에서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조그만 폭포 밑에서 평소 좋아하던 “선구자”등 가곡을 불렀던 기억이 아련하다.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에는 송정(松亭)이라고 불리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송정에서는 사계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특히, 5월의 신록이 아름다워 인근 학교에서 자주 이용하는 봄 소풍 장소로 유명했다.
중학교 시절 필수과목 이었던 농업 시간이면 학교 실습농지에서 고구마, 감자를 재배하고,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퇴비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 당시 농업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별명을 “고구마 선생님”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인근 산에 송충이가 번성하여 소나무를 갉아먹어서 나무가 많이 죽었으므로 전교생이 산으로 가서 벌레를 잡는 행사가 있었다. 해충 방제를 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으로 한 것은 옳은 방법이었다. 약으로 방제하면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환경시설공단에 편입된 북부하수처리장에서 일할 때 하수처리시설 주위에 봄이 되면 초목이 무성하여 계절별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하수처리장에서 바라본 금호강의 일몰도 장관이었다.
여기서 직원들은 닭, 개, 염소 등을 기르기도 하였다. 특히 염소는 인근 시장에서 암수 한 쌍을 구입하여 10마리까지 번식을 시켰다. 어느 날 키우던 개가 닭장에 들어가 닭들을 물어 죽여서 직원들끼리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군대생활 중 홍천 오음산 통신기지에 경계근무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산은 해발 1,000m 고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원이 적어서 가마솥으로 밥을 지었다. 물 사정도 좋지 않아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지게로 져 날랐다.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운무는 참으로 신비스러웠으며 마치 인간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 하였다. 바위틈에서 자수정이 보랏빛 자태를 뽐내고, 기지 부근 산에는 나물, 더덕 등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훈련소와 같은 일상인 보병생활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농촌의 지붕과 농로 확장, 객토사업이 한창 펼쳐질 때 우리 마을에서 퇴비증산 사업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잠시 출타하여 내가 우리 집 대표로 퇴비를 만들기 위한 풀베기에 동원되었으나 일의 숙련도가 떨어져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였다.
직원들과 함께 영양의 일월산 인근 산에서 산주가 심어놓은 산나물과 더덕 등을 채취하는 체험을 하였다. 해마다 산나물축제가 열리는 영양 일대에는 풍부한 임산물로 넘쳐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해마다 봄이 오면 모내기와 각종 작물의 모종을 밭에 심는 일이 끝나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마을 뒤편의 동산에서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한바탕 야유회를 펼친다. 도시의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농촌에서는 구태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훌륭한 유원지가 되는 것이다. 흔히 도시인들은 농촌생활을 전원생활이라며 동경하지만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농부들의 일상은 치열한 삶의 현장일 뿐이다.
요즈음은 한창 물이 필요한 시절이지만 가물어서 농부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시원한 비라도 흠뻑 내려 대지를 적셔주면 좋으련만! 비가 오기를 기대한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지 않을까? 옛날 나라님도 가뭄이면 신하들을 이끌고 천신께 제를 올리지 않았던가!
신록의 계절 5월이면 우리들은 산이나 들로 가서 버섯, 잔대, 도라지, 빼기, 삐삐 등을 뜯어서 그 자리에서 먹기도 하고, 음식을 장만하기도 한다. 도랑과 웅덩이의 물을 퍼서 논에 물을 대고 고기를 잡아 온 동민들이 나누어 먹었다.
이른바 “도랑치고 고기 잡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랑도, 웅덩이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로 복개하여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미꾸라지, 물방개를 잡으며 놀던 시절이 그립다.
우리 집에서는 한 때 누에를 키운 적이 있다. 누에는 여러 번 잠을 자고 나면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일생을 마친다. 누에의 먹이인 뽕잎은 누에의 크기에 따라 조그마한 누에는 잘게 썬 잎을 먹이고 점차 자라남에 따라 온전한 뽕잎을 먹는다.
특히 알에서 깨어난 까만 누에가 잎을 먹을 때 사각사각 거리는 것이 마치 가랑비가 내리는 소리와 같다.
모진 겨울의 풍상을 이겨내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신록이 무성해지는 5월은 만물이 생기를 얻는 계절이다. 어느 수필가는 “신록예찬”이란 이름으로 이 계절을 찬양하기도 했다.
사람의 생활도 이러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어머니로부터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초등학교를 거쳐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신록”이 아닐까! 이 후 나이가 들어서 노년이 됨을 낙엽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없어져야 할 사람“이 되면 자기 자신과 남에게 짐이 될 뿐이다. 신록의 계절에 다시 한번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어린 시절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글이었습니다.
참 어려웠지만 인정이 넘치고 이웃이 일가보다 더 가까웠던 사람들이었지요.
잘 읽었습니다.
옛 산골 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읍니다. 군 생활 중 격은 산의 정취와 여름철 산이나 들에서 채취해 먹던 각종 임산물과 나물들 모두가 신록의 계절에야 가능한 일이지요. 신록의 계절은 풍요와 성장의 계절인듯 합니다.
유년시절 고향의 풍경과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록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묘사한 글 잘 읽었습니다.
어린시절 정겨운 고향이 생각나는 글이라 공감이 갑니다. 송충이와 누에는 비슷하게 생겻고 가물때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오는 신통도 생각납니다. 신록의 계절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농촌의 옛날을 느끼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힘들었던 일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겠지요 죽마고우이신 그 친구분과 요즘도 만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요즘 들어 농부님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누구보다 정직하고 치열하게 삶의 터전을 일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어릴때 농가에서 겪었던 시골 모습이 그대로 글에 실려있습니다. 지금같이 우리에 갇혀 사료를 먹고 자라는게 아니라 민둥산이 초지가 되어 소들이 풀을 뜯어 먹었지요. 소몰이 아이들은 노는데 정신없고 소는 풀을 뜯어먹다 채소밭에 진입해서 일년 농사를 망친예도 많지요.할아버지께 혼나던 아이들이 글속에 있네요.그 아이들이 그립습니다.
올해는 가뭄이 심하다는 뉴스가 있습니다. 산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간직한 곳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신록의 계절에 있었던 다양한 경험담에서 나의 유년시절을 봅니다. 산촌에서 자라 산과 함께했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죽마고우가 생각나는 군요. 잘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셍활했던 시골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어려웠던 친구와의 교류, 동물들과 함께헸던 삻의 모습, 농존의 평화로운 풍경 즐을 통하여 어린 시절을 추억해보는 시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