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중,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1년 중 5월과 6월은 초중고 각 학교에서 통일교육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달이다. 5월의 네번째 주는 통일부에서 정한 통일교육주간이기도 하고, 호국보훈의 달인 6월과 연결이 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통일교육을 시키려는 것이다. 나도 학교통일교육강사이자 통일교육위원이다 보니 공적기관을 통하기도 하고, 아름아름 지인을 통해서기도 하고, 5월과 6월에는 강사활동으로 바쁜 달이 되고 있다.
프리랜서 강사들은 한번 연결된 학교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지속적인 강의를 맡게 된다. 그렇게 강의할 학교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이다. 올해는 한 여고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여고. 아는 교회 누나가 다녔던 학교다. 괜시리 마음이 설레다. 아마도 인근 지역에서 남중, 남고를 나와서 그런가 보다.
“자, 여러분 오늘은 특별한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있을 수도 있는 한반도 통일, 여러분이 어떻게 준비하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 북한에서 오신 정혁구 선생님.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이** 선생님, 나와는 오랜 지인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지지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초대해 주셨다. 그런데 나를 북한에서 왔다고 소개를 한다. 이것은 미리 짜놓은 각본이 아니다. 난처한 상황이다. 북한 말투로 재미있게 수업을 시작하라는 선생님의 의도인가? 이 선생님의 소개에 아이들은 똥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학생동무들. 내래 북한에서 왔시오! 서울에 있는 가장 좋은 대학이 어디인가요?”, “서울대입니다.”, “길케 맞습니까? 서울대가 서울에서 가장 좋은 대학인가요? 길타면, 북한에서 가장 좋은 대학은 어디인가요?”, “북한대입니다.”, “맞습네다. 내래 북한대에서 공부했시오! 사실 북한대는 서울에 있습니다.”
북한 말씨로 휘둥레졌던 아이들의 눈이, 말투의 어눌함을 알아챈 아이들부터 수줍게 웃고있다. 내 말투가 표준어로 바뀌는 순간, 장난을 알아챈 아이들이 까르르르 웃고만다.
“여러분! 사실 북한이란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많은 북한사람들이 자신들이 북한이라고 호명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에요. 북한은 우리만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를 무엇이라고 호명할까요?”
아이들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는지, 한 두 아이가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남조선이요.”, “네 그렇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남한, 북한이라고 말하듯이 저기 북한인 조선에서는 북조선, 남조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국호는 무엇이라고 정하면 될까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라고 정하면 북한이 싫어할 것 같아요!”, “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름을 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한참을 생각한다. 그런데 대답을 못한다. 생각의 흐름이 막혔다는 것이다. 이럴때는 생각이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약간의 정보를 줌으로.
“친구들! 우리가 사용하는 국호인 한국이나 조선이란 단어는 일치가 되지 않죠? 그렇다면 세계에서는 한반도의 우리를 어떻게 호명할까요?”, “Republic of Korea.”, “친구가 잘 대답해 줬네! 한국을 ROK, Republic of Korea라고 하죠. 북한은요?”, “Demoi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어 친구 어떻게 알았지?”, “조금전 인터넷 찾아봤어요.”하하하 .
“자! 그렇습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 남과 북의 국호는 다르지만 세계에서는 남한도, 북한도 코리아라고 부릅니다. 한반도에 두 개의 코리아가 있는거지요.”, “선생님, 그럼 통일 한반도를 고려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코리아는 고려를 부르는 말이니까요!”, “오. 그것도 좋은 생각! 여러분 시대에 통일이 된다면 국호를 정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 되겠죠? 통일을 이루는 세대가 국호를 정하면 됩니다.”
과거 한 대통령이 통일에 대해 이런말을 했다. ‘통일은 대박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따라 통일은 대박이 될 수도 있고, 쪽박이 될 수도 있다. 통일은 결과보다도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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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런데 통일을 꼭 해야 하나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통일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한다. 아니면 반대로 현실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통일이라는 변화되는 미래에 대해 더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어려운데 우리보다는 20배나 못사는 북한과 통일이라니! 이런 생각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움츠려 들게 한다. 여기 이 학생들도 본인들이 처한 힘겨운 현실과 불안한 미래만 준비하기에도 벅찰텐데, 통일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사치일 수 있다. 아니 학생들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질문해 주는 것도 기특하고, 긍정적 신호일 수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는 통일에 대한 전국민 의식 조사를 매년 1회 실시하고 있다. 2022년 조사에 의하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전체 연령대상 46%가 필요에 공감했고, 반대로 26.7%는 통일이 필요없다고 답했다. 보기에는 전국민이 대체적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 같지만, 통일지향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2018년만 하더라도 통일이 필요하다고 선택한 국민들이 59.7%, 불필요하다고 선택한 국민들은 16.1%였다. 양쪽의 수치는 점점 그 폭이 줄어들고 있다.
안타까운것은 20대에서 통일필요성이 2020년을 기점으로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2022년 조사에 의하면 20대들은 27.8%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39.6%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10~20년 안에, 아니 어쩌면 몇 년안에 통일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하나된 한반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얼마전 다른 고등학교에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의식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조사결과는 50:50. 서울대에서 조사한 20대의 수치보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더 높은 수치가 나왔다. 그리고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반응이 다른 학교와는 사뭇 달랐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왜 이 학교에서는 통일의식이 다른 학교들보다도 높게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학교의 커리큘럼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학교는 1학년때부터 통일교육의 시간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단회적으로 통일교육이 진행되거나 전혀 진행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 학교에서는 교과목에 통일교육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교육은 통일의 필요에 대한 강요가 아닌, 한반도의 현실적인 상황을 소개하고, 학생들이 판단할 수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과거 우리와 같은 분단국이었던 독일에서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보수와 진보 등 다양한 색을 지닌 정치교육학자들이 모였다. 1976년의 일이니, 독일이 통일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나치 독일을 경험했던 그들, 패망과 분단속에서 다양한 입장을 가진 그들이, 다음세대들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치교육의 방식을 정하는 약속이었다. 이를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라고 한다. 회의가 진행된 지명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협약은 1990년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지속되어 시행되고 있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교육지침은 세 가지이다. 첫째 일방적 주입식 교화교육을 금지했다. 교육이 강압적인 교화나 주입식 교육이 되지 않도록 해야하고 교사는 수업 중 특정한 결론을 지어서는 안된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자율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판단을 교사는 존중해 주는 것이었다.
둘째는 학문과 정치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논쟁적 주제를 수업중에 질문함으로 학생들이 정치나 사회의 논쟁상황을 재현하게끔 하는데, 학생들은 이를 위해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여 논쟁에 임하게 된다.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셋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적인 행위능력을 기르게끔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사회구성원이 아닌 현재의 사회구성원임을 자각하게 하고,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어떻게 구현해 낼 수 있는지 수업을 통해 알게 된다.
유럽에서는 기후 환경이나 교육, 가족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10대들의 정치적 행동을 볼 수 있다. 이는 사회가 오랜시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다음세대의 이야기도 들어 줄 수 있는 사회의 품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독일도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같이 민주적 방식에 따라 정치교육의 입장을 정했다. 그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정치적행위를 실천하게 했다. 이것이 독일 통일의 자양분이 아니었겠는가?
“친구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손들어 볼까? 그렇다면 통일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친구 손들어 볼까?”
생각은 자유이다. 생각한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으랴! 다만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을 다음세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세대들이 바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고, 보여주며, 그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를 위해 내린 결정을 우리는 존중해 줘야 한다.
우리의 생각 또한 자유이다. 당신은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