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앙행정기관 공공외교 유형 분석
김태환 유럽러시아연구부 교수
1. 문제의 제기
2. 공공외교 유형화를 위한 분석틀(typology)
3. 한국 중앙행정기관 공공외교 현황
4. 한국 중앙행정기관 공공외교 유형 분석
5. 정책적 고려 사항
<요약>
공공외교는 국제 행위자들, 특히 국가들이 외국민과의 의도적인 소통을 통해서 자국의 국가이익과 외교정책 목적을 증진하고자 하는 비(非)전통적 외교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자국중심적 공공외교는 구세기 국민국가(nation-state)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금세기 강대국 경쟁(great-power competition)으로 특징지어지는 국제정치 맥락, 그리고 지난 세기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확연히 구분되는 글로벌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동학의 맥락에서는, ▲공공외교에 대한 구세기적 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인식과 접근법을 모색하고, 국제사회와 국제정치에서 ▲공공외교가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와 더불어 실천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국제적 맥락에서 공공외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공외교는 특정 국가의 자기중심적, 지엽적 국가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이에 따라 글로벌 차원의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에 머물 것인가? 강대국들과는 달리 비(非)강대국들 공공외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한국 공공외교의 자기중심성, 국가 중심성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중견국으로서 한국은 국제정치와 국제질서에 대한 공공외교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며, 향후 방향성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금세기 국제적·구조적 맥락에서 본 보고서는 공공외교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시각(수단적 시각 instrumental perspective)에 더하여, 타자와 상호 소통을 통해서 상호주관적인 의미와 이해 도출, 그리고 이를 통해서 타자와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체성 시각(identity perspective)을 소개하고, 양 시각을 결합하여 공공외교 유형화를 위한 분석틀(typology)을 제시한다. 동 분석틀은 네 가지 공공외교 유형(유형 I: 독백형, 유형 II; 대화형, 유형 III: 초국가적 공적 주창형, 유형 IV: 상호구성형)으로 구성된다.
본 보고서는 외교부가 2018년 이래 매년 발간하는 공공외교 종합시행계획에 근거하여 최근 5년간 중앙행정기관과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공공외교 사업 현황을 소개한 후, 공공외교 유형분석틀에 의거하여 2018~2022년 5년 동안 중앙행정기관이 시행해 온 총 937개 사업을 분류하였다.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독백형(유형 I) 공공외교가 40%(374건), 대화형(유형 II)이 42%(396건)로서 자기중심형 프로그램(유형 I+유형 II)이 770건으로 전체의 82%에 달하고 있는 데 반해서,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프로그램(초국가적 공적 주창형(유형 III)+상호구성형(유형 IV))은 59건으로서 전체의 7%에 그치고 있고, 이 중에도 상호구성형은 6건 또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
최근 공공외교 사업 현황과 유형분석에 비추어, 한국 공공외교가 당면하고 있는 쟁점과 도전요소들을 투사형 공공외교(projection public diplomacy)에 대한 집중, 자기중심성, 정책공공외교 내용의 일관성과 지속성, 그리고 단기적인 국가이익과 외교정책 실현에 기여하는 공공외교의 수단적 기능의 함정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 공공외교 향후 방향성의 세 가지 초점을 제시하였다. 첫째는 규범공공외교(normative public diplomacy)의 필요성이다. 규범공공외교는 규범의 생성과 순환 및 확산, 내재화, 그리고 이를 통해서 행위자 간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구성해가는 공공외교를 의미한다. 이는 곧 본 연구의 네 가지 공공외교 유형 중, 정체성의 외연을 확장함으로써 유형 III 초(超)국가적 공적 주창형 공공외교와 유형 IV 상호구성형 공공외교로 향한 방향성을 의미한다.
둘째, 한국 공공외교의 구체적 역할에는, 대결적인 자유주의 대(對) 반(反)자유주의 간 가치의 대립의 심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유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소프트 파워 차원의 균형(balance of soft power)을 모색하는 역할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도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국가 및 비(非)국가행위자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초국가적인 집단적 소프트 파워(collective soft power)’의 창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오늘날 중요성이 가중되고 있는 디지털 공공외교의 강화를 위해서는 외교의 디지털 인프라는 물론,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공외교에서 디지털 도구의 용도는 단순히 자기중심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공공외교는 디지털 매체를 정체성을 구성하는 아이디어, 가치, 이익, 그리고 글로벌 이슈와 현상들에 대해서 상대방과 소통하고, 이로부터 공유하는 이해와 의미를 생성해냄으로써 상대방과 관계를 구축하며, 궁극적으로는 공동의 이익과 정체성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매개체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자기중심성을 넘어설 때, 공공외교는 물질적 힘의 배분과 더불어 국제질서의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집단적 믿음(collective beliefs)’의 배분, 가치와 규범의 배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공공외교와 국제질서, 특히 국제규범질서가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국제질서 형성과 재편의 시대에 한국 공공외교의 역할을 확인하고 다듬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 붙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