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1901~1936)
심훈의 상록수 소설 줄거리 상록수란 당시 경기도 화성시 월면 샘골에 있던 작은 학원에서 일제에 항거하며 애국심과 농촌계몽운동으로 활약하던 중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애를 바친 최용신이란 젊은 여성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로 이 책자를 상록수라 이름 하였다.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최용신은 본래 함경도 덕원사람으로 원산의 류씨여고보를 졸업하고 협성여자신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당시 조선에는 조선 정부로부터 근대 여성교육과 농촌의 계몽운동을 목표로 정부에서 허가를 득하여 세워진 학교들이 있었는데 제일먼저 세워진 1884년의 이화학당을 위시하여 서울의 배화여학당, 공옥여학교, 인천영화여학당, 수원의 삼일여학당 등이 있었고 당시에 원산의 류씨여고가 이러한 취지로 1903년 설립된 이래 원산지역을 대표하는 여성교육 기관으로 크게 신장하였다.
최용신은 원래 부유한 가문에 태어났으나 일제가 농민들을 착취하여 농민생활이 피패하여 질대로 피폐하여진 것을 보고 나라와 농민을 위하여 농촌계몽운동을 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류씨여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곳이 여성만의 신학교육기관이었던 협성여자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기르고 농촌운동에 필요한 민족주의 신학교육을 착실히 수업하였다.
최용신은 1931년 10월 YWCA파견 교사로 경기도 화성의 반월면 샘골에 오게 된 것이며 처음에는 예배당을 빌려 몇 안 되는 사람을 교육시키는 형편이었으나 정성을 다하여 학문을 깨우쳐 주고자 노력을 하게되니 어느덧 모인 사람이 100명에 이르렀다. 이에 학원을 지을 대지를 내어준 독지가가 있어 YWCA에서 나오는 후원금과 유지들의 정성을 모아 1932년 에 정식으로 인가를 받고 1933년에 학원을 설립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천곡학원이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더 많은 학문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일본 고베여자학교에 유학을 하게 되었는데 불운하게도 유학중에 각기병에 걸려 부득이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천곡학원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최용신은 이 모든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드리며 전보다 더 열심히 정성을 기우려 학원을 운영해 나갔다. 그러나 전에는 YWCA에서 나오는 후원금이 있었고 또 독지가들이 후원을 보태어 운영이 무난하였으나 YWCA에서 보조금이 끊기면서 운용자금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최용신은 학생들이 많아 오전 오후 야학으로 3부제로 빡빡하게 수업을 강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금을 마련하는데도 정성을 기우렸으니 너무 혹독한 활동으로 인해 과로와 영양실조로 자리에 눕게 되었으며 종래는 일어나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한 생애를 마감하게 된 것이다 . 최용신은 마지막까지 학생걱정 어머니를 걱정하다 운명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슬프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소는 유언에 따라 학원옆에 쓰게 하였으니 이것이 상록수의 줄거리다.
심훈선생은 최용신이 타게 한 후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몸을 받쳐 나라를 위한 그 헌신적인 노력을 승화시키기 위하여 이 상록수를 집필하게 된것이며 이것이 훗날 농촌계몽운동의 지표가 되었다. 이 작품은 동아일보 현상공모에 당선이 되어 연재 되었으니 이 상록수는 심훈선생의 대표작이 되었다, 여기 나오는 상록수란 책명은 상록수란 문학집지에서 따온 것이라 하였다. 선생은 상록수를 책자로 발간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타계하였는데 최용신이 타계한 날로부터 1년 7개월 후이다 . -청송심씨 종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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