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가수 김현식이 서른 넷, 짧은 삶을 마치기 전에 日刊스포츠에서 연재한 자서전입니다.
그러던 중에 나에 대한 뜻밖의 소문들이 퍼져갔다. 내가 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사고 있다는 거였다. 원래부터 방송출연은 잘하지 않아 사람들이 나를 볼 기회도 별로 없었고, 더구나 콘서트마저 뜸한 사이 나에 대한 그런 소문이 퍼졌었나 보다. 심지어는 매일 보는 친구들 마저도 어느날 나를 만나면 병원에서 어떻게 나왔느냐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뿐만 아니라 친척들마저도 전화를 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난리들이었다. 비록 몸이 약해져 한동안 활동의 공백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문을 이길 방법은 특별하게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방송에 나가 나는 건강하노라고 외치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화마다 일일히 소리칠 수도 없었다. 조용히 침묵하는 길뿐이었다. 사실 그 소문이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별로 없지 않은가. 조용히 음악을 만들고 침묵하는 길뿐이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소문은 점차로 퇴색해갔다. 그럴즈음 나는 색다르다면 색다른 일을 시작했다.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강인원이 영화음악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곡은 강인원이 만들었고, 나 이외에도 가수로서 권인하, 신형원 등이 같이 참여했다. 영화는 신인 곽재용 감독이 만들었고 젊은 배우 강석현, 옥소리 등이 출연했다. 이렇게 해서 맏는 것이 <비오는 날의 수채화>였다. 오랜만에 그룹사운드가 아닌 보컬그룹 형태로 노래를 불렀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강인원이 만든 곡과 노래가 무척 예뻤다. 영화의 주제가를 묶어서 앨범을 내면서 나는 또 어느새 <비오는 날의 수채화> 팀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나의 5집 앨범을 냈다. <넋두리>를 타이틀로 그동안 생각했던 멜로디와 가사를 모았다. 자켓의 사진도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멋지게 찍어주었다. 재킷의 앞면에서는 나의 얼굴사진을 넣었고, 뒷면에는 김중만씨의 독특한 감각으로 나의 발 사진을 넣었다.
해진 청바지에 운동화, 그 위에 올려놓은 나의 포동포동한 발. 나는 참 많이도 걸어왔고 이제는 잠시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렇게 걸어온 길을 막 돌아보려고 정지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타이틀곡 <넋두리>는 그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내용의 가사만큼이나 멜로디 또한 느리고 낮아 마치 노래 전체가 하나의 희고조 소설같았다.
4집 이후 거의 2년 만에 나온 앨범인데도 나를 기억하는 팬들이 구입해주어 아주 좋았다. 5집에는 또한 복음성가로 <할렐루야>도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이제 중년의 나이에 선 가수로서 앨범에도 신중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든 앨범이다.
5집을 내고도 주로 동부이촌동의 집에서 칩거했다. 집에서 외국의 록비디오도 보고, 나 이외 가수들의 음악도 듣고, 가끔씩 집을 찾아오는 외판원들과도 얘기하고, 동네 가게방 아저씨들, 아파트 청소원 아주머니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가수로서 가수가 아닌 사람들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들을 나에게 무척 소중했다. 이제 나의 얘기만이 아닌 그들의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 할 나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방송에도 잘 나오지 않아 내가 가수라면 깜짝 놀랐다. 무척 부자고, 잘 생기고 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나같이 평범하고, 그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사람이 가수라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비오는 날에 수채화 좋네요👍👍
비오는 날의 수채화는 3사람이 아닌
권인하, 김현식 두분이 부르기로 되었
었는데 김현식님의 건강이 너무 안 좋으
셔서 어쩔수없이 이곡을 만드신 강인원
씨가 참가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권인하는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은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후배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나오니 자존심도 상했을 법 한데 오히려 "인하야 재밌겠다. 우리 같이하자."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에 진정한 대인배라고 말하기도 했었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