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려밟는 장단 마디마디에 대꽃이 핀다"는 말을 들었다. "기진할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던 춤꾼이었다. 한국 무용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었던 강선영(姜善泳·91)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太平舞) 명예 보유자가 지난 21일 밤 노환으로 별세했다.
본명 강춘자(姜春子), 호는 명가(明嘉)인 그는 1925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 근대 전통춤 거장 한성준(1875~1941)이 만든 조선음악무용연구소에서 춤 세계에 입문했다. 하도 무서워 보기만 해도 손발이 떨리던 한성준으로부터 태평무, 한량무, 승무 같은 전통춤의 정수(精髓)를 배웠다. '스스로 성품을 다스리지 않으려면 춤추지 말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태평무는 궁중 복식 차림으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다. 한성준이 왕십리 당굿 등 무속 장단에 춤을 붙여 재구성해 손녀 한영숙(1920~1989)과 강선영에게 전승했다. 우아한 동작과 박력 있는 춤사위가 어우러졌으며 '정신과 발이 만나 노는 춤'이라 할 만큼 발 디딤의 기교가 백미다. 경쾌하면서 절도 있게 발을 꺾다 보니 걷지 못할 만큼 발목이 욱신거린 적도 많았다고 한다.
1951년 강선영고전무용연구소를 열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이래 170개국에서 1500회가 넘는 태평무 공연을 했다. 파리 국제민속예술제, 시드니 민속무용축제를 거쳐 2006년 한국 전통 무용인으로는 최초로 뉴욕 링컨센터 무대에 올랐다. 태평무 예능 보유자로 지정된 1988년 고향 안성에 태평무전수관을 설립했다. 2013년 그의 춤 인생을 기념하는 국립극장 공연 때는 미수(米壽)의 나이로 제자 190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춤사위를 펼쳤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예총 회장, 14대 국회의원(전국구),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국민훈장 목련장(1973),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6)을 받았다. 유족은 딸 이남복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는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 24일 오후 3시, 발인 25일 오전 7시다. (02)2072-2091